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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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다.

초판에 없던 작가의 말이 들어 있고, 초판의 문장을 다듬었다고 한다.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아 조금만 집중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에는 11년 전 문학계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sf소설에 대한 홀대와 인식 부족 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순간 몇 명의 작가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작가의 몇 작품에 대한 기대가 싹 튼다.


한국 sf 소설에서 잘 다루지 않는 우주전쟁을 그려내었다.

우주전쟁이라고 해서 태양계 밖으로 나가 외계인들과 싸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의 우주 함대는 태양계 외곽에 머물면서 언제 닥쳐올 외계의 침입을 경계한다.

인류는 이미 우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우주에서 태어난 우주군의 참모다.

그가 사랑하는 연인은 지구에 머물고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빛의 속도로 가도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거대한 공간과 이로 인한 시차는 이 소설의 중요한 주제다.

두 연인이 주고받는 편지도, 전쟁의 양상도 여기에 달려 있다.


40시간 동안 연인과 함께 보내기 위해 날아가는 시간은 170시간이다.

다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보낸 문자의 회신이 오는 것도 30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은 이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는다.

갑자기 나타나 우주함대를 공격한 외계함대 이야기 속에 그 감정을 풀어낸다.

이 우주전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다의 함대 전투와 다르다.

첫 전투에서 우주함대는 무수히 많은 함선이 파괴된다.

그것은 지구 함대가 발사한 포가 처음 발사한 곳에 그 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의 거대함은 새로운 방식의 전투를 개발할 수밖에 없게 한다.

작가는 이렇게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바닥에 깔려 있는 로맨스의 기운 위에 권력 다툼이 표면적으로 다루어진다.

우주 함대가 강력해짐에 따라 지구궤도에 있는 군은 이들을 견제한다.

조사대가 아닌 조사군을 보냈다는 대목을 이것을 잘 보여준다.

전쟁이 일어나는 도중에도 권력의 싸움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갑자기 우주에 나타나 지구의 함대를 공격하는 적들.

이들을 막기 위한 많은 전문가들의 노력과 관찰.

불리할 것 같은 전투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이끌어내는 것은 이런 발견과 관찰의 힘이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술을 사용한 장군의 존재.

사랑하는 연인에게 청혼의 반지를 보내면서 새로운 우주로 떠나는 화자.

읽는 순간 놓쳤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마지막 문장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일반 상식을 깨트리는 수많은 장면도 아주 현실적이고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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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날
이나 소라호 지음, 권남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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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처음 연재된 후 책으로 출간되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야기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

제목처럼 일상의 순간을 아주 재치 있게 포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이지만 작가가 포착한 그 순간은 특별하다.

특별하지 않은 날의 특별한 순간이 주는 재미는 그 이야기에 따라 다르다.

어떤 순간은 그냥 미소를 짓고, 어떤 장면은 웃게 되고, 어떤 컷은 감탄한다.

이 만화를 읽다 오래 전 조금 반짝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무수히 경험했을 그 빤짝이는 순간들 말이다.


여덟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남기고 싶은 것>의 주인공은 노부부다.

귤 껍질을 길게 자른 후 사진을 남기고, 자신의 손가락 때문에 사진에 이상한 흔적이 있다.

아내의 스마트폰으로 집에 있는 사물 몇 개를 찍어본다.

아내는 옆집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데 남편이 이 모습을 몰래 찍는다.

마지막 한 컷은 노부부의 애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매장의 점원>은 제목대로 초콜릿 매장에서 생긴 일이다.

한 중년의 남자가 선택 장애에 걸린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점원이 다가가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 쉽게 고르지를 못한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이 남자와 점원의 관계는 살짝 웃게 한다.


<모르는 너>에서는 같이 일하는 알바생의 말 한 마디가 여고생의 마음을 흔든다.

늘 무표정하고 담담한 남자가 지적한 어플 사진 한 장.

그 남자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진심을 말하면서 풀리는 감정.

모두 읽고 다시 책을 펼치면 이 에피소드 마지막 한 장은 <고양이>와 이어진다.

<이상적인 관계>는 보면서 지인이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외국에 있는 딸이 손자들 사진만 찍어서 보내는데 딸의 사진도 보고 싶다는 그 말.

