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필드 안전가옥 쇼-트 25
박문영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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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25권이다.

낯선 작가라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다른 단편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하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있다.

장편도 있고, 앤솔로지 참여도 많이 보이는데 아직은 조금 낯선 이름이다.

이 경장편은 웹진 <비유>의 초단편에서 확장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이런 확장을 좋아하는 편이고, 가끔 장편으로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단편들이 보인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역시 컬러 뱅글이다.

이 뱅글은 각자의 성적 페로몬을 반영해 색을 드러내는 팔찌다.

덕분에 연애는 더 쉬워졌고, 삶의 방식도 변한다.


뱅글은 기본적으로 매칭 서비스 제품이다.

이 제품을 만든 기업 컬러 필드는 같은 이름의 컬러 필드란 도시를 만들었다.

뱅글의 색을 보고 자신에게 맞는 상대와 연애를 하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헤어진다.

컬러 필드란 도시가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는 줄어드는 출생률을 올리고 싶기 때문이다.

20~30대 젊은 청춘들이 이 제품의 주 사용자인데 뱅글은 보안기능도 있다.

하지만 비싼 정품 뱅글 대신 가짜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비싼 것 때문에 가짜를 사는 것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

장은조가 찬 뱅글은 쓸데없는 사람들을 물리치기 위한 용도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그 사람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안류지는 컬러 필드의 리스크관리팀 직원이다.

한 공사장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는데 그가 뱅글을 차고 있었다.

시신 옆에 놓인 깨진 뱅글, 이것은 가짜다.

죽은 이는 대학 교수이고, 그의 아내가 자신이 죽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여자의 주장이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한다.

정신병 이력과 현실과 꿈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 때문이다.

이렇게 한 죽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컬러 필드와 뱅글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안류지를 주변에서 관찰하는 장은조의 모습이 보인다.


장은조는 어릴 때 가슴 아픈 기억을 하나 품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도시락을 싼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여자에게 그 도시락을 준 것이다.

이 여자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다.

이때의 강렬한 기억은 평생 그녀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안류지에게는 2년동안 동거한 남친이 있다. 백환이다.

사진작가인 그와의 생활은 생각보다 길었고,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은 균열의 씨앗과 의심의 싹은 계속해서 자라난다.

상황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사건으로 조금씩 움직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혼식장 장면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장면과 상황이지만 웃픈 장면들이다.

사랑, 자백, 한탄, 걱정, 욕망, 과거사 등이 뒤섞여 흘러가고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밝혀지는 몇 가지 사실들은 짐작도 하지 못한 것들이다.

이런 미스터리와 함께 재밌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새로운 연애방식이다.

기존 가치관과 새로운 연애 방식의 충돌, 이해 부족.

이 사이를 파고 더러운 욕망과 감추어진 사실들.

인간의 본능을 형상화해서 성공한 사업과 그 상업주의의 폐해.

다양한 인간의 욕망을 조금식 풀어내었는데 좀더 깊고 넓게 확장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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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괴담 안전가옥 FIC-PICK 8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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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FIC-PICK 8권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낯익은 공간인 직장을 소재로 했다.

하루 중 집을 제외하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

한때는, 누군가에게는 집보다 더 오랜 시간 머무는 곳.

다섯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직장과 괴담을 다양하게 엮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경험에 따라 공감하는 바가 나누어질 것이다.

읽으면서 혹시 나도 소설 속 누군가처럼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경계를 했다.

그리고 각각의 서늘하고 무섭고 무엇보다 현실적인 이야기에 놀란다.


범유진의 <오버타임 크리스마스>는 이런 회사가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계약직과 정규직을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존재할까?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더 잔혹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의 경험 부족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직장내 왕따를 엮었다.

노골적인 왕따와 괴롭힘, 어떻게 해서라도 이력서에 넣을 한 줄이 필요한 계약직.

그리고 바뀌지 않는 메신저와 대나무숲처럼 풀어놓는 불만들.

누군가에게는 장난일지 모르지만 그 피해자에겐 너무나도 잔혹한 폭력들.

