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클로버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다인 옮김 / 허밍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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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고 인간에 대한 깊은 관찰을 담고 있다.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해 과거의 사건으로 넘어가 그 진실을 파헤친다.

이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은 날카롭고 잔혹하다.

인간의 속내를 여과없이 풀어내면서 뒤틀린 욕망과 감정을 표현한다.

읽다 보면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약간 극단적인 부분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더 부각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속에 진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 뒤에 숨겨져 있던 감정의 조각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드러난다.

인간의 행동과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도쿄 도요스의 바비큐장에서 일어난 비소 살인사건.

범인이 누군지 잡혔고, 자신이 저지른 사건이라고 자백했다.

그 모임을 주최한 마루에다는 사업가로 위장해 잘 나가는 사람들을 살해했다.

이 살인 이후 드러난 몇 가지 소문 등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된다.

가쓰키는 이 부분을 파고 드는 대신 12년 전 같은 비소를 사용한 살인 사건에 주목한다.

한 가족이 모두 비소 중독으로 죽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은 그 집의 장녀 미쓰바다.

그때 사건 현장에 있었고, 창문을 통해 가족이 살해된 거실에서 라면을 먹는 장녀를 보았다.

정년 퇴직했지만 가쓰키는 이 두 사건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싶어 한다.

혹시 이 사건과 12년 전 장녀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과 함께.

 

현재의 시간은 두 사건을 연관성을 조사하는 가쓰키가 대부분 등장한다.

과거의 시간은 훗카이도 작은 어촌 마을인 하이토 마을의 사람들 이야기다.

동일한 비소라는 것 때문에 마루에다가 12년 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다.

그의 알리바이가 그를 용의선상에서 지워버린다.

하지만 마루에다 뒤에 어른거리는 장녀의 존재는 그를 하이토 마을로 향하게 한다.

하이토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는 가십성과 악의가 담겨 있지만 날 것 그대로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는 14년 전 부모의 이혼 과정에 외할머니집에 맡겨진 지히로로 시작한다.

처음 와서 낯설고 친구 한 명 없는데 갑자기 미쓰바가 친구가 되자고 한다.

미쓰바는 자신과 함께 하는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니고 신사에 죽어 묻혔다고 말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신사가 저주를 하기 위해 오는 신사란 것이다.

 

두 소녀의 우정, 긴밀한 관계, 직설적인 속내 등이 그대로 나온다.

지히로가 미쓰바에게 의존하는 바가 크고, 미쓰바의 말투는 아주 거칠다.

그녀가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가 죽임을 당하기 전에 먼저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을 특유의 마을 안과 밖의 구분과 혐오의 감정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 과정에 부모의 사랑이 아닌 방기에 의해 자라는 아이들이 나온다.

미쓰바와 지히로가 대표적이고, 다른 아이도 다른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성숙하지 못하고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부모의 행동과 심리도 날 것으로 표현된다.

천천히 이 마을의 분위기와 성장하면서 변하는 두 소녀의 삶을 그려낸다.

여기에 더해주는 오해와 착각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누가 범인인지를 파고들면서 두 사건의 연관성을 조사한다.

이미 드러난 사실과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 조금씩 드러나는 반전의 실체.

추리와 더불어 인간의 변하는 심리 묘사와 행동이 잘 어우러져 먹먹함을 준다.

아주 뛰어난 가독성을 가지고 있지만 무거움 때문에 자주 쉬게 된다.

어쩌면 그냥 방치된 아이의 사춘기 같은 반항일 수도 있었지만 현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뀐다.

미쓰바가 자주 내뱉던 그 말, 먼저 죽이겠다는 그 말.

작가도 다른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도 죽을 상황이 되면 죽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먼저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다.

불편하지만 묵직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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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성취 고객센터
마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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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각각의 이야기 주인공들의 사연에 휘둘리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풀어간다.

