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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재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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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직 판사의 소설이다. 작가 후기를 보니 세계문학상 1회부터 응모했다. 응모 이유도 작가가 되고 싶었던 어머니를 작가로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엄마의 일기에 그의 글을 보태 공동 저자 형식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 판사 하지환의 엄마 일기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첫 작품이 10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이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퀸의 노래를 수없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의 제목이 퀸의 노래 제목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노래와 제목이 왠지 같이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퀸의 노래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 하지환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노래이자 그의 삶이 새롭게 정리된 곳인 신해시를 다시 방문하게 만든 한 친구의 죽음과 그 현장에 틀어져 있던 노래이기 때문이다. 멜로디와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이 좋아 들었지만 한 번도 가사 내용을 번역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실제 가사는 충격적이었다. 이 충격적인 가사가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책 정보를 보면 우연한 한마디가 마음의 지옥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실제 내용은 다르다. 물론 죽은 엄마의 사망 원인이 의료 사고의 외양을 가지고, 한 도시를 지배하는 세력과의 외롭고 힘든 투쟁이 앞부분에 나온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투쟁이 중심에 있지 않고 한 남자의 심리 분석으로 흘러가 버린다. 이때부터 이 소설의 힘은 약해진다. 물론 정신분석을 통해 한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기대했다면 다를지 모르지만 감정과 상황과 분석을 도식적으로 대입하면서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구성적으로도 그가 제기한 소송과 함께 같이 교차한다거나 갈등 요소가 중첩되었다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인간의 성장에 박수를 쳤을지 모른다. 소설 속에서는 거의 이 부분만 계속해서 풀어낼 뿐이다.

 

이 책에 가장 관심을 둔 부분은 의료 사고다. 류마티스 환자가 아닌 엄마가 류마티스 약을 몇 년간 복용한 결과 암으로 돌아가신 것을 안 아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풀어갈 것인가 였다. 앞부분에서 빠르게 진실을 알게 되고, 소송을 제기한다. 한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병원의 힘은 거대해서 이제 겨우 발령난 신입 판사에게 계속해서 다양한 소송 취하의 압력이 가해진다. 이 소설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압력이 어떤 식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권력의 힘 앞에 힘겹게 싸우기보다 현실의 한계 속에 그대로 머물고 만다. 그리고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엄마의 관계를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현실의 벽 안으로 더 물러서버린다. 치열함이 사라진 곳에서 현직 판사의 유치한 변명만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아주 현실적인 상황과 관계를 잘 보여준 것은 틀림없다.

 

임직원 천 명이 근무하는 신해성모병원의 류마티스 센터의 전문의 우동규 과장, 그는 퇴행성관절염 환자들을 속여 류마티스 환자로 만들어버렸다.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은 계속해서 통원 치료를 하지 않는 반면 류마티스 환자들은 계속해서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위에 문제가 생긴다. 하지환의 엄마가 그렇게 죽었다. 여기에는 병원의 이익과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같은 의료계의 부정부패도 엮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실이 밝혀진 후 병원이 보여준 행동들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이 부분이다. 법원 관계자가 아니면 이렇게 이 커넥션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보여줄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소설은 친구의 죽음과 귀향,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을 연결해주는 노래가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다. 하지환이 경험한 죽음들이다. 죽음은 단순히 죽는다는 것을 넘어 한 인간이 세상을 새롭게 보고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부분을 정신분석으로 너무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긴박하고 긴장감이 넘쳐야 할 이야기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권력이 부정, 부패와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숨기는지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환에 투사된 작가의 모습이 어느 정도인지 살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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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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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영희 선생의 일 년 열두 달을 테마로 한 영미시 선집이다. 보통 한 달에 두세 편 정도의 시를 실고 각 시마다 간단한 해석 또는 감상을 달아놓았다. 원래는 한 일간지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란 제목으로 1년간 연재했던 칼럼들이다. 이 중에 계절에 관한 시 29편을 추려서 담은 책이다. 그녀 생전에 일간지 칼럼을 읽은 적도 없고, 글을 읽을 생각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글에 대한 좋은 평이 올라오고, 낯설기만 했던 김점선의 그림이 반갑게 다가왔다. 그런 도중에 이 책이 출간되어 읽게 되었다.

