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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생 ㅣ 소설NEW 1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9월
평점 :
태양력에 길들여진 나에게 2월 30일은 존재하지 않는 날이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존재하지 않는 날에 태어난 사람이 만들어낼 기묘한 이야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무지에서 비롯한 착각이다. 이때 말하는 2월 30일은 음력을 의미한다. 잘 사용하지 않는 달력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독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시선 유도만 의도한 것은 아니다. 잊고 있거나 잊고자 하는 것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미스터리 형식을 가진다. 불륜과 그 대상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그 불륜녀의 죽음. 이 사건에서 시작한 의문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현대사의 비극과 마주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중심에서는 그녀, 혜린을 죽인 자는 누군가 하는 의문이 도사리고 있다. 지워진 기억과 시간이 정확하게 사건을 재현하는데 실패하고, 지방 권력과 유착한 할아버지의 힘에 의해 조사에서 풀려나지만 이것이 바로 자신의 집안을 다시 되돌아보고, 조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때 다시 이 살인과 비슷했던 30여 년 전 하나의 죽음이 떠오른다. 이 소설에서 비밀의 방을 여는 열쇠 역할은 하는 조개다방의 여주인 만리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현재다. 하지만 이 전체 이야기를 지배하는 인물은 할아버지 윤조다. 가상의 도시인 J시 유지이자 도시 전체에 엄청난 존재감과 함께 수많은 연문을 뿌린 인물이다. 경남의 어떤 도시를 모델로 한 듯한 J시는 여당의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 당선이 유력하다. 할아버지 윤조가 나가면 쉬운데 그는 뒤로 물러나고 아들의 공천을 위해 노력한다. 국회의원에 대한 집착이 있다. 구십이 넘은 노구이기도 하지만 이전까지 왜 한 번도 자신이 직접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들의 공천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방송에 내보낼 정도임을 감안하면 더 이상하다.
시작은 혜린의 죽음이지만 그 끝은 불분명함으로 가득하다. 정황증거는 현재를 범인으로 몰고 가지만 가장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그의 정확한 기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기억이 사라졌다. 미국 유학시절 한 마약 등에 의해 뇌 한 부분이 고장난 모양이다. 여기에 자신의 손자를 용의자에서 빼내기 위한 할아버지의 증거와 증언 조작은 사실을 파악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준다. 그리고 혜린의 죽음은 단순히 우발적인 살인만은 아니다. 그 밑에 감춰진 엄청난 비밀은 기존의 모든 것을 파괴할 정도다. 하나의 단서를 가지고 과거를 파헤치는 현재의 모습은 작가가 왜 그의 직업을 방송국 PD로 설정했는지 잘 보여준다.
기본 줄거리는 혜린의 죽음을 파헤치는 현재와 그 과정에서 드러난 두 인물, 만리와 박대길의 과거를 파헤치는 것이다. 단서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록에 의존하기는 너무 자료가 없다. 하지만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때 할아버지의 연인들이었던 과부들이다. 윤조를 둘러싼 그들의 갈등과 질투와 싸움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 앙금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과 추억은 현재로 하여금 만리와 그 가족을 조사하는데 큰 힘이 된다. 여기에 아버지의 공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흑색선전과 비방전은 끝났다고 생각한 혜린의 살인사건을 다시 되살리는 역할을 한다.
공천과 선거를 위한 상대방의 노력은 단순히 한 개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 전체를 뒤흔든다. 혜린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 하나씩 드러나는 가족의 숨겨진 비밀은 낯익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흔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흔드는 비밀은 사실 처음 읽을 때 아닐 거야 하면서 지워버린 설정이다. 작가는 처음 예상한 설정을 가장 비밀로 반전처럼 풀어내는데 이 설정과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힘이 딸린다. 제대로 정교하게 이것을 풀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할아버지와 다른 선택한 그가 동생인 미래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댄 것이다. 그의 현재가 이제 새로운 미래를 위해 자신의 의지를 밖으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