감정을 과도하게 풀어내지 않아 더 잔잔하고 진솔하게 다가왔다.

소원성취 앱을 만든 소원의 이야기가 뒤로 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사연이 더 부각된다.

소원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짧게 보여준 후 빠르게 진행한다.

한 소녀의 엄청난 성공, 성공 이후 은퇴 과정에서 생긴 문제도 역시 간략하게 다룬다.

그녀가 만든 앱을 다운 받고, 그 사연이 선택된 사람만 고객센터에 오게 된다.

고객센터의 위치는 서울 종로구 부재동, 왠지 현실의 부암동이 떠오른다.

작가가 풀어낸 여섯 사연은 각각 다른 분위기와 재미를 준다.


각 장의 제목에 CASE가 붙어 있다.

고객센터에서 다룬 사연 중 몇 개를 선별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가면 소설에 나온 사연 속 인물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만약 후속작을 생각했다면 살짝 떡밥이라도 던져 놓았을 텐데.

그리고 이 사연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미용실 시다, 웹 소설 작가, 일용직 노동자, 빵집 주인, 은행 직원, 행복 강의사 등이다.

이들의 일과 자신의 소원이 겹치고,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들의 일상에 힘든 일이 생기고, 소원성취 앱을 발견하면서 소원과 이어주는 구성이다.

소원이 고객의 휴대폰에 깔아둔 앱은 소원이 이해하는 그들의 소원성취 방법이다.


아이돌 덕후 은지가 미용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그 아이돌의 힘든 모습이 보일 때 그를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한다.

이때 발견한 소원성취 앱, 그리고 면접과 그녀의 소원을 반영한 새로운 앱.

마법사처럼 이 앱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지만 방향을 알려준다.

하지만 욕심은 의도하지 않은 사고로 이어지고, 새로운 국면을 마주한다.

작가는 이런 설정의 반복과 그들의 직업 등과 연결해 이야기를 변주한다.

인기 없는 웹소설 작가 은보는 악플러의 댓글을 차단하면서 멘탈을 붙잡는다.

한때 성공했던 책 때문에 그를 우르러보는 정육점 사장님의 연심도 나온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이지만 풀어가는 과정의 재미가 솔솔하다.


실패한 인생이지만 우연히 기른 길고양이에 진심인 아버지 서춘호.

고양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만 현실에서 이런 번역기는 없다.

작가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 과거와 연결해 삶을 새롭게 한다.

역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과도한 감정 이입은 없다.

오지랖이 넓은 빵집 사장님 도순.

그녀의 사연을 들으면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이용만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와 일상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소원성취 앱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몰랐다가 알게 되면서 바뀌는 생각들.

결국 이 일들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다.


동생의 자살, 자살의 이유가 너무나도 참혹했던 언니 다정의 복수심.

앞의 이야기들과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녀에게 소원이 만들어준 앱은 딱 세 번만 사용 가능하다.

첫 번째 사용이 만든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사고, 사라지지 않는 복수심.

앞에 나온 이야기들이 보여준 재미와 동떨어져 있는 전개 과정은 살짝 힘이 부족하다.

마지막 이야기는 행복 검투사의 불행한 췌장암 3기 소식으로 시작한다.

암이 주는 공포, 낮은 치료 가능성, 치료 거부 등.

그리고 그가 성공하게 된 사연 속 이야기 하나가 소원성취 앱을 통해 연결된다.

이후 펼쳐지는 몇몇 장면은 성공한 강사의 폭주와 깨달음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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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마법사들 - 사라진 그림자의 비밀
정채연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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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리 포터> 시리즈가 떠오른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영국 판타지 학원물이라면 이 소설은 판타지 미스터리에 더 가깝다.

<해리 포터>가 떠오른 이유는 일반인과 섀드로 나눈 설정이 가장 크다.

그림자 마법을 사용하는 섀드, 이들의 존재를 모르는 일반인들.

