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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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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미니어처리스트>를 재밌게 읽었다. 그렇다고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강하게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다. 취향의 문제였는데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시대를 달리한 두 여인을 등장시켜 풀어내는 이야기는 읽는 내내 숨겨진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했고, 각자의 시대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연들에 완전히 몰입했다. 오델과 올리브, 이 두 여인은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았고, 자신들의 꿈과 능력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발휘했다. 안타깝지만 그것은 현실이다. 이런 한계는 단지 그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967년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 오델과 1939년 에스파냐 올리브, 이 두 여인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풀린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 둘 모두 과거지만 1967년은 1939년의 비밀을 파헤치는 시간이다. 이 비밀은 한 요절 화가 이삭 로블레스의 그림을 둘러싼 진실이다. 하지만 이 비밀은 그 당시 관계자가 살아 있음으로 인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여기에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받고 있는 오델을 등장시켜 여성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고,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비밀은 바로 이 성차별에서 시작했다.

 

오델은 신발가게에서 일하다 미술관 타이피스트로 전직한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다. 이전에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그녀의 인종 문제로 언제나 실패한다. 1960년대 후반 영국은 아직도 피부색에 민감했다. 그녀의 친한 친구이자 동거녀인 신스의 결혼을 기념하여 그녀가 쓴 시는 로리의 시선을 끌고, 로리는 그녀에게 매혹된다. 이 인연이 과거의 망령을 깨우고, 새로운 이야기의 문을 연다. 그것은 로리가 엄마에게 받은 유일한 유산인 한 편의 그림이다. 이 그림이 등장하면서 오델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과거 속으로 빠져든다.

 

올리브는 미술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아버지도 미술상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림보다 성이 먼저다. 아버지를 강하게 매혹시킨 그림을 그녀가 그렸다고 했다면 바로 그림을 들고 판매하려고 먼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알 정도다. 이런 그녀 앞에 나타난 이삭은 아주 좋은 기회다. 이삭에게 매혹된 그녀였기에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 그림이 높은 가격에 팔려도 그녀는 돈이 궁하지 않다. 이삭의 자존심이 상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돈은 이것을 살짝 덮어놓기 충분하다. 몇몇 대사와 장면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비록 테레사가 이 상황에 아주 불만이 많지만 말이다.

 

테레사는 이삭의 그림을 올리브의 것으로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그녀는 올리브의 그림이 좋았고, 그녀가 인정받기를 바랐다. 현실적인 올리브는 테레사의 계획을 깨트린다. 이 작은 연출과 상황이 비극과 비밀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테레사가 올리브에 대해 가진 감정을 과연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동경, 아니면 사랑. 무엇이든 테레사는 한 시대 속에서 예술가의 열정을 깨우고, 그 예술품의 가치가 올바르게 평가받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자신의 나이를 속이고, 주인집 물건을 훔치고, 자신의 의도를 완전히 관철시키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과거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현재는 그 과거의 유산을 해석하는 문제에 매달린다. 이 소설 속에서 이삭의 그림에 의문을 품고, 그 이면을 파헤치는 역할을 오델이 한다. 그녀의 시선과 인연들이 거의 30년 동안 파묻혀 있던 과거의 사실을 일깨운다. 하지만 이 과정들이 아주 정밀하지 않아 약간 돌발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대목들도 있다. 그리고 작가는 교묘하게 이름 몇 개를 숨긴 채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독자들의 추측을 부채질한다. 가능성과 사실의 차이는 하나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과거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점점 좁혀진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몇 개의 의문과 다음 작품의 기다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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