 

영미시를 읽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우리 시도 잘 읽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 한 카페에 올라오는 시를 가능하면 하루에 한두 편 정도 읽으려고 한다. 이 시들을 읽으면서 메말라 가는 감성과 굳어져 가는 표현을 조금 가다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을 읽었다. 많지 않은 분량에 그림까지 같이 실려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읽었다. 읽으면서 어떤 대목에서는 몇 번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에 집중했고, 어딘 가에서는 고 김전선 선생의 그림에 시선을 빼앗겼다. 영어 원문이 같이 실려 있어 한 번 정도는 소리 내어 영어를 읽어봤다. 뭐 그렇다고 제대로 해석도 이해도 못했지만.

 

처음에는 시인 29명의 시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겹쳐지는 시인들이 많다. 아마 연시를 좋아하는 저자의 취향이 반영되어 그들의 시가 몇 편 더 실린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장시의 일부만 발췌해서 실은 것이다.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도 전문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너무 긴 시라면 다른 시로 대체되어야겠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해당월과 시를 연결한 설정은 상당히 좋았다. 시를 읽으면서 계절과 직접 연결해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계절이나 그 시간에만 집중했지.

 

각 해당월과 계절과 인생을 연결해 놓은 설정은 읽으면서 나는 지금 몇 월에 도착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각각 다른 운율과 분위기를 시가 만들어낼 때 그때마다 다양한 시의 세계를 맛본다. 시인에 대한 간단한 주석을 참고하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시와 괴리를 느낀다. 상당히 많은 시들이 그랬다. 그리고 4월에 오면 T.S 엘리엇의 <황무지>가 먼저 떠올랐다. 한때 4월이 오면 라디오 등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시구를 반복해서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과 생동하는 4월의 시를 들려준다.

 

이 시들의 선택이 저자의 투병중에 있었던 탓인지 모르지만 가을을 지나 겨울로 오면 자신의 삶을 조금씩 담아낸다. 물론 <눈덩이>처럼 짧고 동시 같은 시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 못한 길이나 아름답게 늙기를 바라는 심정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랑과 희망과 휴식 등을 노래하는 시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몇 편을 다시 읽었는데 조금 더 깊게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영시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 전에 읽은 하진의 <자유로운 삶>의 주인공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비록 그는 중국인이면서 영어로 시를 쓰려고 하지만. 저자의 시 번역과 해설과 더불어 고 김전선의 그림도 마음 한 곳에 자유의 바람을 살짝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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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한 달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신예용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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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3권이다. 1권 <스틸 라이프>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서평을 찾아보니 이번에 읽으면서 느낀 것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스리 파인스 시리즈가 그 마을 안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찰청 내부의 알력을 같이 다루기 때문이다. 그 알력은 가마슈가 상사인 아르노의 부정을 고발하면서 생긴 것이다. 결속이 강한 조직의 경우 내부 고발로 인해 조직 내부의 부정부패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 경찰 조직도 그런 조직 중 하나다. 언론이나 깨끗한 경찰들에게 그는 영웅일지 모르지만 기존의 가치관을 숭상하는 관료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소설은 작은 스리 파인스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부활절을 앞두고 벌어지는 조그만 소동과 모습들은 고요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마을에 작은 이벤트가 벌어진다. 교령회다. 현대에도 이런 모임이 벌어진다는 것이 놀랍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첫 번째 교령회는 실패한다. 두 번째 교령회가 펼쳐지는데 장소가 놀랍다. 그곳은 저주가 깃든 옛 해들리 저택이기 때문이다. 옛날 이 저택에서는 참혹한 살인이 벌어졌고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바로 이때 한 사람이 죽는다. 그녀의 이름은 마들렌이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죽었다. 그냥 보면 살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혈액 검사 결과 에페드라라는 약물이 검출되었다. 살인 사건의 흔적이 보인다. 가마슈의 상사이자 친구인 브레뵈프가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가마슈를 스리 파인스 마을로 보낸다. 그리고 이 조사팀에 자신의 스파이를 한 명 집어넣는다. 그는 르미외다. 이때 또 한 명이 등장한다. 1권에서 관심있게 본 이베트 니콜이다. 그녀도 역시 가마슈를 감시하기 위한 스파이처럼 보인다. 이제 이 소설은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진행된다. 하나는 마들렌의 죽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마슈를 실각시키기 위한 브레뵈프의 계략이다.