<해리 포터>가 마법사와 일반 사람을 구분하기 머글을 사용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마법 세계의 설정은 <해리 포터>와 다르다.

이 소설 속 그림자 마법사들은 그림자를 통해 그 힘을 발휘한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가 몇몇 대목에서 낯익지만 점점 그 설정이 촘촘해지고 있다.

모두 읽은 후 후속작을 기대한 것도 재미와 탄탄해진 세계관 때문이다.


그림자를 갈취당한 사람들, 갑자기 돌아온 그림자.

그림자 갈취로 죽게 된 사람들, 그림자 마법과 보통 사람들의 공존.

도입부는 많은 의혹을 자아내게 하고, 새로운 의문으로 넘어간다.

한 달만에 깨어난 제론. 그는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기억을 잃어버렸는데 그가 깨어난 집은 뉴욕의 비싼 아파트다.

창은 모두 커튼으로 닫혀 있고, 그가 제론이란 것을 인공지능이 알려준다.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하지만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집안에서 발견한 일곱 개의 마스크. 각각 다른 얼굴과 나이.

자신이 누군지 밝혀내는 과정 속에 마주하는 섀드의 세계.

그림자 마법은 서툴지만 그림자에 각인되어 있어 사용에 큰 무리가 없다.


작가는 이 낯선 세계를 천천히 하나씩 만들고 보여준다.

이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제논의 행동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의 기억을 잃은 그는 섀드의 세계에 한 발 내딛는다.

그 방법 중 하나로 제논의 다른 신분이 교수로 있던 대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전통의 유란섀드학교에 정식 입학자가 아닌 초보자 교실에 들어간다.

초보자 교실이란 설정은 작가가 구현한 세계를 설명하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다.

섀드란 사실을 늦게 알게 된 사람이나 그림자 마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딱 맞는다.

하지만 이런 교육 과정을 만든 데에는 그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작가는 조금씩 밑밥을 하나씩 풀어놓으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림자 마법. 현대 과학 기술과의 결합.

제논의 방에 있던 7개의 트랜스포머마스크.

남겨진 문자 등을 통해 그의 신분을 하나씩 알게 되는 기억을 잃은 제논.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도 찾아야 한다.

섀드의 인터넷을 통해 다른 신분의 정보들을 검색한다.

화려한 정보들이 나오고, 소설가로 쓴 소설들도 다루어진다.

학교에서는 기억조차 없는 그림자 마법을 책과 교수 등을 통해 조금씩 배운다.

이 과정에 그림자 마법의 다양한 사용 방법이 나오고, 공간의 경계를 지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장면이나 설정인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읽는 동안 제논의 정체와 그를 감시하는 듯한 여교수의 존재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의 다양한 신분을 표시하는 마스크들은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왔다.

과거의 흔적을 쫓는 과정에서 조금씩 흘린 몇 가지 장면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작가가 시리즈를 염두에 둔 듯한 몇 가지 장면이나 상황은 역시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그냥 이야기 속으로 쑥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설정에 한 방 먹었고, 이 한 방이 다음에 어떻게 풀릴 지 의문이다.

이야기의 설정과 캐릭터를 잘 이어간다면 멋진 시리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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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
엘리자베스 하드윅 지음, 임슬애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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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이 작가에 대한 극찬은 낯설지만 극찬한 작가들은 낯익다.

얇은 책이라 빨리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몇 쪽을 넘기지 않아 산산조각났다.

이야기 위주의 소설을 좋아하기에 이 소설은 더 힘들게 읽혔다.

문장에 대한 극찬은 읽는 동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문장은 시와 같고, 어떤 문장은 멋진 산문으로 이어져 있다.

자전적인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

잠시 나왔다가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 기억들.

단편적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나의 집중력을 순간 흐트렸다.

매일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헤맨 끝에 길이 보인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났다.


모두 읽은 후 역자의 글을 보면서 내가 놓친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수없이 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기억 사이에 놓인 간극.

