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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킹의 소설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킹의 광팬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책이 나오면 산다. 밀리언셀러클럽에서 그의 소설들이 나오기 전에 이미 그의 소설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다. 한참 헌책방을 다닐 때 사계 시리즈를 보고 사지 않았었다. 그의 다른 장편이나 단편을 산 것과 비교하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의 이름을 잘 몰랐을 때도 그의 소설을 잡고 읽으면 쉽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기이한 이야기에 홀린 것이다. 읽고 나서 그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그의 책이라면 사고 읽었다. 한때 무협을 제외하고 집에 가장 많은 책을 가지고 있던 작가였다. 지금도 적지 않은 킹의 소설들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중단편집이다. 모두 네 편이 실려 있다. 모두 분량이 다른데 역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첫 작품인 <1922>다. 처음에 읽으면서 왠지 낯익은 분위기를 느꼈다. 한 부자의 살인 사건이 우리의 귀신 이야기와 닮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살인 사건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왜냐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이것을 아들이 돕기 때문이다. 이때 아들의 나이는 열네 살이다. 아내를 죽인 이유도 아내의 부정이나 사치 때문이 아니라 아내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 남편 제임스는 아내의 땅이 돼지 도축업을 하는 패링턴 사에 팔리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아내 알렛은 이 땅을 팔아서 도시로 나가고 싶어한다. 각자 자신의 재산을 가진 채 이혼해도 되겠지만 제임스는 자신의 땅 옆에 패링턴 사에 들어오는 것이 싫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생긴다.
첫 번째 비극은 그가 예상한 대로 아내가 쉽게 죽지 않는 것이다. 돼지 목을 따듯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는다. 몇 차례 시도를 한 끝에 겨우 죽인다. 아내의 시체를 아들과 함께 사용하지 않는 우물 속에 넣는다. 어린 아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아내가 가출한 것처럼 꾸민다. 아내를 찾아 패링턴 사 직원과 보안관이 온다. 아내는 우물 속에 묻혀 있다. 집에서 키우는 소 한 마리가 우물 속에 빠지면서 그의 계획은 더 좋아진다. 겉으로 볼 때 이야기다. 우물 속에 사는 쥐들은 아내를 파먹고 축사에까지 들어온다. 그에게 이 쥐들은 아내의 부하다. 그리고 두 번째 비극이 생긴다. 바로 아들의 여자 친구가 임신을 한 것이다. 겨우 열다섯 살인데. 부모들이 이들의 결혼을 반대하면서 상황은 더 나빠진다.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 개인의 농장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잘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 한 가정의 파멸과 죄의식에 의한 환상이 교차한다. 대공황을 앞둔 시대를 작가가 선택한 것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농장을 헐값에 팔려고 했을 때 거절했던 이웃도 결국 무너지고 만다. 대공황은 사람을 가려서 다가오지 않는다. 살기 위해 농장주도 공장으로 가야한다. 이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제임스는 유서처럼 남겨 놓았다. 그가 죽인 아내 알렛의 환상과 그녀의 부하들인 쥐들 때문이다. 킹은 언제나처럼 이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아내를 죽이고, 묻는 과정을 읽으면서 서늘한 공포와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의 신문 기사는 제임스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빅 드라이버>는 <1922>를 읽고 난 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나를 놀라게 했다. 코지 미스터리물 작가 테스를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내세워 처절한 복수극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녀는 노파들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작가다. 이 시리즈가 상당히 많이 팔렸고, 적지 않은 팬들이 있다. 어느 날 강연회에 초청받는다. 다른 유명 작가 자넷 에바노비치의 대타다.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와 강연료를 받고 브라운 베거스 북 클럽에 온다. 그냥 평범한 강연회다. 잘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이 클럽의 회장인 라모나 노빌이 지름길을 알려준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테스는 그 길로 돌아간다. 불행은 바로 이때 생긴다. 그녀는 지름길로 가다가 폐자재의 못에 타이어가 찔린다. 휴대폰도 되지 않아 보험사도 부를 수 없다. 이때 거대한 한 남자가 다가온다. 순진한 첫 마디가 끝난 후 바로 본색을 드러낸다. 그녀를 때리고 강간하고 때리고 강간한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버린다. 테스가 죽은 척한 것뿐이다.
보통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강간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그녀는 탈출하는 과정에서 혹시 그가 좇아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고, 자신이 언론의 먹이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킹은 이 과정을 탁월한 테스의 심리 묘사와 행동을 통해 아주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킹의 최고 매력은 인물의 심리 묘사와 기묘한 상황으로 독자를 자연스럽게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당연히 스릴과 긴장감은 같이 따라다닌다. 여기에 미스터리 작가의 복수극을 집어넣어 반격을 가한다. 우연으로 생각했던 불행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차분히 되짚으면서 단서를 쫓는다. 비극과 통쾌한 복수 뒤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는 현실의 씁쓸한 단면을 보게 만든다.
<공정한 거래>는 악마와 거래를 한 남자의 소원이 풀려나가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과 엮어서 보여준다. 한 가족의 처참한 몰락 뒤에 있는 숨겨진 거래가 예상한 반전을 뒤집는다. 가장 짧은 작품인데 그 속에 우리가 알고 있던 악마나 반전을 없앴다. 제목 자체가 역설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맞는 거래다. 이야기가 끝난 후 이 거래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진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우연히 발견한 남편의 비밀을 다룬다. 남편의 정체는 열한 명을 죽인 연쇄살인마다. 하지만 집에서 그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다. 이것을 발견한 아내 다아시가 느낀 공포와 혼란은 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성적 판단보다 항상 앞서는 것이 감정이다보니 쉽게 답을 내놓을 수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남편이 결혼과 동시에 한 동안 살인을 멈추었다는 것과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에게 다시는 이런 살인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그대로 덮어둔 채 살아갈 수 없다. 마지막에 비디의 연쇄살인 사건을 쫓는 은퇴 형사를 등장시켜 감정을 위로한 것은 약간 혼란스럽다. 깔끔한 결론이라는 생각도 있지만 여운을 없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