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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치카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걸작선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최종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걸작선이다. 모두 세 편이다. 낯선 이름이다. 두 편은 단편이고, 한 편은 장편이다. 솔직히 말해서 장편을 읽을 때 고생했다. 어려운 러시아 이름과 많은 등장인물과 긴 문장이 그렇게 만들었다. 아마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소네치카>에서 받은 느낌이 사라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의 집중력이 흩어져서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들 멋지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좀더 세밀하게 집중하면서 읽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표제작 <소네치카>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소네치카 이야기다. 혁명과 전쟁의 와중에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남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그녀의 삶이 바뀌는 순간은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의해서다. 책만으로 살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가족을 꾸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 남편의 재능이 알려지고, 또 다른 인격체가 된 딸이 자란다. 어느 순간 이야기의 중심은 그들로 옮겨간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그녀가 있다. 어떻게 보면 삶과 재능에 대한 이야기다. 남편과 딸이 지닌 재능이 꽃피우는데 그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그녀의 재능이 어떻게 사그라들었는지. 이 걸작선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거의 장편인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은 앞에도 말했듯이 쉽게 읽지 못했다. 발레리 부토노프가 등장하면서 집중했다. 그의 특이한 이력과 메데야의 아이들이 엮이고, 그녀들의 삶이 그려지면서 빠져들었다. 단순하고 자유분방하면서 열정적인 니카, 어릴 때 기억으로 침착하고 차분한 미샤가 그녀들이다. 한 남자를 두고 공유하는 그들과 이들을 통해서 그 시대 삶의 다른 면을 보는 즐거움은 놀랍고 흥미로웠다. 이것이 다시 메데야로 이어지고 또 다른 사실과 연결될 때 이제 익숙해진 문장의 호흡을 조금은 제대로 따라가면서 그 재미를 즐겼다. 그들의 삶은 며칠 전 읽었던 러시아의 참혹감과 거리를 두고 삶은 어디에서도 이어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가르쳐준다.

 

힘든 와중에 빠져든 것은 바로 삶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삶을 산 그녀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녀들을 욕할 수도 있지만 그 욕이 남자에게도 다시 돌아온다. 상대가 없이 어떻게 불륜이나 사랑이 이루어지겠는가. 그 남녀들을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대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돌아보고 현재를 듣다보면 조금씩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게 이어진다고 해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 모든 관계의 중심에 선 메데야의 삶에 조용히 눈길을 준다. 멋지다, 대단하다는 표현보다 더 정확한 단어를 찾아야 하는데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그곳에 있고 그녀를 통해 삶이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그 많은 아이들과 사연은 이야기의 폭과 깊이를 더욱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무르와 안나 표도르브나의 이야기다. 이 둘은 모녀다. 처음에는 부부인가, 부녀 사이인가 고민했다. 이름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목은 푸시킨의 소설과 같다. 내용은 읽지 않아 정확하게 모르지만 주석을 보면 어느 정도 오마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둘은 모두 90과 60으로 적지 않는 나이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모녀 사이의 벽이 있다. 새벽 4시에 무르가 딸에게 초콜릿 한 잔을 요구할 때 안나가 보여주는 반응과 행동은 그 동안 삶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3대가 모두 여자만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과부 삼대는 아니지만. 모녀 관계가 중심에 놓여 있고 변화의 바람이 부는데 그 결말이 씁쓸하다. 아리다. 삶은 어쩌면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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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서지희 옮김 / 살림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 혹은 자주 황당한 표지를 가진 좋은 작품을 만난다. 이번 소설도 그런 부류 중 하나다. 표지만 보면 질 낮은 판타지나 로맨스 소설 같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책에 다가 간다면 대부분 선택하지 않을 책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소설의 소개글이다. 2012 배리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이란 문구와 '디파트먼트 Q'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란 구절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다 읽은 후 띠지를 보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영화화한다는 것도 보인다. 이런 화려한 이력에 비해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표지를 가졌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먼저 이런 아쉬움을 쓴 것은 표지 때문에 이 매력적인 작품을 놓칠 뻔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의 아성을 위협한다는 광고는 이제 많은 북유럽 소설들에 늘 사용되는 문구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조금 부족해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별로란 것은 아니다. 재밌다. 다만 예상한 것과 좀 다른 설정과 전개로 조금 혼란스러웠고 여자가 보여준 놀라운 생존력과 자존감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보면서 <올드보이>가 연상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이 더 강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수사관 칼 뫼르크와 시리아 출신 조수 아사드 콤비의 탄생부터 이들이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보여주는 과정은 기존의 추리소설과 좀 다르다. 칼 뫼르크는 얼마 전에 있은 살인사건에서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냈고 다른 한 명은 전신마비로 병상에 누워있다. 그 당시 자신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과 약간 비겁한 행동으로 그 상황을 풀어내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서 내부에서도 그는 좋은 동료가 되지 못한다. 그러다 미결사건을 다룰 특별수사반 Q로 발령난다. 이 발령은 그를 해고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 부서로 인한 예산 확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총격 사건으로 의욕을 잃은 그에게 이 부서는 딱이었다. 5년 전 사라진 메레테 륑고르 사건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냥 놀려고 온 부서지만 예산이 얼마나 배정되는지 알게 되면서 그는 조수를 요구한다. 이때 온 사람이 시리아 출신 아사드다. 그는 오자마자 사무실을 정리하고 파일을 제대로 배열한다. 몇 개는 꺼내어 읽어본다. 그러다 선택된 사건이 바로 메레테 륑고르 사건이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던 동생를 데리고 독일로 가는 배 위에서 실종된 것이다. 정치계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어디에서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 잊혀졌다. 그 실종이 자발적이지 않다면 바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소설의 중심에서 칼 뫼르크가 움직인다면 또 다른 축으로 메레테 륑고르가 과거부터 현재로 넘어온다. 이 두 사람과 시간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이 교차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 처한 그녀의 현재가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설정 안에서 경찰질에 의욕을 잃은 칼 뫼르크가 조금씩 자신의 일에 다시 열정을 불태운다. 뭐 알고보면 실제 발로 뛰면서 중요한 단서를 물어오는 것은 아사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되고 단련된 형사의 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사실 이 두 콤비가 제대로 된 협력을 하는 것은 거의 뒤에 와서다. 그전에 의욕을 잃은 형사는 대충 사건을 둘러보고, 아사드는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해 가볍게만 보인다. 이런 두 사람이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뫼르크는 그 당시 사건 기록을 훑어보면서 부족하고 부실한 자료를 발견하고 사건에 의문을 품게 된다. 하나씩 조사할 때마다 드러나는 의문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계단처럼 보인다. 읽다 보면 작가가 깔아놓은 단서에 의해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지만.

