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는 모리미 토미히코의 소설이다. 이번 작품은 기존에 읽었던 작품과 느낌이 많이 차이난다. 새벽에 대부분 읽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이면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전작들에서 느낀 기묘하고 기발한 발상들이 이번 작품에서는 기이하고 섬뜩한 느낌으로 변했다. 유쾌하고 오밀조밀하면서 기발한 재미를 준 이야기들이 어둠 속에 잠긴 듯하다고 해야 하나. 제목의 의미가 야행열차나 백귀야행의 야행일 수 있다고 할 때 이 둘이 각각 독립된 것이 아니라 혼재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환상은 언제나 그 대상에게는 어렵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현실이 어디까지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 전 영어회화 학원 동료들과 밤의 불 축제인 진화제에서 만나 각자 하나의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이야기의 공통점이 몇 가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작가의 동판화 작품들이다. 마흔여덟 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야행 시리즈다. 그 작가의 이름은 기시다 미치오다. 그는 원래 의도했던 작품을 모두 만들지 못하고 죽었다. 이 작품들은 지역명이 붙어 있는데 다섯 이야기는 바로 이 지역을 여행하면서 각자가 경혐한 비현실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다섯 이야기 중에서 오하시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지막 구라마가 유일하다. 각각의 이야기 화자는 10년만에 모인 학원 동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기이한 일을 이야기하는데 항상 등장하는 것이 기시다 미치오의 야행 동판화다. 야행과 대비되는 서행이란 작품의 존재를 알린 것도 이 이야기 속이다. 아직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작품이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이 작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데 이 때문에 전체적인 설정이 더 어려워졌다. 단순히 밤과 낮, 어둠과 밝음의 대비가 아니다. 삶과 죽음으로 나누기에도 무리가 있다. 마경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조금은 부족하다.

 

오노미치, 오쿠히다, 쓰가루, 덴류쿄, 구라마 등은 모두 지명이다. 이 지역을 여행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이 지역은 기시다 미치오의 연작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야행 시리즈에 나오는 건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늘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이어진다. 어떤 부분에서는 공포가, 어느 곳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잔뜩 드리우고 있다. 아내와 똑같이 생겼지만 아니라고 하는 여자, 죽음을 예언하는 할머니, 공터 한 가운데에서 불타는 집과 수상한 여자, 기차 여행 중에 만난 기묘한 분위기를 가진 여고생 등이 그렇다. 동판화 속 여인 이미지지만 얼굴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상상력으로 이 존재를 추정해야 한다. 10년 전 사라진 하세가와가 아닌가 하고.

 

유리 가가린이 빛나는 지구가 아닌 어둠에 휩싸인 지구를 말했다고 하면서 어둠을 강조할 때 각각의 체험담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체험담 속에 등장하는 몇 가지 장면과 상황은 정확하게 말해 범죄행위다. 이런 일을 10년 만에 만난 영어회화 학원 동료들에게 말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기묘한 장면들은 이런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동시에 서늘하고 오싹한 느낌이 조용히 찾아온다. 작가가 조용히 깔아놓은 상황과 장면들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오하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상황은 어디가 현실의 공간인지 분명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 공간은 누구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으로 기존에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변화가 생겼다. 물론 좋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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