찝찝함과 함께 마지막에 살짝 통쾌함이 남는다.


최주안의 <명주고택>은 마지막이 어렵다.

덴마크 여왕의 방한과 외교부의 의전 행사를 위해 선택된 경북의 고택 방문 행사.

도청과 시청의 담당자 사이에 벌어지는 작은 알력.

명주고택의 풍수지리적 위치와 개미와 개미귀신 구덩이 에피소드의 결합.

행사업체 선정에 사고로 늦어진다고 말한 업체.

그 업체의 뛰어난 프레젠테이션과 시청 담당자가 미는 업체 사이에 생긴 선정 문제.

그리고 이상하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이상한 전화 한 통.

헛제삿밥과 뒤틀리는 시간과 공간. 서늘하고 무섭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상황에 대해 쉽게 결말을 내리지 못한다.


김진영의 <행복을 드립니다>는 계약직에 대한 갑질 이야기다.

코로나 19로 남편과 사별하고 죽은 환자 때문에 병원에서 일하지 못하게 된 간호사 출신 윤미.

싱글맘이자 가구 회사 보안팀 계약직 직원이다.

계약 갱신을 바라며 열심히 일하지만 팀장은 그녀의 사소한 실수를 코투리잡는다.

12월 31일 아이와 함께 여행을 준비하지만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은 동료 때문에 출근한다.

이때 폐가구 소각장에서 두 아이를 발견하고 전시장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경찰에 이 두 아이에 대해 신고하지만 출동한 경찰들은 어디에서도 그 아이들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뛰어 놀던 침대를 산 진상 손님이 이상한 말을 한다.

약간 뻔한 진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윤미의 행동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다.


김혜영의 <오피스 파파>는 오피스 와이프의 변형이다.

가정 폭력범 아버지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취직한 광고 기획사.

고졸인 그녀를 직접 뽑아 친절하게 민정을 아껴 준 직속 상사 강성필 팀장.

수습 기간이 끝난 후 그의 본색은 드러나고, 민정은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전락한다.

점점 쌓여가는 분노와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진 생각과 말.

이런 현실에 갑자기 나타난 고액의 이상한 쓰레기통.

쓰레기통 주인이 쓰레기라고 생각한 것을 담으면 사라지는 신기한 쓰레기통.

그리고 그 존재에 대한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기묘한 쓰레기통.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쓰레기통에 담아버리는데 문제가 생긴다.

후반부의 폭주와 잔혹한 장면은 그 범위를 알 수 없는 공간과 더불어 머릿속에서 맴돈다.


전혜진의 <컨베이어 리바이어던>은 무서운 현실을 보여준다.

한때 기분 좋은 알바 자리였던 곳이 잃어버린 아이패드 때문에 무거운 현실이 된다.

자신은 단지 아이패드를 살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일한다.

2시간 배송을 자랑하는 딜리원 물류센터에서 새내기 소민은 알바를 한다.

학기 중에 경험한 하루 알바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함께 팀을 짠 윤주는 그녀에게 이 일이 얼마나 절실한지 말한다.

하지만 아직 그 절실함을 경험하지 못한 소민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이해하지 못한다.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을 살 돈을 벌기 위한 학생과 생존에 몸부림치는 노동자의 괴리.

작가는 비인간적으로 운영되는 물류센터의 풍경과 함께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가족을 같이 보여준다.

이 과정에 드러나는 인간의 부품화와 조직의 협박은 씁쓸하고 현실적이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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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을 걷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11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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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콜렉터 110권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이후 여섯 번째 이야기다.

이 시리즈 왠지 모르게 띄엄띄엄 읽고 있다. 아직 두 권 읽지 않았다.

이번 이야기를 읽으면서 잭 리처 시리즈 중 하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두 소설 모두 미군의 과거와 연결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잭 리처가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다면 데커는 아니다.

늑대 사냥꾼 할이 우연히 발견한 시체 때문에 데커와 재미슨이 노스타코타주로 온 것이다.

가상도시 런던은 석유와 가스로 흥한 작은 도시다.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 런던.

