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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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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 가는 길>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른다. 나에게는 이런 소설들이 몇 권 있다. 내용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만 재미있게 읽은 책들 말이다. 이후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진술>에 대한 극찬을 읽고 사서 읽고 난 후 이전과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몰입도와 재미와 반전까지 펼쳐지는 그 소설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해 기억하는 최고의 소설이다. 그리고 2년 전에 나온 <손님>도 상당히 좋았다. 경마장 시리즈를 다 읽지는 않았지만 몇 권 읽으면서 재미와 이해의 간극을 크게 경험한 것과 비교해 이 두 작품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럼 이번 소설은 어떤가?

 

누나라는 제목과 함께 기대한 것은 이전과 비슷한 구성의 소설이었다. 그런데 얼마 읽지 않아서 이전과 다른 소설임을 깨닫게 되었다. 열두 살 소년이 화자로 등장해서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귀신과 전설과 환상 등을 섞어 사슬처럼 이야기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텔레비전도, 아니 라디오도 없던 시절을 배경으로 열두 살 소년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 아주 잘 그려내었다. 토속적인 구어도 좋았지만 어떻게 포장하면 한 소년의 성장소설일 수도 있는데 ‘씹’과 같은 노골적인 표현을 적나라하게 사용해 놀라게 했다. 이 단어가 한두 번 정도 나오면 엄숙한 문단의 분위기가 반영되었구나 생각할 텐데 끝까지 나오면서 더 놀랐다. 아마 나의 놀람은 다른 소설들에서 이렇게 열두 살 소년이 이 단어를 지속적으로 노골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자지를 본 여자의 보지를 봐서 입을 다물게 하겠다고 생각을 하는 장면들에서 전혀 각색되지 않은 노골적 표현들이 등장하고, 귀신과 뱀을 두려워하는 소년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용기를 내는 장면은 풋풋한 첫사랑의 분위기가 풍긴다. 약간 미친 것 같다는 누나의 사연이나 까마귀 눈알을 먹어 귀신을 본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괴담 같다. 만오천 년을 산 나무와 결혼한 이야기나 동굴에 들어가서 난쟁이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 전체 분위기 속에서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전설과 설화가 너무 당연한 듯 소년의 입을 통해 나올 때 마치 그것들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책의 재미난 구성 중 하나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체 이야기가 완전히 독립된 것도 아니다. 어느 것은 갑자기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사슬은 단단하게 이어져 있고, 열두 살 소년의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상상력과 충격과 아픔으로 가득한지 잘 보여준다. 열두 살 소년의 이해 안에서 보는 세상과 실제 세상과의 차이를 볼 때면 순수함을 상실한 나의 모습과 아직은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열두 살의 현실이 먼저 다가온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될 때면 나의 그 시절이 살짝 떠오른다. 아마 나도 그랬지 않았을까 하고.

 

정확한 연도는 나오지 않지만 70년 대 초로 예상되는 그 시절 삶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 풍요보다 결핍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펼쳐지는 열두 살 소년의 모험과 사랑은 이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년의 입을 통해, 생각을 통해 나오는 단어와 이야기들은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란 생각에서 쉽게 내뱉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런 착각의 틈새를 잘 포착하고, 불분명한 이야기 때문에 오해와 환상이 덧붙여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속에도 삶이 들어있다. 작가의 이전 작품과 조금 색다른 느낌이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이 문득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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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 어디로 가니?
김병종 글.그림 / 열림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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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은 작가가 16년간 길렀던 포메라니안 강아지 이름이다. 이 강아지가 죽은 후 가슴 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쓴 글이 바로 이 책이다. 16년을 함께 한 애완견이라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정으로 사랑으로 충분히 쌓일 시간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이 강아지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자신도 모르게 쌓인 사랑의 깊이와 높이는 대단할 것이다. 이런 감정을 그는 자연스럽게 풀어내지도 정리하지도 못했다. 이 에세이는 자스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글이자 자기 가족과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의 자취를 돌아보는 일이 된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애완견을 극성스럽게 돌보는 사람들을 혐오의 눈길로 바라보고는 했다는 고백을 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나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개를 계속 키우시고, 집에 갈 때면 이 개들을 보게 되는 나에게 이 극성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가끔 정도를 넘어선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을 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 애완동물들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들에게 전해주는지 알고 있기에 더욱 더 그렇다. 이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온전히 사람들에게 달린 문제다.