 

사실 누가 범인인가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제목대로 자비를 구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그녀다. 기압 조절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홀로 살아가는데 한 번은 빛으로 가득하고 어떤 기간은 어둠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 겨우 먹을 음식과 생리현상을 해결한 통 둘 만이 그녀와 함께 한다. 그 방 밖에는 그녀에게 음식 등을 주는 사람이 있지만. 이때 영화 <올드보이>가 연상되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그녀의 시간 속에서 과연 그녀가 살아남을까 하는 것은 이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읽으면서 손에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형사들이라면 이런 실수도 하고 이렇게 범인에 다가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부 알력과 비난에 찬 시선을 생각할 때 더욱 이런 생각이 강해졌다. 그가 느낀 죽음의 공포와 동료에 대해 가졌던 죄책감은 책 전체에 깔려 있는데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했다. 그리고 아사드의 존재는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 사건과 그의 과거 등으로 인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든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지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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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각하
배명훈 지음, 이강훈 그림 / 북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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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참 많이도 참았다!’ 이 문장을 읽고 즉시 떠오른 그분이 있다. 바로 각하다. 이 노골적인 광구 문구를 생각하고 읽은 연작소설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풍자와 sf가 결합하면 어떤 식으로 풀려나오는지 알려준다. 배명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격하게 공감한 것이 처음 아닐까 생각한다. 웃음과 아! 상황을 이렇게 비틀어서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었다. 물론 몇 편은 나의 부족한 지력으로 그 재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모두 10편이다. 첫 작품 <바이센테니얼 챈슬러>에서 시작해 <chanrge!>로 끝난다. 이 순서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바이센테니얼 챈슬러>가 동면 과학을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charge!>는 중세 판타지 설정을 통해 진행된다. 미래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과거로 역행하는 듯한 구성인데 혹 과한 상상인지 모르겠지만 지나온 5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살짝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멋대로 상상해본다. <charge!>는 바로 앞의 두 편 <초록연필>과 <내년>과 더불어 총통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예언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초록연필>은 악에 대한 신선한 반전이 펼쳐지고, <내년>은 알 수 없는 미래에서 매번 반복되는 2012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세 편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charge!>다.