그들에 대해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에서 보이는 공감.

현재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

상실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사람들과 기억들.

연도 표기가 주는 과거로의 회상과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

어쩌면 나의 회상도 이런 기억의 심연 속에서 불쑥 솟아올라오는지 모른다.

불면의 밤 온갖 기억의 단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 않았던가.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을 얽매이지 않았다.

문장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가 엮이면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다채로움을 충분히 느끼기에는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

다시 책을 앞으로 넘기면서 방금 읽은 듯한 이야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짧은 시간 속에서도 기억은 이렇게 부정확하다.

작가가 건져 올린 사람들과 회상은 어떤 부정확을 가지고 있을까?

독자는 알 수도 없고,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사실을 다룬 역사서가 아니다.

또 한 번 지키지 못할 약속 하나. 언젠가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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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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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지망생의 동경와 열정과 좌절을 담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한 없이 자란 화자.

컬럼비아대학 문예창작 워크숍에 참가해 소설가를 꿈꾼다.

자신이 쓴 소설이 합평 시간에 혹평을 받지만 한 명이 화자를 지지해준다.

그가 바로 화자가 재능을 동경하고 매혹된 빌리다.

빌리가 쓴 소설은 군더더기 없는 매력으로 모두의 칭찬을 받는다.

화자는 그와 가까워지려고 하고, 그가 일하는 바에 함께 간다.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환경을 보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함께 살자고 한다.

바의 한 귀퉁이에서 힘겹게 살던 빌리에게는 행운이다.


화자가 사는 아파트는 임대료 상한제한이 묶여 있는 건물이다.

그의 고모가 살다 남자 친구의 집으로 나간 후 그가 살고 있다.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다.

자신이 동경하는 빌리를 우발적으로 이 집안으로 들인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이지만 아주 저렴하게 살기에 가능한 일이다.

빌리는 이 행운을 자신의 노동력 등으로 갚으려고 한다.

청소와 음식 만들기 등의 노동으로 한동안 둘의 동거는 평화롭고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빌리는 돈의 지출 없이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가 일하면서 버는 돈은 자신의 삶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화자는 빌리와 함께 살면서 소설의 부족한 부분에 도움을 받는다.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이 조금씩 생긴다.

첫 파열음은 1996년 미국 대선을 둘러싼 논쟁이다.

화자는 당연히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빌리는 밥 돌을 지지한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도시 인텔리라는 것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중부의 노동자들이란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것은 단순화된 이분법이지만 논의할 대목들이 많은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빌리와 달리 화자는 여성들의 관심을 많이 끌지 못한다.

빌리가 자신의 매력을 알게 되면서 수많은 여성들과 자게 되지만 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돈이 궁핍하지 않은 화자가 편리함을 쫓아 자신이 비용을 부담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부담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빌리의 친척 결혼식 이후 생긴 일 하나가 둘의 간극을 더 벌인다.

어색해진 둘 사이, 자신의 아파트에게 나가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화자.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쉽게 떠날 마음이 없는 빌리.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 결코 나아지지 않는 합평, 다른 학우의 성공.

그리고 술에 취한 듯한 빌리의 도발과 비난.

술 핑계를 대면서 화자가 저지르는 부끄러운 행위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긴장감과 껄끄러운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이 행위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감정은 질투일까? 동경일까?

파국을 향한 발걸음은 이미 내딛었고 예상한 결말로 나아간다.


처음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다.

쉽게 예상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아가지 않는다.

둘 사이에 일어난 사건과 파국보다 더 시선을 끄는 부분은 ‘그 후’ 이야기다.

문예창작 워크숍에서 최고의 작가로 꼽힌 그의 출간작에 대한 흥행 여부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로 성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알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내는 것도 힘들지만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은 더 힘들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영화나 소설 속 작가 몇 명이 스쳐 지나갔다.

생각보다 재밌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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