 

작가는 16년간 함께 한 자스민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삶의 지혜를 배운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이 바로 ‘자스민의 일기’라는 부제로 나오는 이야기다. 자스민의 일기는 개의 시선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받아들이는데 우리가 너무 무심코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아주 많이 담겨 있어 깜짝 놀란다. 작가는 이 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들여다보고 자스민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 해석이 실제와 얼마나 같은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 일기가 바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허점과 모숨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16년의 시간은 한 마리의 개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스민이 처음 왔을 때 아이였던 두 아들이 군대에 다녀오거나 갈 정도의 긴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자스민은 이들 가족과 함께 놀고 뛰고 먹고 바라보고 기다리며 사랑을 쌓아왔다. 작가는 “바라본다는 것, 사랑은 바로 그 지검에서 발화한다.”고 말한다. 바라보면서 의미가 부여되고 자스민은 가족의 일원으로 조용히 자리한다. 같이 사는 동안 작가가 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 에세이다.

 

이 에세이는 자스민에 대한 기억이자 추억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자스민을 애도하기 위한 추도글이자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글들이다. 그래서 자스민의 행동은 자신과 가족들의 행동과 반응이 함께 다루어진다. 그 속에서 가장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은 자스민의 죽음과 시간에 대한 통찰이다. 부모님의 죽음과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겹쳐지고, 이 감정들은 자스민의 추억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이 추억은 아프다. 짧은 만남만을 가진 내가 우리집 강아지들의 죽음에 어떤 아픔과 슬픔을 느꼈는지 생각하면 그의 상실은 생각 이상일 것이다.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가슴 한 곳에 조용히 묻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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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생 소설NEW 1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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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력에 길들여진 나에게 2월 30일은 존재하지 않는 날이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존재하지 않는 날에 태어난 사람이 만들어낼 기묘한 이야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무지에서 비롯한 착각이다. 이때 말하는 2월 30일은 음력을 의미한다. 잘 사용하지 않는 달력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독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시선 유도만 의도한 것은 아니다. 잊고 있거나 잊고자 하는 것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의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미스터리 형식을 가진다. 불륜과 그 대상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그 불륜녀의 죽음. 이 사건에서 시작한 의문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현대사의 비극과 마주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중심에서는 그녀, 혜린을 죽인 자는 누군가 하는 의문이 도사리고 있다. 지워진 기억과 시간이 정확하게 사건을 재현하는데 실패하고, 지방 권력과 유착한 할아버지의 힘에 의해 조사에서 풀려나지만 이것이 바로 자신의 집안을 다시 되돌아보고, 조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때 다시 이 살인과 비슷했던 30여 년 전 하나의 죽음이 떠오른다. 이 소설에서 비밀의 방을 여는 열쇠 역할은 하는 조개다방의 여주인 만리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현재다. 하지만 이 전체 이야기를 지배하는 인물은 할아버지 윤조다. 가상의 도시인 J시 유지이자 도시 전체에 엄청난 존재감과 함께 수많은 연문을 뿌린 인물이다. 경남의 어떤 도시를 모델로 한 듯한 J시는 여당의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 당선이 유력하다. 할아버지 윤조가 나가면 쉬운데 그는 뒤로 물러나고 아들의 공천을 위해 노력한다. 국회의원에 대한 집착이 있다. 구십이 넘은 노구이기도 하지만 이전까지 왜 한 번도 자신이 직접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들의 공천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방송에 내보낼 정도임을 감안하면 더 이상하다.