석유 때문에 도시는 활기로 가득하고, 인구가 계속 유입된다.

단순히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고 FBI 요원들이 올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죽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과거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것이다.

데커와 재미슨은 죽은 여성 아이린의 과거를 쫓기 시작한다.

그의 일을 돕는 현지 경찰 켈리는 이 도시 토박이이자 한때 미식축구 쿼터백이었다.

켈리와 함께 부검보고서를 받아 보고, 그녀가 일한 곳을 둘러본다.

켈리에 의하면 그녀는 매춘을 한 것처럼 보이고, 그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혹시 잔혹한 연쇄살인마가 나타난 것일까?


이 도시는 두 재벌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석유와 부동산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매클렐런 가문과 도슨 가문이다.

석유 시추로 매클렐런이 돈을 벌게 되면 노동자들이 거주할 집 등으로 도슨도 돈을 번다.

이 두 가문의 후계자들은 각각 한 명씩 있는데 한때 둘은 켈리와 함께 절친한 친구였다.

이 도시 주변에 위압적인 모양의 공준기지가 하나 있고, 그 기지 옆에는 종교 공동체가 있다.

아이린은 이 종교 공동체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린의 과거를 쫓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흘러나온다.

그러다 검시보고서에서 수상한 부분을 발견한다.

그리고 시체를 처음 발견한 할의 집에서 두 번째 시체를 발견한다.


데커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그의 관심은 여러 곳으로 나아간다.

수상한 공군 기지의 매각과 아이린이 한 말들이 그의 수사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매형을 만나 누나의 이혼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이야기는 그에게 충격을 주고, 메마른 그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런 와중에 그를 향한 총알이 날아온다.

다행히 로비가 그를 밀쳐 구해주면서 무사할 수 있었다.

단순한 살인 사건 같았는데 특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등장해 총격전이 일어난다.

도대체 아이린의 죽음에 어떤 인물이 엮여 있는 것일까?

그녀가 알아낸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가장 이질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인물이 로비다.

그가 보여주는 액션과 활약은 데커와 재미슨을 몇 번이나 구해주었다.

로비의 활약과 함께 나타난 인물은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

이들과 데커는 같지만 다른 일을 하는 중이다.

데커의 수사는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쌓아가고, 이런 도중에도 시체는 점점 더 쌓여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살인과 자살로 포장된 살인.

과거의 불행했던 이야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

액션이 펼쳐지고, 그 사이에 발생한 살인 사건은 혼란스럽게 뒤섞여 쉽게 실체를 발견하기 어렵다.

마지막까지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장면을 마주한다.

늘 그렇듯이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읽지 않은 발다치의 소설들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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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인치의 세계에서 사랑을 했다 - JM북스
키나 치렌 지음, 주승현 옮김 / 제우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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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인치. 스마트폰의 화면 크기다.

하나코는 인간 관계 트라우마로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이런 그녀에게 현실과 소통하는 방법은 스마트폰 게임 속 플레이어뿐이다.

우연히 웹에서 만나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쌓아간다.

그와의 대화는 공감과 행복의 시간이다.

집밖으로 겨우 나가는 그녀에게 그가 보낸 메시지 하나. “만나고 싶어.”

그녀도 만나고 싶지만 약속 당일 정신을 잃고 그날 밤 겨우 눈을 뜬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남겨진 메세시. “오늘 만나 줘서 고마워.”

 

야마시타는 편의점 알바를 살아가는 20대 청년이다.

그의 출산 과정에 엄마가 죽었고, 아버지는 아이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집을 나왔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취업이 잘 되지 않아 프리터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스마트폰 게임을 가끔 한다.

그가 하는 앱 게임은 플라워 스토리. 우연히 보낸 친구 신청.

이때 연결된 플레이어가 카코이고, 그녀는 정중하게 답변을 보냈다,

이렇게 연결된 둘은 앱으로 자신들의 일상과 삶을 이야기한다.

도쿄와 교토. 렌은 교토에 가도 될까? 하고 묻는다.

그리고 온 답장은 “나도, 만나고 싶어.”

