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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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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란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없는 것 같다’란 표현을 쓰는 것은 그의 장편이나 단편을 읽었다는 확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단편 한두 편 정도는 어딘가에서 읽었을 것이다. 예전에 수많은 문학상 단편집들을 읽었으니. 하지만 장편은 모르겠다. 낯익은 제목들은 보이는데 읽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이런 상황들이 왠지 모르게 그의 소설에 쉽게 손이 가지 않게 한다. 책장을 뒤지면 그의 소설 한두 권 정도는 분명히 있을 텐데.

 

작가 이승우의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조금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취향이 아니다.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을 좋아하는데 그의 문장은 모호함과 복잡함으로 가득하다. 천천히 곱씹으면 분명한 차이가 보이지만 의미 중복을 이용한 문장은 읽기 불편하다. 물론 이런 불편을 통해 사물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그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는 관념적인 문장에 빠져 헤매고 다닐 마음도 여유도 없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역시 <이미, 어디>다. 나는 ‘이미’ 읽고 지나간 문장을 잊고 있었다.

 

표제작 <신중한 사람>을 읽으면서 불안과 분노를 느꼈다. Y의 신중함이 소심함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Y의 집이 전세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집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Y의 무능과 무력함에 분노가 생겼다. 정말 그의 아내가 치밀하지 못한 신중함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약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한 표현에 동의한다. 해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오랜 세월 근무한 직장인의 모습치고는 너무 유약하고 소심해서 오히려 낯설고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오래된 편지>와 <딥 오리진>은 작가 세계의 한 면을 살짝 엿본 느낌이다. 한 작가의 성공을 질시하는 작가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날 때 자세하게 묘사되는 심리 변화는 너무 솔직해서 섬뜩했다. 전작은 과거를 묻으려고 하고, 후작은 현실과 환상의 교묘한 경계를 통해 진실을 모호하게 처리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자주 저지르는 심리적 변화다. 낯익어 더 불편하게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리모컨이 필요해>에서 무기력한 한 가장의 삶을 서글프고 묘하게 쓸쓸하게 표현했는데 이상하게 은근한 여운을 남겨준다.

 

문학상을 수상한 <칼>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잘 몰랐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빠져들었다. 기이한 한 부자의 삶 속에 칼이 어떤 의미인가 알려줄 때 고개를 끄덕였고, “어머니는 가끔 나를 염려한다. 나는 나를 염려하지 않는다.”(224쪽)고 할 때 이 표현이 주는 재미와 깊이에 빠졌다. <어디에도 없는>는 비자를 받기 위한 유의 행동이 카프카의 소설 속 장면을 연상시켰다. 집행관이 주장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도 생기면서. <하지 않은 일>은 수사학적 문장으로 가득하다. 이 논리를 따라가면 현실이 얼마나 불분명하고 모호한지 알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 사람이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줄 때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분명히 이 소설집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모호함과 불확실함과 불안감 속에 드러나는 우리의 일상은 낯설지 않고, 신중한 사람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유약한 소심함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문장 구조 속에 숨겨진 분명한 차이가 수사학의 논리로 풀려나오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면 빨려들어간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다. ‘어디’로 나의 시선과 마음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군더더기 많은 문장과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 충분한 매력을 즐기지 못했지만 한 명의 작가를 가슴에 아로새기기엔 충분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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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의 계절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바버라 킹솔버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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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쪽이 넘는 대작이다. 단숨에 읽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추석 연휴에 버스에서 읽으려고 마음먹으면서 시간이 길어졌다. 움직이는 차와 불편한 자리가 몰입을 방해했다. 평소처럼 좀더 가벼운 책을 차안에서 읽었어야 했다. 요즘처럼 집중도가 떨어지는 시기에는 더욱. 집에 다시 돌아온 후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더 재미있어졌다. 가야할 곳과 만나야 할 사람이 많은 명절은 책에 집중할 시간을 좀처럼 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나에게 ‘천지개벽’이었다.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작가의 서두 문장이다. “돌돌 말린 레드카펫이 펼쳐지듯 소설의 서사가 일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때가 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체가 보이는 순간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작업이자, 먼저 믿을 것을 정하고 증거를 수집해가는 과정이다.” 이 한 마디는 실제 이 소설의 구성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 세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내다가 이들의 관계를 한순간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위해 작가는 각 주인공의 세계를 세밀하고 솔직하고 은밀하게 그려낸다. 이 과정 속에서 나온 자연의 생태계는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 그대로 모습을 보여준다.