 

시작은 혜린의 죽음이지만 그 끝은 불분명함으로 가득하다. 정황증거는 현재를 범인으로 몰고 가지만 가장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그의 정확한 기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기억이 사라졌다. 미국 유학시절 한 마약 등에 의해 뇌 한 부분이 고장난 모양이다. 여기에 자신의 손자를 용의자에서 빼내기 위한 할아버지의 증거와 증언 조작은 사실을 파악하는데 더 큰 어려움을 준다. 그리고 혜린의 죽음은 단순히 우발적인 살인만은 아니다. 그 밑에 감춰진 엄청난 비밀은 기존의 모든 것을 파괴할 정도다. 하나의 단서를 가지고 과거를 파헤치는 현재의 모습은 작가가 왜 그의 직업을 방송국 PD로 설정했는지 잘 보여준다.

 

기본 줄거리는 혜린의 죽음을 파헤치는 현재와 그 과정에서 드러난 두 인물, 만리와 박대길의 과거를 파헤치는 것이다. 단서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록에 의존하기는 너무 자료가 없다. 하지만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때 할아버지의 연인들이었던 과부들이다. 윤조를 둘러싼 그들의 갈등과 질투와 싸움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 앙금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과 추억은 현재로 하여금 만리와 그 가족을 조사하는데 큰 힘이 된다. 여기에 아버지의 공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흑색선전과 비방전은 끝났다고 생각한 혜린의 살인사건을 다시 되살리는 역할을 한다.

 

공천과 선거를 위한 상대방의 노력은 단순히 한 개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 전체를 뒤흔든다. 혜린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 하나씩 드러나는 가족의 숨겨진 비밀은 낯익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흔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흔드는 비밀은 사실 처음 읽을 때 아닐 거야 하면서 지워버린 설정이다. 작가는 처음 예상한 설정을 가장 비밀로 반전처럼 풀어내는데 이 설정과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힘이 딸린다. 제대로 정교하게 이것을 풀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할아버지와 다른 선택한 그가 동생인 미래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댄 것이다. 그의 현재가 이제 새로운 미래를 위해 자신의 의지를 밖으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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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렌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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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 첫 권이자 이전에 나왔던 <능숙한 솜씨>의 개정판이다. 작가의 처녀작이기도 하다. 피에르 르메트르를 처음 만난 것이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였다. 묵직한 문장과 반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이후 읽은 두 권도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이 작가를 처음으로 인식시켜 준 것은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 2권인 <알렉스>다. 이 소설에 대한 호평을 많이 읽었고 이것이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실제 그의 작품을 신뢰하게 된 것은 다른 소설들이다. 시간이 되면 이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을 예정이다.

 

카미유 베르호벤의 키는 145센티미터다. 형사반장이지만 그에게 어떤 육체적인 힘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그는 키를 상쇄하기 충분한 예리한 지성과 뛰어난 예술적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에게는 예쁜 아내가 있다. 그녀는 임신 중이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데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부하인 루이가 경악할 정도의 끔찍한 살인 현장이다. 실제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경찰들이 나와서 구토를 할 정도다. 너무나도 참혹해서 그조차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현장은 참혹하고 끔찍한 것을 넘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연출되어 있다. 카미유는 그것을 찾고자 한다.

 

이전 번역본 제목이 <능숙한 솜씨>였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았다. 연쇄살인범인 연출한 살인 현장이 보통의 솜씨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범인은 흔적을 지우고 없애기보다 많이 남겨놓으면서 노골적으로 형사를 도발한다. 이 소설에서 그 도발의 대상은 바로 카미유다. 카미유는 현장에서 나온 정보를 통해 다른 살인사건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지역을 다른 나라까지 확장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첫 번째 살인 현장에 대한 조사 중 순간적인 영감으로 <블랙 달리아>의 살인 장면과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런 가설을 순순히 경찰과 검찰이 믿질 않는다. 실제 두 번째 살인 현장이자 카미유의 구역에서 발생한 살인은 그 끔찍한 소설인 <아메리카 사이코>의 한 장면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 추리소설들을 등장시키고, 그 소설 중 한 장면을 살인 장면으로 인용하면서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다. 덕분에 이전에 읽었거나 읽으려고 한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반전과 감탄은 바로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하면서 생긴다. 기존에 생각했던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앞에 읽었던 것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작가의 ‘능숙한 솜씨’가 발휘된 것이다.