추억과 내리 사랑이 그대로 드러나는 마지막 한 컷은 뭉클하다.

중간에 아들과 방송 흉내를 내면서 놀아주는 장면은 아주 낯익다.


<되고 싶은 나>는 초등학생 남자들의 세계를 살짝 보여준다.

전대물을 좋아하지만 친구가 보여준 포켓몬에 눈길이 간다.

엄마가 늘 사 준 전대물 캐릭터도 좋지만 친구들 사이에 유행하는 포켓몬도 갖고 싶다.

금방 아이가 실증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버지가 아이에게 한 말 한 마디는 아주 멋있었다.

좋아하는 게 늘어난 거네” 이 말 한 마디. 내가 놓친 한 마디.

<스마트폰 세대>는 축제에 간 초등학생의 행동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보고, 먹을 것을 고를 때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불꽃놀이가 벌어질 때 사진 한 장을 찍어 엄마에게 보낸다.

그리고 아픈 동생과 동생을 돌봐 오지 못한 모녀의 모습이 나온다.

요즘 아이들은 어쩌구 하려다 마지막 한 컷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고양이>는 알바 청년 요시다가 우연히 고양이를 주워 집에서 키운 이야기다.

그가 이 고양이 돌보면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점점 늘어나는 팔로우 숫자와 그에 대한 반발 등의 댓글 변화가 재밌다.

결국 같은 알바생에게 자신의 트위터라고 말한다.

그리고 표지의 그림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과 손녀가 할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찍은 사진도 몇 장 되지 않는다.

관혼상제에 가면 할머니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외모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가 웃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아내와 아이들 사진을 찍을 때다.

아내는 그 순간의 미소를 알고 있다.

하지만 노년의 두 부부가 웃으며 찍은 사진 속 남편의 미소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후속편도 나온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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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제2부 (2024 리뉴얼) - 신들의 숨결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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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신들의 숨결 편이다.

3부작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다. 1부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전편에서 올림포스 산을 오르면서 거대한 눈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자신들을 보는 그 눈에 미카엘의 일행은 겁을 먹는다.

이들은 산을 내려와 이전부터 이어져온 18호 지구의 대결을 이어간다.

미카엘을 돌고래족은 읽다 보면 아틀란티스 대륙 사람과 유대인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다른 민족들도 로마나 중국 한족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작가는 그 민족의 이야기를 단순 대입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섞는다.

읽으면서 유대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등장한다.


문명이 건설된 후 다양한 민족들이 성장하고 사라진다.

미카엘의 돌고래족은 전세계에 흩어져 살아간다.

그들을 받아들여 과학과 문화가 융성해지는 국가도 등장한다.

인종 차별에 의해 돌고래족들이 핍박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돌고래족은 명맥을 이어가고, 미카엘의 정신을 실천한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이미지한 장수가 독수리족을 완전히 무너트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군사를 돌리고, 안일하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그들이 산산조각 난다.

이 선택이 돌고래족 신의 실수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예수인 듯한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그 미묘한 차이가 좀더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이 <신의 가르침을 받은 자>가 죽게 된 것과 그 이후의 일들이 미키엘을 분노하게 한다.

이 일 이후 미카엘과 라울의 관계를 완전히 틀어지게 한다.


독수리족이 최고의 부흥기를 누린다. 로마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돌고래족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는 유대족이 역사와 닮아 있다.

18호 지구의 지도가 없어 각 민족들이 어떻게 나라를 이루는지 알 수 없다.

멸망 직전에 달아난 돌고래족의 일부는 현재 중남미를 연상시키는 곳까지 도착한다.

작가는 신 후보생들의 대화 속에 들어가 이 게임이 지구의 역사와 닮아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알고 배운 지식들이 이 지구에 그대로 구현되는 것이다.

신 후보생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기존의 인간이었던 시절의 한계 속에서 게임을 한다.

창의성보다 자신들의 기질과 지식에 바탕을 둔 게임 운영이다.

물론 이 게임이 지구 속 인간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지만 말이다.

신 후보생이 능력도 제한적으로 작용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전지전능과는 다르다.

그리스 신화 속 무대를 이용함으로써 아주 인간적인 신들로 나타난다.


