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의 체스 민음사 외국문학 M
파올로 마우렌시그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그렇게 두툼한 책이 아니라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체스를 모르다보니 작품을 이해하는데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룰이나 체스 말을 움직이는 것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보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체스의 거장들 중 몇 명은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지만 낯선 이름도 많다. 아마 다른 책이나 영화 등에서 본 적이 있기에 낯익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보 덕분에 도입부에 나온 죽음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누가, 왜 라는 의문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두 사람의 인생과 체스가 더 매력적이다.

 

프리슈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면 한 남자의 인생이 흘러나온다. 한스 마이어. 체스에 영혼을 빼앗긴 그는 우연인 것처럼 프리슈의 기차 속 체스 게임에 개입한다. 프리슈가 둔 수에 대한 그의 해석을 시작으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인생에서 체스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깊은 흔적을 영혼에 남긴다. 그리고 운명처럼 한 인물을 만난다. 타보리다. 타보리와의 만남과 그의 훈련을 짧게 들려준다. 이 훈련으로 그는 점점 성장한다. 멋진 선수가 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타보리가 사라진다. 그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다시 둘이 만나고, 타보리의 의도가 드러난다. 이제 이야기는 타보리로 넘어간다.

 

타보리의 이야기는 프리슈 죽음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타보리의 탄생과 성장과 추락과 여생으로 이어진다. 훌륭한 체스 선수로의 성장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체스가 새긴 강한 흔적을 볼 수 있던 그의 삶은 행복했다. 인내와 강한 몰입을 통해 체스의 수들을 배운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기는 유대인에게 아주 불행했던 1930년대다. 재능보다는 출신이 우선이었다. 물론 이것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치가 득세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물론 이 억압과 압박을 피해 달아날 기회가 있었다. 안일했다. 앞으로 펼쳐질 역사의 참혹하고 잔인한 비극을 몰랐을 뿐이다. 타보리와 프리슈의 만남과 대결과 새로운 상황은 영혼에 상처를 깊게 아로새기면서 이어진다.

 

단순히 체스만 다루지 않았다. 체스에 영혼을 빼앗긴 사람들과 시대의 비극을 같이 엮었다. 운명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의 선택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이 선택마저 강요되는 현실은 너무나도 큰 비극이다. 승부와 복수라는 단어로 요약하기에는 이들의 삶은 너무 많은 굴곡이 있다. 이 많은 굴곡 속에서도 체스판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체스 챔피언이 되지 못한 아쉬움으로, 누군가는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 세 명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삶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알 수 있다. 의지와 노력과 인내가 없다면 이 불공평함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을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알파고가 바둑을 무너트리면서 이제 인간의 두뇌 게임은 컴퓨터에 완전히 졌다. 이미 체스가 진 것이 오래전이다. 체스의 신비라고 하지만 연산기능이 뛰어난 기계를 인간이 짧은 시간에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기계의 승리는 인간들이 둔 체스의 역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기보를 학습하고, 그것을 이용해 최상의 수를 빠른 속도로 연산하는 컴퓨터의 놀라운 능력은 이제 인간이 당할 수 없는 곳으로 갔다. 그럼에도 체스의 새로운 한 수에 대한 열정과 도전과 강한 의지는 매혹적이다. 비록 이것 때문에 비극이 생긴다하여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