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생강이란 이름 낯설다. 그의 이력을 보니 이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보인다. 박진규란 이름으로 문학동네문학상을 수상한 <수상한 식모들>이다. 워낙 오래 전이라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은 것은 잊지 않고 있다. 그 후 박생강이란 필명으로 다른 작품도 한 권 내놓았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아마 박진규란 것을 알았다면 한 번쯤 더 눈길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최근 나의 관심이 신인작가보다 이전에 재밌게 읽었던 작가에게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 부족이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거부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그러면서 몇몇 문학상 수상작가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관심을 둔다. 점점 편해지려고 하고, 브랜드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 같다.

 

사실 이미 나는 브랜드의 노예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이나 문학상이나 기존 작가의 믿음 등에 완전히 빠져 있다. 이 소설 속 고급 멤버십 피트니스의 보증금이 3~4천만 원이라고 할 때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호텔의 가격은 더 비싸기 때문이다. 이 헬라홀 회원들이 1%라고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더 놓은 곳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 비싼 가격의 회원권을 가지고 있고, 더 힘쎈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다. 이런 착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 많이 본다. 자신들의 위치를 항상 최상위급과 비교하는 나를 비롯한 지인들의 모습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물론 이 헬라홀 회원 모두가 1%는 아니다.

 

갑을 관계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현실에서는 병이 더 많다. 병보다 못한 정도 있다. 하층에 하층으로 내려가면 그들의 지위는 을보다 훨씬 못하게 된다. 아니 병보다도 못하다. 그래도 소설가 태권은 병은 된다. 월급도 많지 않지만 밀리지 않고 나온다.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힘이 들지만 실제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육체노동보다는 오히려 감정노동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우나 매니저란 이름이 있지만 그들은 ‘락카’ 등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퇴락한 헬라홀의 비품들은 고객들의 불만을 사지만 이 불만을 그대로 받는 역할도 그들이 한다. 한 사람의 당당함을 보여주면 불편함을 느끼는 회원들을 보면 그들의 현 위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1%라고 하지만 이 헬라홀은 신도시 부자 노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이 부자들이 사우나에서 새로운 양말 등이 나오면 들고 가 골프장에서 한 번 신고 버린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새로운 양말 등을 계속 가져다 놓을 수도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회원들이 빠져나가면서 특별히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아 바꿀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대여품이란 글자까지 쓸 정도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신도시란 특성과 권력에서 멀어진 노인들이란 위치는 이 불만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요구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백화점 휘트니스가 생겨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 같지만 이곳은 비싼 회원제가 아니다. 1%의 대우를 원하는 노인 등은 그곳으로 갈 생각이 없다.

 

사우나라는 곳을 거의 가지 않는 나에게 이곳의 풍경은 낯설다. 호텔 사우나에 간 적이 몇 번 있지만 그냥 보통의 목욕탕보다 조금 더 넓고 좋다는 것 정도 밖에 느끼지 못했다. 내가 빨리 씻고 나가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볼 생각도 못했다. 동네 목욕탕이야 너무 좁고 자주 보니 금방 눈에 들어오지만 낯선 사우나는 그렇지 않다. 세신사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진 것도 이용해본 적이 없고, 내가 자주 이용할 때는 없던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 속에는 세신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발사는 나오는데. 노인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생기는 에피소드 몇 가지는 아주 특이했다. 아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보지 못했을 뿐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뛰어난 블랙유머로 패러디했다는 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냥 한 단면을 보여준 것뿐이다. 작가의 사우나 매니저 경험이 70%나 녹아 있다는 글을 보면 뛰어난 관찰기다. 사우나 매니저 일 자체가 힘들지 않지만 이직율이 높다는 것은 낮은 급여와 그 일의 만족도와 연결된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이 일을 지원하는 듯한데 이것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풍자적인 문체와 개성 강한 캐릭터와 한정된 공간 속의 다양한 군상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출간 전 이 책 제목으로 바뀐 것은 그 사우나의 정의를 잘 보여준다고 한 작가의 말 그대로다. 나의 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노인층이 실제 JTBC를 거의 보지 않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