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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1
김도경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3월
평점 :
한 여성이 자신의 난자를 추출하려고 한다. 이 여성의 이름은 송여지, 가상현실에서 레이로 불린다. 왜 난자를 뽑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이 세계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난자를 세계 최대 경매 사이트에 올린다. 돈이 필요해서다. 여기에 한 남자가 그녀에게 도움을 준다. 아노미아다. 그는 레이의 경매 가격을 올리는 역할을 맡았다. 경쟁이 붙어 가격은 점점 올라간다. 일반적인 가격을 훨씬 넘어섰다. 왜일까? 그녀는 평범한 애니메이터인데 말이다. 이렇게 거대한 음모와 놀라운 사실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아노미아는 남성 권리 연합(이하 남련) 소속이다. 이 미래 세계는 여성이 권력을 잡았다. 남자들은 남성성을 잃고 여자처럼 변하거나 권력의 중추에서 떨어져 있다. 과학의 발달은 근육의 힘보다 기계나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여성들이 더 잘 활약할 수 있게 만들었다. 대통령부터 정부 관료 대부분이 여자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조건 중 하나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여자들이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아주기 때문이다. 여성 억압의 역사가 뒤바뀌었다. 이런 세계에서 레이는 경매 낙찰 금액의 일부를 남련에 기부하겠다고 말한 상태다. 물론 여기에는 아노미아의 조그만 욕심이 담겨 있다.
레이와 아노미아가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정부 측에서는 여대통령 장수진과 그녀의 경호원 가희와 정보조직의 수장 마담 리즈와 그녀의 부하 준 등이 있다. 이들은 음모를 꾸미거나 이용하거나 이용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다국적기업의 하수인 로렌스와 카스트라토이자 남련의 대표인 B 등이 있다. 이들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속고 속이는 과정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레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험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 모든 것의 시발점은 레이의 난자들이다. 이것은 단지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자신을 도와준 아이를 수술할 비용 마련 때문이다. 이 세계에 대한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본격적인 SF 액션이 펼쳐진다.
소설은 왜 그녀의 난자가 정상 가격을 넘어 폭등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지게 만들고, 그녀를 둘러싼 수상한 음모와 마담 리즈의 DNA 정보 차단 등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여기에 대통령이 개발한 새로운 웹사이트의 가능성은 단순한 액션을 넘어 정치, 경제 등의 문제를 같이 다룬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그렇게 깊지는 않다. 하지만 화폐 대신 전기를 교환가치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발상은 놀랍다. ONS 백신 개발로 여대통령이 된 그녀에게 이 사업은 한국의 미래 성장을 보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그러니 당연하게 국제 자본들이 이것을 그대로 놓아둘 리가 없다. 특히 석유로 거대한 부를 불린 석유회사와 금융재벌 등.
SF적 발상을 통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활약과 액션은 볼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파워슈트와 같은 물건을 통해 근육의 한계를 기계로 대체하였고, 기계와 인간의 결합체를 좀비라고 부르면서 판타지의 영역을 과학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여기에 다이 블레이드란 검을 통해 파워슈트 등으로 몸을 보호한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다시 원초적인 액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작가의 미래 과학 인식 중 일부는 현재 과학 기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살짝 거부감이 생기게 만들었다. 리얼월드 대신 레알월드란 단어를 사용한 것도 현재의 시효성을 미래에 적용한 것이지만 스페인어 레알의 의미를 되새기면 아쉬운 대목이다.
작가는 한국이란 공간 속에서 출생의 비밀을 이용해 음모를 풀어내었다. 이 공간을 확장하지 않은 것은 박수를 칠만하지만 너무 쉽게 국제 음모가 발각되고 무너지는 부분은 역시 아쉽다. 처음에 주인공이었던 레이가 어느 순간 음모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출연 비중이 줄어든 것은 미래 세계나 내면 심리보다 액션에 더 무게를 실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덕분에 빠른 전개와 액션으로 가독성은 충분히 높였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개인 영웅주의와 충돌은 약간 전형적인 연출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좀더 빠르고 간결하면서 덜 설명적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