 

여기까지 보면 평범한 온라인 만남 로맨스와 닮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소설과 하나코의 실신으로 장르를 다시 엮는다.

야마시타와 카코가 교토에서 만나 즐겁게 시간을 보낸 것을 하나코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나의 상상력이 여러 가지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야마시타가 만나 카코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이다.

결국 마지막에 드러난 정체는 내가 생각한 것 중 하나였지만 살짝 아쉬운 점도 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오고가는 메시지에 담긴 공감과 이해는 둘의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한다.

마지막까지 나의 호기심 중 하나인 하나코와 하나코 인생책 작가 사이의 관계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나의 추측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놓친 것인지, 작가가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뛰어난 가독성과 각자의 아픈 사연과 공감이 어우러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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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꼬리의 전설
배상민 지음 / 북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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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픽션>을 재밌게 읽었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이 이 작가 이름을 기억하게 했다.

다른 책을 사 놓고 묵혀 두는 것은 나의 당연한 일상이니 그냥 넘어가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구미호와 관련된 이야기다.

구미호를 떠올리면 바로 연상되는 판타지의 설정을 작가는 지워내었다.

이 소설의 재밌는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 등을 그 시대와 엮어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쇠를 먹는다는 불가살이에 대한 것이다.

이 전설의 괴물이 사실은 고려 후기 수탈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괴물이란 것이다.

관의 쇠붙이 수탈이 만들어낸 환상이 실체 없는 불가살이란 것이다.


이야기. 구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전설과 엮었다.

불가살이처럼 처녀 귀신 이야기도 좀더 과학적으로 풀어내었다.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늦은 밤 찾아오는 처녀 귀신.

이 처녀 귀신을 보고 죽은 감무들과 살아남은 감무들.

시체에 살인의 흔적이 없기에 귀신을 보고 놀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부패와 탐욕의 결합이자 권력의 유지에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시신들이 발견된다.

여우가 찢어놓은 시신이란 소문은 아홉 꼬리 여우 전설과 엮인다.

그리고 새로운 시신이 드러날 때마다 여우가 불린다.


혼란과 환란의 시기였던 고려 말.

흉흉한 소문괴 기이한 이야기를 쫓는 사대부 덕문.

그는 이런 이야기들에 매혹되어 이야기를 쫓아다닌다.

그러다 만난 불가살이 이야기와 가왜와 무사 금행.

전설을 현실의 소문으로 만들고,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 덕문과 금행은 친구를 맺고 가끔 서신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번 구미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은 덕문의 고향이다.

새롭게 감무가 부임해 이 여우를 잡아야 한다.

덕문은 금행이 오기를 바랐는데 실제 그가 온다.


사대부이지만 과거를 보지 않고 이야기를 쫓는 덕문.

무관으로 전쟁터를 전전하다 공적을 쌓아 감무로 발령난 금행.

이 둘이 만나 고을의 괴이한 소문과 사건을 쫓는다.

첫 번째 사건이 바로 처녀 귀신이다.

그런데 처녀 귀신의 정체는 너무 쉽게 밝혀진다.

문제는 처녀 귀신을 만난 감무들의 죽은 이유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중앙권력과 토호의 대결로 변한다.

이 지역의 권력을 쥐고 있는 호장가.

그들은 사병을 거느리고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사사로이 움직인다.

중앙에서 파견한 감무와 호장가의 대립은 예견된 일이다.


작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면서 민의를 말한다.

아홉 꼬리 여우 이야기가 덕문의 이야기와 엮여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다.

이 과정 속에 탐욕과 살의와 생각하지 못한 비밀이 꼬인다.

전쟁터를 전전한 금행의 칼질에서 그 시대의 흉흉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면 또 다른 사건이 생기고, 악의는 살짝 꼬리를 감춘다.

어쩌면 문덕과 금행이 하나씩 해결한 것들이 여우의 아홉 꼬리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현대극과 다른 분위기와 속도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덕문과 정도전의 대화는 새로운 시대의 전환과 연결되어 읽힌다.

이 한 편의 소설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수많은 전설이나 민담 등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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