 

세 주인공의 이름이 아닌 관심사를 각 장의 이름으로 내세운다. 포식자들, 나방의 사랑, 옛날 밤나무. 포식자의 주인공은 산림감시원인 디아나고, 나방의 사랑은 곤충학자 루사, 옛날 밤나무는 전직 교사이자 밤나무 품종을 개량하려는 가넷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나이 대이고 입장도 서로 다르다. 가장 젊은 쪽은 루사고, 다름은 디아나, 가넷이 가장 많다. 가넷과 함께 등장하는 옆집 노파 내니도 칠십 대다. 이 다른 연령대는 다른 위치와 입장에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 연령과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표현하는데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이것은 자연의 생태계를 섹스의 세계로 표현한 것과 은밀하게 연결된다.

 

먹이사슬의 가장 상층부를 차지하는 포식자. 여기서 중심이 되는 동물은 코요테다. 디아나는 코요테를 쫓고 관찰한다. 그녀는 결코 자연의 파괴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포식자를 죽이면서 벌어질 수 있는 생태계의 파괴를 두려워한다. 그녀를 조용히 뒤따르다가 그녀와 함께 자게 된 연하의 사냥꾼 에디 본도는 코요테를 잡으려고 한다. 마흔일곱에 폐경기를 앞둔 그녀가 야생의 세계에서 연하에 키도 그녀보다 작은 남자와 함께 하면서 가장 본능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그녀의 행동과 관찰은 인간의 본능과 자연의 본능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리고, 작가가 수집한 증거를 하나씩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과정이다.

 

루사는 남편 콜을 따라오면서 학자의 삶을 포기했다. 그런데 콜이 차 사고로 죽었다. 시골 대가족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그의 죽음은 한 번도 시골 대가족과 함께 생활한 적이 없는 그녀를 공황으로 몰아간다. 이전에도 많은 시누이들과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와이드너 농장을 꾸려나가야 하는데 그녀는 농사에 대한 경험도 없다. 젊은 그녀가 떠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시누이들 가족은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루사다. 이런 그녀가 과부가 된 슬픔과 번식의 본능 속에서 앓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한 편의 성장 소설처럼 보인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것이 그녀의 삶에 하나의 빛을 던져준다. 비록 한 해 동안만 유효하다고 해도.

 

옛날 밤나무 속 가넷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다. 백내장을 앓고 있고, 몸도 불편하다. 루사가 염소를 키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만 농사에서는 기존의 화학농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에 대척점에 선 인물이 바로 옆집 노파 내니다. 그녀는 자연농법으로 친환경농산물을 키우고 있다. 가넷이 제초제를 사용하려고 한 일로 투닥거리면서 대화가 시작되는데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자연에 대한 신의 관점부터 생활까지. 하지만 본능은 가넷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분량이지만 현재 미국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지 않나 생각한다.

