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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와 쿠스쿠스 - 요리하는 철학자 팀 알퍼의 유럽 음식 여행
팀 알퍼 지음, 조은정 옮김 / 옐로스톤 / 2015년 3월
평점 :
요리하는 철학자란 표현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요즘처럼 쿡방이 대세인 시대에 철학자가 요리까지 한다면 얼마나 많은 방송국에서 환영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나도 쿡방에는 저절로 눈길이 가는 것을 감안하면 한 편의 인문학적 쿡방이 나올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는다. 유럽 음식 여행이라는 부제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저자는 유럽을 네 개의 권역으로 나눠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나라들이 있다.
저자는 친가는 영국인이고, 외가는 프랑스인인 유대계다. 이 두 나라는 유럽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과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표하는 나라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랐다는 것은 음식을 맛보는데 최상의 조건이 된다. 왜냐고? 맛없는 영국 음식을 먹으면서 가장 맛있는 프랑스 음식의 맛과 비교하고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영국 태생이라는 것을 나타내듯이 무려 세 가지의 음식을 이 책 속에 소개하고 있다. 당근 케이크를 제외하면 낯설기만 하다. 여기에 에프트눈 티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면서 우리의 허영을 살짝 비판한다. 당연히 피시 앤 칩스도 간단하게 나온다. 만약 저자가 영국인이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음식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은 누구나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먹은 음식이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만.
저자가 나눈 유럽은 북부, 남부, 중부, 동부 등이다. 북부 유럽은 영국과 스웨덴 달랑 두 나라다. 스웨덴이 음식은 바이킹 식사라는 루트피스크 뿐이다. 이렇게 하나의 음식만 소개하는 나라가 몇 곳 더 있다. 그리스, 스위스, 불가리아 등이다. 이 중에서 그리스와 불가리아는 약간 의외다. 남부 유럽에 위치해 있고, 다양한 야채와 과일과 풍부한 해산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호리아티키 샐러드 하나만 소개할 정도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방송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미카엘이 보여준 불가리아 요리를 보면 이 또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선 튀김인 플젠 트사트사만 소개되다니 말이다. 비록 이것이 자신의 경험에 의한 개인적 견해라고 해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 뭐 이 나라들을 제대로 여행하면서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요리에 대한 설명은 역시 프랑스 편이다. 홀랜다이즈 소스를 설명하면서 황홀한 계급투쟁의 맛이라고 했을 때 방송에서 본 그것이 그렇게나 대단한 것이었나 하고 놀랐다. 빵 종류와 파티셰리를 구분하면서 장황하게 이야기할 때 몇 년 전 가본 파리의 빵집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의 기억 어딘가에서 잘못된 것이 남아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빵과 파티셰리가 같은 빵집에 있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호사스러운 테린 같은 음식은 먹지 못했고, 그 좋다는 와인도 술에 약해 몇 잔 마시지 못했다. 하지만 저렴한 와인과 치즈 등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고 좋았다. 빵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런 기억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재조정되었고, 다시 가보고 싶다는 열망에 들뜨게 만들었다.
프랑스 요리의 그 기원을 제공했다고 하는 이탈리아 음식에 대해서는 너무 빤한 설명이라 강한 인상에 남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너무 많이 자주 들었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흔한 음식점이 되었지만 가슴 한 곳은 언제나 그곳에 가서 본토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욕망이 늘 꿈틀거리고 있다. 반면에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스페인 음식들은 시선을 끈다. 특히 빠 암 토마캇은 더욱 그렇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그 모습이 나오지 않는데 어떤 모양이고 맛인지 궁금하다. 이렇게 남부 유럽 음식을 읽다 보면 역시 중요한 것은 음식의 풍부한 재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제대로 없는 지역에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그 유명한 초콜릿이나 맥주가 잠시 시선을 끌고, 독일의 맥주와 절임인 사우어크라우트는 언젠가 한 번 맛봐야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구 소련 연방을 통틀어 러시아로 묶은 음식에서 한국식 당근 김치인 마르코브카 파-레이스키는 MB정권의 한식 세계화를 비웃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들 나라와 영국의 음식 중 어디가 더 못할까 하는 의문이 살짝 들지만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니 그냥 넘어가자. 내가 영화나 소설 등에서 입맛을 다셨던 음식들이 약간 비하되는 것 같은 느낌이 살짝 있지만 많은 유럽의 맛있는 다양한 음식을 맛본 후 개인의 평에 의한 것임을 감안하면 약간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먼 훗날 이 나라들을 여행한 후 다시 이 책을 펼 기회가 있다면 또 다른 의견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요리한 바나나와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쿠스쿠스에 대한 추억들은 나의 과거 속 음식을 잠시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