전편과 기본 구성은 여전히 비슷하다.

18호 지구에서 자신들의 민족을 키우는 일과 대결과 탈락.

새로운 그리스 신들이 나와 이들에게 지구의 발전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

지구의 역사가 살짝 변형된 채 구현되는 과정.

미카엘과 그 동료들의 계속되는 올림포스 산 등반과 위기들.

이번 편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연인 관계가 나와 조금 어리둥절했다.

육체를 가진 신 후보생들이 인간적인 욕망에 휘둘리는 장면은 역시 낯설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과 미카엘이 풀어낸 수수께끼의 해답은 다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약간 반복되는 듯한 구성에 질릴 듯하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 전환으로 재미를 불러온다.

마지막 3부에서 마주할 신의 모습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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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의 만화 한국사 2 근현대편 - 역사의 흐름이 한눈에 읽히는 최태성의 만화 한국사 2
최태성 지음, 김연큐 그림 / 메가스터디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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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두툼하고 많은 역사를 담고 있다.

만화라고 생각해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기본 다섯 칸으로 나누어 역사적 사실을 꽉꽉 채웠다.

그림만 채웠다면 단숨에 읽겠지만 지문도 상당히 많다.

고대, 고려, 조선으로 나눈 1권과 달리 2권은 개항기부터 다룬다.

1권에 비해 시간은 짧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넣었다.

학창 시절 배웠던 한국사와 다른 방식의 구성이다.

그리고 이 세부적인 이야기 속에서 이전에 몰랐던 역사를 많이 배웠다.


개항기를 흥선대원군으로 시작한다.

조선 말기에 흥선대원군은 왕조의 가장 핵심에 있던 인물이다.

작가는 그가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 한두 컷으로 보여준다.

이런 구성은 이후에도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데 자주 사용한다.

왕권은 무너지고, 친인척이 권력을 쥐고 있던 시대에 그는 왕권 강화에 잠시 성공한다.

하지만 국가의 재산은 고갈되어 자신이 바라는 정치를 펼치기 쉽지 않았다.

개혁으로 가는 과정에 기존 세력의 반발이 심하고, 잘못된 선택은 민중의 지원도 놓친다.

개화 정책과 개혁의 실패는 조선이 가질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다.

동학 혁명을 둘러싼 기술 부분은 간결하지만 잘 정리되어 있다.

개항기에 있었던 개혁의 노력과 작고 꾸준한 진보도 그림으로 잘 요약되어 있다.

실제 이 책의 반 정도가 개항기 이후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시간을 다룬다.


일제 강점기에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의 조선 통치 방식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독립 운동이다.

개항기에서 조선이 어떤 식으로 국권을 조금씩 잃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국권을 읽기 전 일본은 조선의 경제를 수탈했다.

그 수탈 과정에 대한 설명은 친일파의 조선근대화론에 대한 반박이다.

일본이 어떻게 민족 자산이나 농지들을 수탈했는지 바로 알려준다.

3.1절 만세 운동의 의미와 민중들의 노력, 일본의 학살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 만화에서 가장 새롭게 다가온 부분은 독립운동의 흐름이다.

피상적이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독립운동의 흐름을 파악하기 좋게 했다.

일본의 항복 선언을 마냥 좋아할 수 없었던 광복군의 마음에 눈길이 간다.


해방 이후의 혼란스러웠던 정치 현실은 비교적 간단하게 말하고 넘어간다.

찬탁과 반탁에 대한 설명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이 담겨 있다.

갈라진 한반도에서 국제 정세의 변화는 한국 전쟁의 비극을 불러온다.

이승만 정권이 무력한 모습이나 전쟁 당시 수많은 문제도 너무 간단하게 다룬 것은 아쉽다.

이승만의 그 유명한 한강다리 폭파 사건도 한 컷과 간단한 대사로 넘어갔다.

낙동강 전선에 참여한 수많은 학도병에 대한 이야기도, 보도연맹과 미군의 학살도 생략했다.

이후 역사가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많은데 너무 간략하게 서술된 것도 아쉽다.

분량의 한계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몇몇 대목은 민감한 부분 때문에 생략된 것 같다.