 

한때 진심으로 각하가 당선되면 다른 나라로 이민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소설 속 천재 주인공의 남편은 아내의 도움으로 동면을 선택한다. 그런데 각하의 임기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런 끔찍한 상황을 풍자와 유머로 풀어낸 작품이 바로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다. <새벽의 습격>은 읽으면서 뭐지? 하는 기분이 먼저 들었다. 전쟁터에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어떤 전쟁일까 의문이 드는 순간 이 낙하산 부대의 정체가 드러난다. 상상력이 상황을 이런 식으로 풍자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리고 ‘총통의 말에는 요지가 없었다.’(45쪽)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에서 ‘지키려고 마음먹은 건 등 뒤에 두는 거구나.’(81쪽)하고 말할 때 이 땅의 군경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강하게 다시 다가온 것은 처음이다. 평범한 사실이 상황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발자국>은 실제 하지 않는 것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려는 세력의 존재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이해력이 이 단편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공감하면서 읽은 단편은 <혁명이 끝났다고?>다. 주인공의 감정과 추억이 겹치고 현실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을 때 특히 그랬다. 이제는 486세대가 된 그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위대한 수습>은 좀더 노골적이다. 대운하를 중심에 놓고 있는데 말장난으로 시작한다. 절대권력 앞에 충심을 담은 직언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만든다. 파라면 파야지 하는 상황은 군대의 그것과 닮아 있고, 아무런 효용도 효율도 없는 작업은 좀더 노골적으로 다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냉방노조 진압작전>은 은유와 풍자로 가득하다. 토론을 통해 얼음신의 축복을 받는다는 설정은 전횡과 획일과 독재로 진행되는 현실의 수많은 일들을 비틀고 있다. 토론이 가치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논쟁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효능을 보여주는지 알려줄 때 이때까지 놓치고 있던 재미가 살짝 다가온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풍자와 은유는 아는 만큼 보인다. 개인적으로 많이 알지 못해 그 재미를 완전하게 누리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상황을 비틀고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이것을 재해석했을 때 감탄하고 큰 재미를 누린다. 이제 그 5년이 끝나가고 새로운 5년이 한 달 뒤면 시작한다.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다시금 이런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실용과 문화를 말할 때 가슴 한 곳이 뜨끔했지만 지난 5년이 이런 실용조차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아픈 현실에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 5년 덕분에 이 책이 탄생했다는 것은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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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 2012-11-23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잘보고갑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 10 그레이트 이펙트 2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김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읽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보거나 들은 것만으로 읽은 것 같은 책들 중 한 권이 바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부정확한 기억력에 의지하면 원작을 읽은 적은 없지만 요약본이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을 읽은 것은 기억난다. 그것은 아마 <오디세이아>일 것이다. 학창시절 멋도 모르고 그냥 유명하다는 말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은 적 있다. 자랑처럼 말하지만 사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 소설이나 다른 책에서 이 작품을 극찬하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면 늘 부럽고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이런 기억 속에 오디세이아는 남아 있지만 아킬레우스를 다루는 <일리아스>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아킬레스근을 말할 때를 제외하면 더욱.

 

망구엘의 책을 처음 읽는다. 그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조금 의외다. 세계적인 인문학자란 소개를 들었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어려울 것이란 짐작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언젠가 꼭 한 번은 읽어야지 마음 먹고 있던 두 책에 대한 해설서란 것에 눈길이 갔다. 원작을 먼저 읽어야 하지만 출간된 책들을 보면 과연 어떤 책이 제대로 된 번역인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기대가 망구엘이란 유명한 인문학자를 통해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만든 모양이다. 그리고 소설처럼 번역된 책과 서사시로 번역된 것들로 나누어져 있는 현실을 생각하고 좀더 정확한 번역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뭐 이 시간에 책을 사서 읽으면 더 좋았겠지만.

 

호메로스 혹은 호머로 불리는 그(녀)에 대한 수많은 가정은 생략하자. 저자는 이 작품들이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이것을 맡겨두고 왜 이 책이 서양문학사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지 들어보자. 저자를 통해 흘러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와 자료는 지금까지 이 두 작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단숨에 깨트린다. 단순히 고전으로 알고 있던 이 작품들이 서양문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는지 보여줄 때 감히 성서와 그리스 로마 신화 옆에 놓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영향력 때문에 영국 출판사 애틀랜틱북스에서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의 세계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명저 10권 중 한 권으로 꼽은 모양이다. 참고로 <성서>와 <종의 기원>과 <꾸란>도 그 중 한 권이다.

