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들린 목소리들
스티븐 밀하우저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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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지명도와 달리 한국에서 잘 읽히지 않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작가가 스티븐 밀하우저다. 그의 경력을 보면 상당한 문학상을 수상했다. 누구나 아는 퓰리처상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많이 번역되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으로 검색하면 절판 포함해서 모두 네 권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다. 나 자신도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런 좋은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지 않는 아쉬움은 늘 남아 있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읽고 싶다는 갈증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 헌책방을 돌아다닐 때 사놓은 책 중 스티븐 밀하우저의 책이 두 권 정도 있다. 화려한 수상경력과 번역자 때문에 산 책이다. 늘 그렇듯이 사놓고 그냥 쌓아두고, 묵혀두고, 잊어버린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책더미를 뒤져 찾아서 표지라도 다시 보고 싶어진 것이다. 아! 바로 읽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빠르고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밀린 책들에게 우선순위가 밀렸다. 하지만 이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온다면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 정도의 매력은 있다.

 

열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량이 제각각이다. 표현 방식과 구성도 다르다. 어떤 작품은 아주 짧고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홈런>이 그 작품인데 황당하지만 재밌다. <우리의 최근 문제에 대한 보고서>는 보고서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섬뜩하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자살을 건조하지만 간결하게 보고한다. 자살과 관련해서 홈페이지 구성 속 내용으로 채운 <아르카디아>는 읽자마자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았다. 자살이란 직접적 표현은 없지만 모든 상황과 지역과 행동들이 그것을 가르킨다.

 

<기적의 광택제>는 말 그대로 기적 같은 물건을 다룬다. 이 광택제로 닦은 거울은 비추어진 대상의 아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히 거울이 늘어난다. 연인이 나타나 자신과 거울 속 대상의 선택을 강요한다. 하지만 한 번 깨어진 관계는 쉽게 붙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 다음 작품 <유령>과 <인어 열풍>은 대놓고 비현실적 존재를 다룬다. 하지만 이 대상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밀도 있게 그려내면서 비현실의 일상화를 보여준다.

 

<아들과 어머니>는 어머니의 모습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아내와 도둑>은 자신의 상상력을 채우기 위해 아내가 벌이는 행동과 그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그렸다. <근일 개업>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화자처럼 따라가지 못해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고민하게 만들었다.<열세 명의 아내> 이야기를 읽으면서 혹시 모두 한 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어딘가 다른 곳에>는 읽다가 잠시 흐름을 놓쳐 중요한 변화를 인지 못했다가 다시 읽으면서 이 기이한 일이 환상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소설 속 현실을 말한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플레이스>는 한 곳을 둘러싼 기억과 추억을 보여주는데 그곳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동화나 실화나 전설을 다룬 세 편은 각각 다른 재미를 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던 작품은 <라푼젤>이다. 라푼젤의 긴 머리를 잡고 탑을 기어오르는 왕자의 심리 상태와 자신의 머리가 당겨지는 느낌을 표현한 것들은 결코 동화에서 만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탑에만 살던 그녀가 왕궁에서 겪게 될 어려움은. 하지만 이 마무리를 작가는 아주 멋지게 해내었다. <젊은 가우타마의 쾌락과 고통>은 싯다르타와 그를 감시하는 사람 이야기다. 알고 있던 이야기를 더 세밀하게 풀어내고 상상력을 더했는데 아주 농밀하게 풀렸다. <미국의 설화>는 낯선 듯 낯익은 이야기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은 기존 이야기를 넘어섰다.

 

표제작 <밤에 들린 목소리>는 자전적 이야기다. 세 명이 등장하지만 실제는 두 사람이다. 3000년 전의 사무엘, 1950년 코네티컷 주의 일곱 살 소년, 그로부터 60년 후 잠 못 이루는 노작가. 사무엘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그렸다면 일곱 살 소년은 그것을 갈망한다. 그리고 그 소년이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는 노작가의 이야기로 풀린다.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그 성장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보여주면서 자신의 현재를 말한다. 신을 버린 그가 환상과 신비를 다루는 작가가 되었다는 점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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