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정규웅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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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후기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60년대와 70년대 문인들을 다룬 책이 나왔었다. 관심을 가지고 검색하니 비슷한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보인다. 이렇게 문인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이들이 나의 삶 한 곳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문학 소년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소설과 시 등을 읽으면서 자랐다. 학창 시절 의무감 비슷하게 읽었던 수많은 한국 문학은 이제 기억이 희미하지만 은연중에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물론 그 자부심이란 것이 특별히 자랑할 것은 아니다. 단지 읽었다는 그 자체를 의미할 뿐이니까.

 

80년대라고 하지만 이 책 속에 나오는 문인들의 활동이 그 시대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시작하여 90년대를 넘나든 작가나 시인도 적지 않다. 그리고 재밌는 사실 중 하나는 이 책에서 다룬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저자가 그들을 이야기하는데 조금 더 편한 부분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한 문인의 삶을 몇 쪽의 짧은 이야기로 간략하게 추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고, 오해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나열만으로 부족한 것을 자신의 기억과 추억 등으로 채웠는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한 장으로 끝나는데 두 명만 분량이 조금 더 된다. 소설가 한수산과 시인 기형도다. 기형도의 경우 학창 시절 좋아했던 시인이다. 아마 나의 암울하고 우울했던 20대와 그 시가 아주 잘 맞아떨어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저자가 기형도의 직장 상사였다는 부분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한수산 필화사건은 이름만 들었지 내용은 잘 모르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 그 이면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 사건과 저자가 직접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군함도>로 화려하게 문단에 복귀했는데 반가운 일이다.

 

대부분 한두 권 정도 읽은 작가나 시인들이다. 하지만 조금 낯선 이름도 보인다. 한때 한국 문학 전집에 나오지 않은 몇몇의 경우나 사지 않은 작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방송작가로 더 이름이 높거나 역사 소설가의 경우는 특히 읽지 않은 경우가 눈에 들어온다. 평론가의 글은 당연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역시 저자들의 작품들이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책이 나올 때면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물론 대부분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리고 저자의 문학 기자 경험 등에서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글동네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이다. 아직 저자의 나이에 도달하려면 아득한 나이지만 그립다는 표현에 동의하는 것은 내 독서의 뿌리가 바로 이들에게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문단에도 불어온 me too 열풍은 문단의 썩은 부분을 아주 보여준다. 존경했던 노 시인과 작가들의 말년 몰락은 한때 그들을 올려보았던 나를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90년대 한국 문학을 읽으면서 사변적으로 흘러가던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 이후 한동안 뜸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 간략한 기억 속 이야기들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숨겨져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다툼이 짧게 표현되었지만 실제 이 과정은 아주 보기 흉했을 것이다. 그때는 관행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글 속에서 행간을 다 읽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이 책 속에서 다룬 작가들 중 몇 사람은 한때 거의 전작까지 나아간 적이 있다. 아니 그 당시는 전작이었는데 이후 다른 작가에 빠지면서 몇 권씩 놓쳤다. 이런 작가들과 함께 늘 관심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간 작가, 대표작을 읽지 못한 작가 등을 떠올리면서 순간순간 즐거운 추억여행을 했다. 어떤 이름은 낯설었지만 작품 이름을 보고 아! 감탄한 적도 있다. 이럴 때 나의 모자란 기억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립고 반가운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서 집에 있는 책더미 속에 파묻힌 책들을 한 번 휙 둘러보고 싶어졌다. 이런 후일담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을 보면 나이를 점점 먹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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