 

이 세 명이 중심으로 등장하지만 이들과 관계된 사람들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에디는 자연림 속 자연생태계에 대한 설명을 듣는 역할을 맡고, 크리스는 나방을 비롯한 곤충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내니와 가넷은 한쌍으로 등장해서 현재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들을 되살려내면서 서서히 유대감을 쌓아간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면서 이 과정을 묵직하게 풀어낸다. 인간이 가진 야생성과 생식의 본능을 자연의 거대한 섭리 속에 녹여내었다. 도식적으로 흐를 수 있는 생태문학을 인간의 삶과 관계를 직시하고 통찰하면서 멋지게 엮었다.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인 “모든 선택이 선택당한 쪽에게는 천지개벽이다.”(713쪽)란 글로 인드라의 그물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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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년 서유기 1
이말년 글.그림 / 애니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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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림만 놓고 본다면 이말년의 만화는 볼 맛이 나지 않는다. 배경없이 인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만화는 그냥 흘깃 봐서는 그 재미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처음 자주 가는 사이트 게시판에 웹툰이 올라왔을 때 제대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기존에 보던 만화 보기도 바쁜데 새로운 작가의 그림이 엉성한 만화까지 보기에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점점 그의 이름이 많이 나오면서 조금씩 관심을 두었다. 특히 야구 웹툰. 자주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과 분석에 눈길이 갔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속된 말로 그의 병맛에 길들여졌다.

 

그의 만화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독설이 넘쳐난다. 어떻게 보면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그에 대한 호불호를 불러오고, 독자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한다. 사실 그가 서유기를 연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고 보지는 않았겠지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지는 궁금했을 것이다. 인터넷 서점 책 정보를 보면 원전에 충실하다는 글이 있다. 이 정보가 이 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전에 故 고우영의 만화에 빠져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 원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늘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다가 생각해보니 내가 한 번도 원전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만화나 애니나 영화 등으로만 <서유기>를 알고 있지. 그리고 이 이야기의 후반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1권은 손오공의 탄생과 천계로 가기 전까지 이야기를 다룬다. 당연히 이 일을 원전의 이야기 틀로 풀어내지 않는다. 현대적 재해석이 가미되고, 새로운 캐릭터가 만들지만 기존의 병맛과 풍자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림체는 기존 만화와 크게 차별되지 않는다. 웹툰에 연재된 것을 단행본으로 옮긴 것이라 각 쪽별 구성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이런 간결한 구성과 그림체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좋은 형식이다. 그림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겠지만 내용에 잘 몰입하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가독성을 높여준다. 거기에 그만의 독특하고 기발한 해석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는 읽는 재미를 극대화시킨다.

 

그는 이 작품 이전에 한 번도 장편을 연재한 적이 없다. 이 사실은 실제 이 작품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단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완결까지 이 호흡과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겨우 천계로 올라가는 과정임을 생각하면 앞으로 나와야 할 권수가 상당할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원전 한 권만 연구하지 않은 것 같은데 과연 어떤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지 궁금하다. 서장으로 함께 갈 동료 중 저팔계만 나온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 동료들의 등장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이런 궁금점들을 가지고 다음 권을 기다려본다. 아니면 웹툰으로 달려가야 하나! 웹툰에 없다고 하는 주요 인물 소개를 생각하면 그냥 이대로 있어야 하나! 선택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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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특별한 한 달, 라오스
이윤세 글.사진 / 반디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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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세란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귀여니라면 다르다. 이미 영화로도 그녀의 소설이 몇 편 만들어졌고, 한때 그녀의 소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바로 올라가곤 했다. 그녀의 문장을 따라한 수많은 인터넷 소설들이 양산되었고, 인터넷에 그녀에 대한 무수한 안티와 호응 글이 올라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것은 영화 잡지 ‘키노’의 편집장이었던 정성일 씨의 호응이었다. 그 때문에 한 번 읽어볼까 하고 마음먹었지만 역시 비문으로 가득한 글과 취향과 다른 내용 때문에 포기했다. 그러나 아직도 강동원에 대한 자료 화면으로 나오는 <늑대의 유혹> 속 한 장면으로 보여줄 때면 그 장면만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다른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솔직히 거의 한 장면도 생각나지 않지만.