언제 광복 이후의 현대사만 좀더 자세하게 알려주는 만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최근 역사를 왜곡하는 노력과 시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에 진심으로 관심 있는 독자라면 좀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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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김민경 외 지음 / 북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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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이다.

장르 문학들이 나오는 수상집이라 매년 읽게 된다.

다섯 편이 실려 있는데 왠지 모르게 이전보다 각 단편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최근 일 때문에 오랫동안 뭔가를 집중해서 읽는 것이 힘들다.

많지 않은 분량이다 보니 첫 예상보다는 늦었지만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기발함이나 참신함은 이전보다 떨어지는 것 같은데 아마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낯익은 이야기들이 많게 느껴지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처음 만나는 작가인 것은 분명하다.


김민경의 <그 많던 마법소녀들은 다 어디 갔을까?>는 읽으면서 김청귤의 <마법소녀, 투쟁!>이 떠올랐다.

마법소녀 하나가 주인공이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은퇴하는 설정 때문이다.

하지만 은퇴 후 마법소녀들의 삶에서 두 이야기는 완전히 갈라진다.

김청귤의 마법소녀들은 새로운 마법소녀들을 낳는 존재가 된다.

반면에 이 단편 마법소녀들은 콜센터에 취직해서 다음 전직을 기다린다.

그녀들이 바라는 다음 단계는 마법사인데 마법소녀처럼 어떻게 되는지 정확한 정보가 없다.

그리고 콜센터 직원들의 일상이 흘러나온다.

전직 마법소녀와 현직 마법소녀가 만나 나누는 대화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대목은 마법사로 바뀐 후의 직업이다.


김호야의 <내림마단조 좀비>는 우리가 아는 좀비와 많이 다르다.

좀비 아포칼립스물에 등장하는 아주 강력한 좀비가 아니다.

이성을 잃고 인간을 무는 것은 같지만 모든 인간을 전염시키지는 못한다.

좀비로 변한 존재들은 로봇 같이 인식되어 반복 노동에 투입된다.

그 효용이 다한 좀비는 좀 잔인하지만 비료로 사용된다.

좀비가 된 자신의 아들이 비료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는 노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좀비의 무서움이 사라진 공간을 인간의 잔인함이 채운 부분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좀비를 노예나 이주 노동자에 비유한 것을 그냥 보고 지나갈 수 없다.


이리예의 <슬롯파더>는 기대한 반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내를 때리고, 딸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가 슬롯머신이 되어 돌아왔다.

딸은 이 슬롯머신 받기를 거부했지만 엄마가 인수를 해서 좁은 집에 놓아두었다.

그러다 우연히 돌린 슬롯머신에서 5만 원권 지폐 다발이 떨어진다.

이 돈은 그들의 삶에 여유를 주고, 삶을 점점 변화시킨다.

하지만 이 변화가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언제 이 슬롯머신이 지폐 다발 내놓기를 거부할지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현실에 대한 자각 등이 교차한다.

그들이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우발적으로 다가오는데 나라면 어땠을까?


임규리의 <인형 철거>는 도입부를 보면서 공포 소설을 직감했다.

부업으로 인형 수리를 하는 회사원 은재.

그는 폐가를 구입해서 작업실 겸 숙소를 사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폐가는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된 이력이 있다.

은재는 이 사실을 알고 샀지만 문에 붙어 있는 ‘인형 철거’ 딱지는 낯설다.

이 폐가에서 인형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이상하고 무서운 일을 경험한다.

그 이후 이야기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은재의 과거사가 흘러나온다.

마지막 장면은 너무 낯익은 설정이라 조금 아쉽다.


김규림의 <문을 나서며, 이단에게>는 편지글 형식이다.

남편이 죽은 후 모든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어낸 엄마의 이야기다.

딸에 대한 관심도 놓아버리고, 점점 비대해지는 몸만 겨우 유지한 채 살았다.

어느 순간 자신의 비대한 몸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두려웠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스토리메이커를 하면서 삶을 유지한다.

이런 그녀에게 딸이 안드로이드 남친 율을 데리고 온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두 개가 교차한다.

안드로이드의 정체성과 두 모녀의 사이에 놓인 감정의 골.

서로에게 서툰 모녀 사이를 중재하려고 노력하는 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가 나아가면서 성장하는 엄마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과 제목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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