 

마들렌은 암에 걸렸었다. 치료가 되었지만 재발했다. 곧 죽을 예정이지만 이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녀의 죽음은 바로 이런 정보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마들렌의 심장 질환과 에페드라가 결합하고 공포가 더해지면 죽음이 올 수도 있다. 그녀는 이런 계획에 의해 죽은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늘 빛을 뿌리고 다니는 그녀를 죽일 사람이 이 마을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보면 용의자가 넘친다. 해부해서 사인을 조사하고, 주변 사람을 탐문 조사하면서 강한 빛이 깃든 곳에서 자라는 사악한 의지를 발견한다.

 

가마슈를 보면서 그의 인내와 냉철함에 놀란다. 그는 사소한 말이나 단서를 통해 사건을 추리하고 진실에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의 팀은 다른 조직에서 적응하지 못했거나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런데 이들이 가마슈를 만나 최고의 팀을 이룬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불안하고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가 할 일은 제대로 한다.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가마슈가 한다. 그에게는 아들 같은 부관이 한 명 있다. 보부아르 경위다. 그도 다른 조직에서 퇴출되어 가마슈의 팀에 왔다. 가마슈의 사랑을 바라면서 최선을 다한다. 아르노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요구했던 충성심을 그는 자발적으로 바친다. 가마슈를 흔들 음모에 가장 분개한 것도 역시 보부아르다.

 

작은 마을이고 놀라운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곳이지만 벌써 3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사건만이 아니라 경찰 내부의 문제를 같이 엮어서 구성을 튼튼하고 짜임새 있게 만든다. 스리 파인스 마을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꼬고 엮어서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슬픔과 질투와 원망이 뒤섞여 용의자의 폭은 더 넓어진다. 견고한 구성과 전개는 묵직한 느낌을 전해준다. 앞부분에서 보여준 마을 사람들의 행동과 관계를 좀더 집중해서 봤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다. 덕분에 더 관심을 두고 본 것은 가마슈를 둘러싼 음모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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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Sunny 1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오주원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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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를 즐겨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두 본 만화는 많지 않다. 하지만 <죽도 사무라이>를 한 권씩 읽으면서 투박해 보이는 그림 뒤에 가려진 잘 짜인 편집과 연출을 보면서 감탄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별아이 보육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담긴 여러 원생들의 사연과 생활은 한 번 볼 때보다 다시 그냥 펼쳐서 유심히 볼 때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무심코 지나간 그림이나 대사가 새롭게 다가올 때도 많다. 각 장면이 의미없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6화가 실려 있다. 시작은 한 소년 세이가 보육원에 오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별아이가 그냥 학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곳에 사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기숙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활이 힘든 부모가 이곳에 아이를 맡겨 두고 간다. 자주 이곳을 찾아오는 부모도 있지만 1년에 한두 번만 오는 부모도 있다. 하루오의 경우가 후자다. 늘 반항적이고 강할 것 같지만 아이의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좋아하는 마키오 형이 왔을 때 그의 행동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엄마에 대한 만남이 헤어지는 무서움을 변하는 순간을 표현할 때 이 어린 소년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가 손에 잡힐 것 같다. 이 대화를 자는 척하면서 듣고 있는 세이의 모습도.

 

별아이에 사는 아이들은 부모와 같이 살지 않지만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순수함을 잃어가지만 그곳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 하루오가 써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겐지가 놓아둔 성인 잡지를 보면서 어른인 척 하지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상처는 어느 순간 밖으로 표출된다. 이것은 겐지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문을 돌려 돈을 모으지만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술값으로 나갈 뿐이다. 답답하다. 중학생이 바에서 술로 자신의 화를 누그러트린다. 늦은 밤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릴 때 그의 모습은 잠시라도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처절함이 보인다.

 