 

모두 22장을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은 기본적으로 시간 순이다. 1장이 두 작품에 대한 줄거리를 다룬다면 2장은 호메로스의 실존을 묻는다. 이후 이어지는 각 장은 철학자, 시인, 기독교. 이슬람, 단테 등을 거쳐 현대까지 이른다. 이 과정 속에서 이 작품들이 어떻게 해석되어지고, 읽혔고, 영향력을 행사했고, 하고 있는지 하나씩 밝혀낸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 사실 이 작품에 대해 익숙하지도 않고 제대로 읽은 적도 없는 나에게는 너무 낯선 정보들이다. 단순히 정보만 나열된 것이 아니다. 시간과 인물들을 하나로 엮어서 분석하고 깊숙이 파고들어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이 정보와 지식은 너무 대단해서 나의 지력이 따라가질 못한다. 아쉽다.

 

하나의 좋은 작품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은 상당하다. 늘 그렇듯이 좋은 작품은 독자에 의해 다양하게 읽히고 분석되고 이해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중들에게 읽히는 것들은 충분히 납득할 자료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서양의 교육 과정 속에서 이 두 작품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게 될 때 이 이해도는 더욱 높아진다. 동시에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어떤 문학과 함께 시작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전문적으로 파고들고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면서 나아가기에 좀 힘들게 읽었다. 많은 정보와 지식 덕분에 아직도 그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저자와 함께 이 시리즈에 관심이 간다. 나의 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 넓고 깊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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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화 위원회 - 유령과 볼셰비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이상한 시도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은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왜 이 속담이 생각났느냐 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의 저질 기억력이 맞다면 이때의 불멸은 명성이다. 그럼 이 책에서 다루는 불멸은 무얼까?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명성이 아니라 진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 속에 너무나도 불가능하고 덧없을 것 같은 이것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통해 불멸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불멸화 위원회는 레닌 사후 레닌의 매장 절차를 담당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장례위원회 이름이다. 불멸을 말하면서 왜 레닌이 나오냐고? 그것은 이 책 2장 다루는 건신주의자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죽음을 정복하려 한 사람들이란 의미의 그들 말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엄청난 학살과 숙청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에 놓여 있다. 읽으면서 옛날 학창시절 붉은 혁명 이후 러시아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학우와 선생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고 혁명을 맹신했는지 말이다. 또 그 시절의 참혹한 비극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새발의 피임을 알게 되었다.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교차 통신, 2장은 건신주의자, 마지막 3장은 달콤한 필멸이다. 교차 통신은 유령과 나누는 대화를 의미한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사후세계의 실존이다. 쉽게 우리의 개념으로 말하면 저승에서 이승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승으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저승에 살아 있다는 의미다. 육체는 소멸했지만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천국을 말하며 불멸을 노래하는 것을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정확한 비유는 아니다. 그렇지만 도움은 된다.

 

유령과의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자가 풀어내는 인문학적 통찰은 날카롭다. 유령과의 대화라고 단순히 미신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세계를 탈주술화했다면, 과학만이 세계를 재주술화할 수 있을 것이다.”(33쪽)란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과학의 힘을 믿었고 과학적 증거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다윈 이후 진화라는 단어는 진보와 뒤섞여 사용되곤 했는데 이것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가 흔히 진보라고 부르는 것 중 대다수는 우리의 바람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삶의 의미를 불멸에서 찾고자 한 사람들의 노력과 교차 통신문이 지닌 의미를 분석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가 영화 속에서 재미로 봤던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려준다.

 

2장은 러시아로 무대가 옮겨간다. 핵심 인물은 고리키다. 그의 비서였던 모라다. H.G. 웰스다. 이들을 통해 20세 초 러시아의 상황과 불멸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의 기반이 영지주의의 한 분파란 설명에선 고개가 갸웃하지만 그들이 혁명의 달성 혹은 권력 쟁취를 위해 벌였던 어마어마한 숙청과 학살은 고개 숙이게 만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리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이 무참하게 깨졌다. 시대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볼셰비키가 저지른 학살은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과학에 기댄 그들이 레닌의 사체를 보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가졌는지 보여줄 때 과학이 또 다른 신앙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는 인간 경험의 바뀌지 않는 특성들을 다루는 이야기이다.”(263쪽) 이 문장은 3장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불멸주의는 인간 소멸 프로그램이다. 자연스런 소멸 과정보다 더 완전하게 인간을 사라지게 하는 기획이다.”라고 할 때 인간과 불멸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차 통신을 통해 다른 세상에 사는 영혼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과 동일하고, 레닌처럼 보관된 사람이 다시 재생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닌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불멸의 정의로 “죽고 나면 이승에서건 다른 세상에서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데 있다.”(45쪽)고 말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세상을 다룬 판타지 소설 <펠릭스 캐스터> 시리즈를 참고한다면 과연 이런 불멸이 의미가 있을지 좀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뭐 이때 부활한 자들은 좀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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