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맨
루크 라인하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20세기 최고의 컬트소설이란 광고 문구는 아주 자극적이다. 컬트영화에 한때 관심을 둔 적이 있기에 이런저런 영화를 찾아본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촬영과 이야기 전개는 아주 대중적인 나의 취향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런 취향은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소설은 어떨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상상을 초월한 한 인간의 탄생을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몇몇 장면과 상황 등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할 수 있지만 잔혹한 스릴러물들을 많이 보아온 나에게 루크 라인하트의 행동은 약간 기괴한 정도에 머물렀다.

 

성공한 정신과의사 루크 라인하트가 어느 날 주사위로 선택을 결정한다.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그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안정적인 직장과 명성을 가지고 있고, 덩치도 크다.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아들과 딸이 있다. 이런 평범한 일상에 권태와 무력함 등이 조금씩 파고든다. 자신의 정신과 치료에 대한 확신도 없다. 그러다 던진 하나의 주사위가 신의 계시처럼 다가온다. 주사위의 선택에 따라 동료 의사의 아내를 강간하러 간다. 이 행동이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형법적으로 위험한 일이지만 그녀의 숨겨진 욕망을 들춘다. 이제 그의 새로운 실험이 이어진다.

 

주사위의 선택이란 설정이지만 기본적으로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할 일들을 적는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따라 숫자와 선택사항을 적어놓고, 주사위를 던진다. 그리고 숫자에 적었던 선택을 그대로 행동한다. 이렇게 건조하게 적어놓으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강간, 살인, 동성애 등과 같은 일도 해야 한다면 어떨까? 루크의 주사위교가 발전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나쁜 선택도 같이 넣는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죽여야 할 때 자기 자식도 숫자에 넣은 것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자백을 할 때 주사위의 선택에 맡긴다. 자신의 의지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인간의 갈등과 고민이 이 숫자들과 연결된 선택사항에 모두 들어있다. 다만 최종 결정만 주사위의 우연에 맡기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성적 묘사가 상당히 수위가 있는 것이었다. 19금 딱지가 붙지 않은 것을 보면 조금 놀랍다. 루크의 이런 모험과 시도보다 훨씬 자극적인 작품도 있지만 말이다. 작가가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심리학적 서술이 줄줄 나와 조금 어렵게 느껴졌지만 기본적으로 정신과 치료의 허점을 많이 파고든다. 한때 할리우드 영화에서 얼마나 많은 정신과의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스릴러를 만들었던가. 그리고 다중인격이란 단어를 본문에서 발견하고 조금 놀랐다. 우리가 스릴러 등에서 보는 다중인격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이때도 이런 정신과 용어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크 라이하트의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하는 주사위교를 보면서 나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결론은 불가능이다. 내 삶의 궤적이 그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완전히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떨까? 루크의 행동을 비판하던 동료가 주사위교의 신도가 된 것처럼 바뀔지도 모른다. 매번 결정을 내리면서 후회하고 안타까워하기보다 결정을 맡기면서 자신의 의지를 밖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가 선택사항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소설 곳곳에 패러디의 흔적이 보이는데 나의 지식이 부족해 완전히 재미를 누리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하게 주사위를 사서 던지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귀차니즘이 이겼는데 이렇게 보면 주사위를 던진다는 것도 상당히 능동적인 행동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