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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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인 ‘La tresses’는 ‘세 갈래로 나눈 머리카락을 서로 엇걸어 하나로 땋아 내린 머리’, 혹은 ‘세 가닥을 하나로 땋아 엮은 줄이나 끈’을 의미한다. 이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각각 다른 지역과 다른 환경과 나이를 가진 이들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연결시킬 것이란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 부분을 보면서 이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와 개인의 관계가 아주 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억지스럽지도 않고, 현실의 장벽을 자신들만의 의지와 노력으로 넘어가려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인도, 이탈리아, 캐나다의 세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도의 스미타는 불가촉천민으로 똥을 손으로 치운 후 다른 계급이 던져주는 음식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딸 릴리타가 학교에서 글을 배우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의지로 가득한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 바로 딸의 학습이다. 하지만 첫 등교한 딸의 등에는 상처가 나있다. 선생이 때린 것이다. 불가촉천민 달리트의 딸에게 바닥을 쓸라는 명령했는데 이를 듣지 않았다는 이유다. 엄마는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다른 희망을 품고 그 마을을 떠난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줄리아는 스무 살이다. 가업으로 가발 공방을 운영하는 아빠 밑에서 일한다. 그녀는 책을 좋아하고, 가발을 염색하는 집안의 비밀을 배웠다. 장차 공방을 이을 후계자다. 그런데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늘 긴 머리를 사기 위해 달렸던 길이라 이해할 수 없는 사고다. 이런 그녀에게 인도 시크교도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남자들에게 관심이 없던 그녀였는데 이 남자는 다르다. 그녀가 먼저 다가간다.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아버지의 서랍 속에서 공방이 처한 현실을 알게 된다. 재료가 없어 빚에 시달리고 공방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캐나다의 사라는 로펌의 임원이다. 세 아이의 엄마지만 자신의 일에 온갖 열정을 다 바친다. 로펌에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여자 임원이 된 것이다. 더 큰 성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만 단 하나 암만은 어쩔 수 없다. 가슴에 생긴 귤만한 암은 그녀의 육체를 파괴하고, 정신을 약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주변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과 애정 없는 몇 마디와 냉혹한 현실의 벽이 그녀를 더 힘들게 만든다.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은 이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주변에 알리고, 점점 그녀를 무너트린다.

 

이렇게 이 세 여자는 현실이란 벽 속에서 아등바등한다. 하지만 결코 이 벽속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줄 뿐이다. 환상을 심어주지도 않고, 과도한 희망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 속에서 꿈틀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표현할 뿐이다. 지금까지 그들을 가둔 세계 밖에도 삶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삶의 가능성을 말한다. 스미타는 딸의 공부고, 줄리아는 공방의 지속이고, 사라는 아이와 새로운 도전이다. 이들의 삶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가진 엄청난 에너지를 생각하면 아주 큰 장애가 생긴다고 해도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 같다.

 

하나 더. 이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아주 노련하다. 한 여자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에 호기심을 품게 하는 문장을 넣는다. 처음에는 오해도 했지만 이 긴장감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 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들은 직접 만나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도, 사연도 모른다. 하지만 세 갈래의 땋은 머리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이 이어짐이 드러나는 방식과 그 결과 중 하나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고, 자신이 주인공이란 평범한 이야기가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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