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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목걸이 -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메리 린리 테일러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14년 3월
평점 :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1917년부터 1948년까지 서울살이를 다룬 책이다. 딜쿠샤의 위치는 서대문과 사직공원의 사이에 있는 사직터널 뒤쪽에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붉은 벽돌에 1923년 건축연도가 표시된 건물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사진이 없는 것이 살짝 불만이었다. 역자가 현재 여러 가구가 살고 있다고 끝에 덧붙였지만 가장 확실한 자료 사진 한 장이면 될 텐데 하고 말이다. 덕분에 표지 그림과 사진을 비교하면서 그 동안 이 집이 어떻게 변했는지 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이 책을 썼지만 책을 출간한 것은 아들이다. 그녀는 1889년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출생연도와 가정 경제 내용을 적은 것은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이 환경이 그녀가 다른 국가를 보는 시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모험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고 표현한다. 아버지가 모험을, 어머니가 아름다움을 담당했다고 하면서 집을 찾아온 다양한 직업군을 말한다. 이때 경험이 그녀가 연극배우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닐 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호박 목걸이가 나온다. 가끔 영국 영화에서 보는 귀족들의 삶과 상당히 닮아 있는 풍경 등이다.
책은 그녀가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떠나게 되었는지로 시작한다. 바로 2차 대전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한국에 있던 외국인들은 잠정적으로 포로가 된다. 한국에 이십 수 년을 머물면서 쌓아온 관계와 기억과 추억과 물건 등을 두고 떠나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한국은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그곳이 아니다. 사실 이 부분은 뒤에 나오는데 분단 후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 풍경은 그녀가 살아온 방식에 의한 것이다.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낸 한국. 그곳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을 보면서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 등에 나가서 바라본 그곳의 모습과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다를까 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위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변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심할지도 모르지만. 이 시각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녀의 글에 등장하는 한국 사람들의 이름 대신 성만 나오는 것 때문이다. 또 어떤 장면들은 유럽인들이 동남아에서 그 나라 사람들을 하인 등으로 부리던 장면과 너무 닮아 있었다.
우리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는 현실에서 외부인의 시선과 기록은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책에 나오는 3.1운동이나 고종 황제 장례식 장면은 길지 않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 한 자락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녀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지나가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은 짧지만 강렬하다. 특히 스탈린 시대 소련의 모습은 거짓과 역설로 가득하다. 이런 모습이 그 당시 한국을 여행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이것은 우리가 가끔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짧게 경험한 것으로 그 나라를 평가하는 것과 아주 닮아 있다.
특권을 가진 외국인에 부유하기까지 한 그녀의 삶에서 결핍이란 자신이 살던 물건이나 문화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발생한다. 더 좋은 문화나 방식이 있다 하여도 그녀는 그것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문화를 그대로 유지할 만한 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생활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면서 생기는 불편함도 무시못할 것이다. 그렇게 많지 않은 돈으로 여러 명의 하인을 두고 집을 가꾸고 밖을 돌아다니는 그녀를 보면 어느 정도 거부감도 생긴다. 하지만 이것을 탓할 수 없다. 그녀의 삶이자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녀 주변 사람들이 받게 될 문화의 충격은 또 다른 문화의 형성과 발전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한국의 문화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인정하고 있다. 그 장면을 볼 때면 암울했던 그 시대가 그대로 느껴진다.
한국 서울에 딜쿠샤란 집을 지어놓았지만 그녀의 여행과 모험은 세계를 누빈다. 일본에서 남편 브루스를 만났고, 결혼은 인도에서 했다. 시베리아를 횡단했고, 유럽과 미국을 다녀왔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 쉬운 일정이 아니다. 한국으로 온 후도 그녀의 여행은 금강산, 원산, 금광 등으로 계속된다. 이 때문에 독자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 그 시대 그 나라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한국에 체류하던 외국인들의 모임이 어떤 사람들이 참가했는지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역시 단편적인 소식이나 정보에 머물면서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좀더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