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니와 몬스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가이도 다케루란 이름을 나에게 각인시켜준 것은 그 유명한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이란 작품이다. 그 이후 그의 작품을 몇 편을 읽었지만 이전 같은 재미를 제대로 누린 적이 없다. 첫 작품이 준 인상이 너무 강한 것도 이유 중 하나고, 이 시리즈를 그 뒤 일부러 읽지 않는 탓이다. 그러다 만난 이번 소설에서 살짝 이전 재미를 기대했다. 강한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전개 말이다. 결론만 먼저 이야기하면 아니었다. 이전 작품과 다른 방향으로 이 소설을 썼다. 사회파 의학소설이란 평이 있는데 그 장대함에 비해 재미는 사실 떨어진다. 어떻게 보면 시리즈의 첫 권 같은 느낌이랄까.
가상도시 나니와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그냥 무난하다. 오래된 개업의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신종인플루엔자 캐멀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 양상을 보면 불과 몇 년 전 한국에서 일어났던 신종플루 사태와 거의 비슷하다. 매스컴을 통한 공포 분위기 조성과 백신 열풍은 엄밀한 과학적 분석이나 대처를 넘어 진행되었다. 소위 광풍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 소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캐멀이 지닌 위험성을 과대 포장한 세력에 의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해서 한국과 다른 원인을 보여준다. 바로 그 부분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다.
한국에서 신종플루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을 때 가장 덕을 본 것은 제약회사다. 타미플루란 약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고, 백신을 꼭 맞아야 하는 필수였다. 지금도 이 단어를 검색하면 수많은 기사와 글들이 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소설 속에서처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신종플루로 죽는 사람보다 계절성 인플루엔자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공포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어떤 사태로 이어지는지 그대로 보여준 좋은 사례다. 그런데 작가는 신종플루의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소설은 쓴 것이 아니다. 읽으면서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의사 부자가 사라진 뒤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했다.
신종플루 캐멀에 대한 사실을 밝히면서 이야기는 1년 전으로 돌아간다. 동경 특수부의 에이스 가마가타 마사시가 나니와로 부임해오고, 지사와 만난다. 갑자기 변한 전개에 어리둥절할 때 무라사메 지사를 통해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좌익도 우익도 아닌 의익(醫翼)이다. 의료를 통해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를 변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혁명이다. 일본을 암묵적으로 지배하는 권력을 깨트리고자 하는 시도다. 그러니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대응책 중 하나가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 전략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과 비슷한 설정을 하나 더 발견했다. 그것은 룰렛이란 대응책이다. 하나의 스캔들이나 사건이 터졌을 때 다른 추문이나 사건으로 돌려 막는 것을 말한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자주 일어났다. 7~80년대 간첩단 사건이나 21세기 연예인 스캔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비슷한 문화 구조와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국가이다 보니 전략도 비슷한 모양이다. 신종 인플루엔자 캐멀과 함께 룰렛은 읽으면서 실제로 가장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아직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혼란을 주는 인물은 바로 히코네다. 그는 대단한 통찰력과 분석력과 기획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다른 등장인물들과 대비되는 동시에 이 소설이 시리즈의 첫 권이란 느낌을 강하게 준다. 왠지 모르게 장대한 이야기의 도입부이자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멈췄다는 느낌이다. 물론 작가가 앞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설정은 분명하게 보여줬다. 일본에 무지한 나에게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정이 아니지만. 그리고 캐릭터나 사건 등이 주는 재미가 부족하다. 거대한 헤게모니 싸움과 사회파 의학소설의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말이다. 오락적 재미보다 지적 재미가 더 큰 소설이라 조금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