 

귀여니의 라오스 여행기란 소개에 주춤한 것도 사실이다. 혹시 비문으로 가득한 여행기가 되어 나를 혼란으로 이끌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살짝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녀의 소설을 읽지 않아 문장이 어느 정도 닮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비교적 잘 읽혔다. 소설가였던 이력 때문인지 몇몇 에피소드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덕분에 글 전체가 담백한 느낌은 사라졌다. 감상이나 느낌보다 이야기와 대사가 더 많은 글은 가독성을 높여주었지만 라오스에 대한 감상과 현실적인 정보를 더 많이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한 달 동안의 그녀가 선택한 여행을 보여주는 글이니 이 또한 독자들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여행기라고 하지만 사실 사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사진이 중심이 아니고 이야기가 중심에 놓여 있다 보니 관광지 풍경 또한 많이 생략되어 있다. 물론 이런 사진은 인터넷 검색으로 멋진 풍경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여행자만의 시선으로 본 풍경을 좋은 화질 혹은 큰 화면으로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사진이 너무 작아 얼굴이나 풍경 등이 잘 보이지 않아 더욱 그렇다. 반면에 가끔 들어가 있는 그림 몇 장은 여행 에세이와 맞지 않은 느낌이다. 현실을 보여주기보다는 하이틴 로맨스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러스트를 넣은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그녀의 팬들을 생각하면 음~

 

한 성공한 소설가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가 불시에 떠난 한 달 간의 여행은 기존에 본 라오스 여행기와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그때 여행기가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을 두고 배낭여행객의 시선으로 그 도시들을 지나갔다면 이번 여행기는 여유를 뒤에 남겨둔 채 떠난 배낭여행객의 시선이다. 그녀가 경험한 일들이 결코 쉽다는 말이 아니라 간략하게 묘사되거나 생략된 행간의 글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다. 힘들고 고된 그 지역 버스를 타고 돌아다닌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느낌보다 나도 이번에 경험해봐야지 하는 느낌으로 더 다가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나의 착각이라면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작가의 여행을 보면 굉장히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해진다. 낯선 사람들과 대화도 잘 하고, 함께 어울리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어떨 때는 무척 부러웠다. 짧은 여행을 갈 때면 그냥 목적지로 향해 움직이기만 하는 나의 일정을 생각할 때, 혹은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 여행기의 대부분은 이런 사람들과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배낭여행객의 감상이나 경험보다 이야기가 중심에 놓이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여행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지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다. 아마 소설가의 힘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살짝 해본다.

 

현실적인 정보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앞에서 말했지만 그녀가 돌아다닌 마을의 간략한 지도와 정보는 눈에 확 들어온다. 부록으로 나온 라오스 정보는 짧은 일정을 짜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좋은 호텔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인터넷 검색으로 얻을 수 있지만 이런 게스트 하우스 정보는 경험자들의 후기가 더 현실적이고 더 정확하다. 그리고 후기에서도 말했듯이 이 글에 나온 라오스 이야기에는 나쁜 것들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그녀의 선택은 이런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더 부각시켜 그 나라를 보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방콕 행 버스 에피소드는 태국과 라오스 두 나라의 차이를 가장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배낭을 메고 한 달 동안 라오스를 돌아다니면 나도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고 싶은 루앙프라방이 너무 간결하게 나와 아쉬웠지만 이전에 몰랐던 몇 곳을 더 알게 되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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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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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용규의 책 중 이 책 이전에 읽었던 것은 철학이 아니고 소설이다. 인문학 책도 몇 권 사놓았지만 일단 소설을 먼저 읽었다. 지식소설이란 부제가 붙어있지만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에 대해 잘 모를 때는 그냥 약간 어려운 소설가 정도로 생각했다. 한해가 시작할 때면 인문학 서적을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어야지 마음을 먹지만 이것은 잘 지키지 않는다. 늘 부족한 시간을 쪼개 책을 읽어야 하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서 빨리 읽어야지 하는 조급증이 생기면서 항상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다. 읽고 싶은 인문학 책보다 소설이 더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런 생활 중 내 앞에 나타난 이 책은 처음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예상보다 쉽게 다가왔다. 물론 그 정도와 깊이 아주 얕다.