각 화마다 등장하면서 배경처럼 보였던 타로가 사라진 아이를 찾아 데려오는 6화는 보육원 아이들의 일상이 살짝 나온다. 소년과 소녀들의 치기 어린 장난들도 같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쇼스케가 홀로 돌아다닌 것이다. 이 아이를 찾기 위해 보육원 아이들이 찾아다니는데 이때 세이가 한 마디 한다. “저긴 우리 집이 아니야”(206쪽) “절대 아니야”(207쪽)라고. 다른 아이처럼 그 동네 말을 사용하지 않는 세이가 지닌 절망이 역설적으로 표현되었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띠지에 나오는 <핑퐁>과 <철근 근크리트>를 읽지 않았다. 그러니 그 만화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모습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작가 자신의 소년기를 토대로 그려내었다는 문구만으로 눈길이 간다. 그리고 써니의 정체가 보육원 뜰 한구석에 방치된 고물차라는 것을 앞부분에서 알게 된다. 그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휴식처이고 대화의 공간이다. 또 써니는 아이들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만화가 몇 권까지 나올지 모르지만 아직 수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을 것 같다. 학구파에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곳에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 세이가 과연 어떻게 변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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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나무 1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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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타임 투 킬>의 3년 후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 전작의 세부적인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주인공 이름조차도. 실제 읽은 지가 십 수 년이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계속 읽으나가면서 몇 가지 기억은 돌아왔다. 하지만 그 소설을 떠올려줄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놀라운 것은 주인공 제이크 브리건스가 그 재판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3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평범한 변호사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재판의 성공이 엄청난 보수를 받는 변호사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보여준다. <레인메이커>에서 보험회사에 승소했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과 연결된다.

 

이번 소설도 역시 미국의 민감한 인종 문제와 이어진다. 모든 사건의 발생 원인은 한 거부의 자살에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세스 후버드다. 그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놀라운 재산을 남긴 후 자살한다. 그 계획은 나무에 목을 매어 죽고, 자신의 직원 중 한 명을 약속한 시간에 그곳으로 오게 해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만든다. 당연히 경찰이 와서 시체를 내리고 집에 가서 유서를 발견한다. 자살로 판명난다. 이제 그의 자식과 손자들이 유산을 물려받으면 끝이다. 그런데 그가 자살하기 전 한 통의 자필 유언장을 작성해서 제이크에게 보낸다. 그 유언장에 실린 내용은 이전의 유언장을 폐기하고 흑인 가정부 레티에게 유산의 90%를 물려준다는 것이다.

 

언제나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소식 중 하나가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가족들의 소송이다. 유언장의 내용을 신뢰하지 못하면서 생긴 분쟁들이다. 이 유언장도 그렇다. 자식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물려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레티에게는 그가 언질을 준 약간의 유산이 얼마일까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세스가 치밀하게 계획한 것은 전혀 공증이 되지 않음으로써 분쟁의 소지를 남겨두었다. 물론 공증이 되었다고 소송이 붙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자살하기 불과 하루 전에 만든 유언장이고, 이 유언장을 작성할 때 함께 한 사람이 레티가 유일하다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자식들의 변호사가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유언장을 무효화하려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한 중년 흑인 여성이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많은 논쟁을 일으킨다. 세스의 자식들이 유산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레티 주변에도 그 유산의 일부를 노리는 사람들이 모인다. 당연히 이해 관계가 충동하고 엮인다. 이 와중에 제이크가 해야 할 일은 세스의 유언이 그대로 이행되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일이 곧 레티의 이익인데 레티의 남편은 인종 문제를 이용해 소송을 거는 흑인 변호사를 선임한다. 하나의 소송에 다양한 이익이 걸리면서 변호사들 숫자만 늘어난다. 이것을 정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트리 판사다. 그는 판사의 권한을 이용해서 소송의 분위기와 상황을 주도해나간다. 최종 결과는 배심원이 내리지만 그 과정을 조율하는 것은 판사임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법정 스릴러지만 솔직히 이전에 본 그의 소설에 비해 긴장도가 떨어진다. 그의 소설에 익숙한 것도 있지만 중반 이후 세스가 왜 레티에게 그런 거액의 유산을 남겼는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입도는 변함없이 좋다. 하나의 소송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변호사들이 왜 둘 이상이 함께 다니는지, 1심에서 승소하였다고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보여주면서 조금은 낯선 법조계의 모습을 알 게 한다. 법의 허점이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직업들이 나올 때 세월의 흐름을 살짝 엿보게 된다. 그리고 80년대 미국 남부 지역이 아직도 백인우월주의가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지금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제목부터 약간의 스포일러가 담겨있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의문인 ‘왜 흑인 가정부 레티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겼을까?’에 대한 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답만이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지 않는다. 소송에 이기기 위한 변호사들의 노력과 계획과 조사와 치밀한 전략 등이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법정에서의 치열한 싸움보다 바깥에서 생긴 변수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제이크의 역할이 전편보다 약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은 그의 소설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훈훈하고 낯설고 억지스럽다.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 때문일까? 그렇지만 반갑고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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