 

정체가 숨겨진 연쇄살인범을 쫓기 위한 카미유의 노력은 언제나 내부정보가 유출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추리소설 속 살인 장면을 재현한다는 그의 가설도 신문기자가 기사로 작성하면서 그를 우롱할 정도다. 특급 정보의 유출은 수사 일선에서 그가 활약하는 것을 금지시킬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여기에 카미유의 권한을 넘어선 행동 몇 가지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직장 생활의 위기는 임신한 아내와의 관계도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물론 이혼할 정도는 아니다. 그의 아내 이름이 소설의 제목인 것을 감안하면 분명 어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예상 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사건이 마무리될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언제나처럼 사유적이고 묵직한 문장과 파격적인 구성은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반전은 단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이 시리즈임을 감안할 때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지고, 대단한 호평을 받은 작품이 만들어낸 반전의 연속은 또 어떨지 자연스레 기대하게 된다. 시리즈 마지막 권의 제목이 <카미유>인데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간단하게 요약하기 힘든 내용과 구성을 가진 소설이다. 특히 카미유의 성격은 다른 소설을 읽어야만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도 구성에 대한 설정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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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
미쓰모토 마사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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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이 어려운 제목이다. 자극적인 제목이다. 역 앞에 자살센터가 있다니 희한하다. 그런데 이 자살센터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식 기관이다. 한 유명 유도선수가 투신 자살자와 부딪혀 죽은 후 논쟁이 벌어졌고, 그 후 자살을 관리하기 위해 생겼다. 이 자살센터에 오면 바로 자살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섯 번의 정기 방문과 의사를 타진한 후 죽게 된다. 이 다섯 번의 방문은 자살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자 그들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바로잡을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자살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자살센터를 만든다고 자살이 관리가 될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소설적 상상력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어느 정도 감안하자. 이 소설 속에서 자살센터를 통하지 않고 자살을 할 경우 자살자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주어진다. 그리고 자살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나이가 열네 살부터로 제한되어 있다. 열세 살은 자살센터를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학생들이 자살하는 경우는 매우 한정적이다. 왕따로 인한 자살일 경우 학교 교직원과 관련 학생들은 실직을 하거나 평생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한다. 작가가 설정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몇 가지 장치들이다.

 

도이 요스케는 전철에서 묻지마 살인에 의해 한 살된 아기가 죽었다. 재판이 벌어졌고, 6년이 지난 후 살인자는 사형되었다. 이 범인의 죽음이 도이로 하여금 현실에서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처음에 왜 그가 자살하려고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이 자살센터의 운영과 그의 평범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뿐이다. 유리는 그의 전처이자 아기의 엄마다. 이혼 후 정기적으로 만나다가 갑자기 그 주기가 깨진다. 그들의 만남은 그 어떤 낌새도 없다. 건조하다. 하지만 이 건조함 뒤에는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강한 외로움과 괴로움과 고통이 존재한다. 아기가 죽게 된 사연이 나올 때, 진실이 하나씩 풀려나올 때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용솟음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살을 생각할 것이다. 실제 자살하는 사람은 이 중에서 극히 일부다. 자살의 가장 많은 이유 중 하나가 금전적 문제다. 이 자살센터는 이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자살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도이같은 경우는 말리는 것이 쉽지 않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거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진심으로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소설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치열한 문제의식이 없다보니 속도감 있게 읽히지만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거리가 부족하다. 자살만 놓고 본다면 <유령 인명 구조대>가 더 현실적이고 더 재미있지 않나 생각한다.

 

모호한 꿈에서 시작하여 사람을 죽인 후 시체 일부분을 가족에게 보내는 절단마에 대한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도이의 삶과 자살센터도 같이 흘러나온다. 중심에 있는 것은 자살센터를 방문하는 도이가 있고, 작은 에피소드처럼 꿈과 절단마가 나온다. 흔한 추리소설이라면 절단마와 도이를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겠지만 이 둘은 다르게 진행된다. 다섯 번의 자살센터 방문이 중심을 잡고 다른 이야기들이 같이 다루어지면서 죽으려는 도이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낸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개인적으로 깊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비약은 약간 뜬금없었다. 풀어놓은 설정을 억지로 연결시키고 현실을 파괴해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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