 

회사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고 하는 말 중 하나가 ‘생각 좀 해라’다. 정말 직원들의 보고서나 메일을 볼 때면 얼마나 대충 정성없이 글을 썼는지 한 눈에 들어온다.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설명도 하지 못하는 보고서가 대부분이다. 그럼 나 자신은 잘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아니요’다. 왜 그런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에 대한 답을 살짝 보여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허술하고, 훈련 혹은 공부가 부족했는지 알려준다. 시험용 공부만 한 사람들이 제대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고.

 

저자는 생각을 이렇게 정의한다. “생각은 다른 무엇이 아니다. 무한한 대상들(자연, 사회, 인간 등) 앞에서 혼란스러워진 우리의 정신이 질서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그것은 보통 다양하고 복잡한 대상들을 몇 가지 단순한 패턴에 의해 정리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패턴들이 서로 모여 더 크고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간다.”(13쪽) 그리고 이 생각의 도구들로써 다섯 가지를 말한다.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 등이다. 처음 이 단어를 보았을 때 의문이 살짝 들었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단순히 이 다섯 도구만 있으면 생각을 잘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도구를 제대로 사용해야만 가능하다. 이것을 위해 저자는 기원적 8세기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철학사와 과학사 등을 연구했다. 그 연구와 통찰의 결과로 인류 보편의 문명을 창조한 가장 핵심적인 지혜가 바로 ‘생각’이란 것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식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생각 이전의 생각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역사 탐구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이 다섯 도구의 역할과 쓰임새를 자세히 알려준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창 시절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 단순히 암기만 했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면서 앞으로 공부해야할 것들을 던져준다.

 

개인적으로 이 다섯 도구 중 가장 놀랐던 것은 문장이다. “문장은 단순히 생각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정신 안에서 세계와 그의 질서를 구성하게 하는 생각의 도구다. 정신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정신을 만든다.”(324쪽)라고 말할 때 충격을 받았다. 그리스 문법과 문장의 명확성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철학이 발전하게 되었는지 설명한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명확하고 좋은 문장이 만들어내는 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이 논리의 모순을 뚫고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 실체를 정확하게 바라보게 할 때, 가슴과 머리로 동시에 들어올 때 엄청난 정신적 희열을 느낀다. 그 한 문장이 때로는 평생의 문장이 되기도 한다.

 

생각의 도구를 통해 동일성과 유사성을 계속 말한다. 사실 이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나온다. “근대적 이성이 동일성을 근거로 한 사유 방식이라면,‘logos'가 상징하는 생각의 도구들은 유사성을 근거로 한 생각의 패턴이다.”(461쪽) 여기서 동일성은 유사성이 딱딱하고 날카롭게 경직된 특별한 형태라고 규정하고, 경계에서 조화롭고 융합하는 유사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흑과 백으로 구분하고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한계에 대한 강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확하고 명확하고 분명한 문장이 아니라 생략되고 왜곡되고 뒤틀린 문장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에 대한 학습서이기도 하다.

 

지식과 생각을 구분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혼용한다. 다름과 틀림을 똑같이 사용하듯이. 알고 있다는 것과 이것을 이용해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분명히 다르다. 예전에 일을 하면서 아주 미묘한 차이를 그냥 구분하지 않고 했는데 어느 순간 이 미묘한 차이가 아주 크게 다가온 적이 있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비슷한 것이었고, 이 비슷한 것이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더 깊고 넓어졌다. 이 과정들은 사실 학창시절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인데 그냥 넘어왔다. 어쩌면 그 당시 선생들도 몰랐는지 모른다. 정보의 양이 절대적으로 늘어난 요즘 지식은 인터넷으로 빠르게 검색된다. 하지만 이것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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