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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나무 1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전작 <타임 투 킬>의 3년 후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 전작의 세부적인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주인공 이름조차도. 실제 읽은 지가 십 수 년이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계속 읽으나가면서 몇 가지 기억은 돌아왔다. 하지만 그 소설을 떠올려줄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놀라운 것은 주인공 제이크 브리건스가 그 재판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3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평범한 변호사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재판의 성공이 엄청난 보수를 받는 변호사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보여준다. <레인메이커>에서 보험회사에 승소했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과 연결된다.
이번 소설도 역시 미국의 민감한 인종 문제와 이어진다. 모든 사건의 발생 원인은 한 거부의 자살에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세스 후버드다. 그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놀라운 재산을 남긴 후 자살한다. 그 계획은 나무에 목을 매어 죽고, 자신의 직원 중 한 명을 약속한 시간에 그곳으로 오게 해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만든다. 당연히 경찰이 와서 시체를 내리고 집에 가서 유서를 발견한다. 자살로 판명난다. 이제 그의 자식과 손자들이 유산을 물려받으면 끝이다. 그런데 그가 자살하기 전 한 통의 자필 유언장을 작성해서 제이크에게 보낸다. 그 유언장에 실린 내용은 이전의 유언장을 폐기하고 흑인 가정부 레티에게 유산의 90%를 물려준다는 것이다.
언제나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소식 중 하나가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가족들의 소송이다. 유언장의 내용을 신뢰하지 못하면서 생긴 분쟁들이다. 이 유언장도 그렇다. 자식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물려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레티에게는 그가 언질을 준 약간의 유산이 얼마일까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세스가 치밀하게 계획한 것은 전혀 공증이 되지 않음으로써 분쟁의 소지를 남겨두었다. 물론 공증이 되었다고 소송이 붙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자살하기 불과 하루 전에 만든 유언장이고, 이 유언장을 작성할 때 함께 한 사람이 레티가 유일하다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자식들의 변호사가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유언장을 무효화하려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한 중년 흑인 여성이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많은 논쟁을 일으킨다. 세스의 자식들이 유산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레티 주변에도 그 유산의 일부를 노리는 사람들이 모인다. 당연히 이해 관계가 충동하고 엮인다. 이 와중에 제이크가 해야 할 일은 세스의 유언이 그대로 이행되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일이 곧 레티의 이익인데 레티의 남편은 인종 문제를 이용해 소송을 거는 흑인 변호사를 선임한다. 하나의 소송에 다양한 이익이 걸리면서 변호사들 숫자만 늘어난다. 이것을 정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트리 판사다. 그는 판사의 권한을 이용해서 소송의 분위기와 상황을 주도해나간다. 최종 결과는 배심원이 내리지만 그 과정을 조율하는 것은 판사임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법정 스릴러지만 솔직히 이전에 본 그의 소설에 비해 긴장도가 떨어진다. 그의 소설에 익숙한 것도 있지만 중반 이후 세스가 왜 레티에게 그런 거액의 유산을 남겼는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입도는 변함없이 좋다. 하나의 소송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변호사들이 왜 둘 이상이 함께 다니는지, 1심에서 승소하였다고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보여주면서 조금은 낯선 법조계의 모습을 알 게 한다. 법의 허점이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직업들이 나올 때 세월의 흐름을 살짝 엿보게 된다. 그리고 80년대 미국 남부 지역이 아직도 백인우월주의가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지금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제목부터 약간의 스포일러가 담겨있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의문인 ‘왜 흑인 가정부 레티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겼을까?’에 대한 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답만이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지 않는다. 소송에 이기기 위한 변호사들의 노력과 계획과 조사와 치밀한 전략 등이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법정에서의 치열한 싸움보다 바깥에서 생긴 변수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제이크의 역할이 전편보다 약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은 그의 소설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훈훈하고 낯설고 억지스럽다.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 때문일까? 그렇지만 반갑고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