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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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이력을 가진 소설이다. 기자였던 작가를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들어서게 만든 작품이고, 91년 제9회 산토리 미스터리대상 가작을 수상한 후 수차례 개고 작업을 거쳐 2005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한국어판 출간 10주년을 맞이하여 전면 개정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가작을 수상한 후 어떤 개고 작업을 거쳤는지 알 수 없지만 가작은 충분히 아쉬운 점수다. 이런 점만 놓고 본다면 가작을 받은 작품과 현재의 작품을 비교해보고 싶은 욕망도 살짝 생긴다. 더불어 그 당시 대상작품이 무엇인지도.

 

살인사건의 시효가 24시간 남은 상태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사건은 15년 여교사의 추락 자살사건으로 마무리된 건이다. 그냥 시효 만료로 끝날 사건이 새로운 정보가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시청의 수사팀이 현장에 투입된다. 그리고 그 당시 사건의 용의자들에 대한 정보가 전달된다. 3명의 용의자 중 기타가 먼저 연행된다. 학생 때는 불량학생이었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건실한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15년 전 그는 그 사건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던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이유도 모른 채 불려온 그는 15년 전 그들이 계획했고, 그 계획의 실행 도중에 마주한 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타로, 다쓰미, 다치바나. 이렇게 3명은 카페 루팡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학창 시절을 멋지게 마무리할 계획 하나를 낸다. 그것을 기말고사 시험지를 훔치는 것이다. 교장실에 숨어들어가 금고를 열고 시험지를 베끼면 끝이다. 이 간단한 말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숨겨져 있다. 학교에 숨어들어가야 하는 문제, 교무실과 교장실 자물쇠 문제, 금고를 여는 문제 등. 여기에 밤마다 학교에 머물면서 순찰하는 선생까지 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젊은 열정과 시간은 이 계획을 세밀하게 다듬을 수 있게 만든다. 이들은 자신들이 계획을 짠 카페의 이름을 따 루팡 작전이라고 불렀다.

 

루팡 작전은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성공한다. 첫날, 둘째 날, 셋째 날 모두 무사히 지나갔다. 그러다 문제가 생긴 것은 마지막 날이다. 교장실 금고를 열었는데 미네 마이코 선생이 시체로 나온 것이다. 시체를 다시 금고 속에 넣고 그들은 달아난다. 그 이전에 창문으로 뛰어내린 인물이 있다. 누굴까? 이렇게 선생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이전까지 학창 시절 학생들의 멋진 일탈을 그린 청춘물이 미스터리로 변한다. 그리고 금고 속에 있던 시체는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바뀐다. 경찰 조사 결과 유서의 발견 등으로 자살로 판정난 것이다. 15년 동안 새로운 정보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소설은 기타의 진술을 하나의 큰 줄기로 삼고, 가지들은 경찰들이 채운다. 기타를 비롯한 나머지 두 명은 연행하고 심문하는 것도 이 경찰들이다.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는 인물은 경시청의 미조로기 계장이다. 연행할 사람과 심문자를 정하는 것도 그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24시간, 현실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시간이다. 열정적인 경찰과 기타의 고백은 이 부족한 시간을 채워준다. 그것은 기타의 진술이 투신자살로 끝나지 않고, 이 사건 이후 기타를 비롯한 친구들의 사건조사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면서 이런 사건의 전문가인 경찰이 더 쉽게 현실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이 사건과 함께 미조로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 같이 나온다. 3억 엔 강탈 사건이다. 카페 루팡의 주인이 몽타주의 인물과 닮았지만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 적이 있다. 기타 등은 그를 3억 씨라고 부르면서 그가 범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세 명이 늘 머물고 루팡 작전을 계획한 곳도 바로 그곳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장소와 인물의 관계를 촘촘하게 엮어놓았다. 사소한 만남과 돌발적인 행동이나 대사도 그냥 무심코 둔 것은 아니다. 그냥 읽고 지나간 대사 하나, 지문 하나가 나중에 큰 단서가 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인연을 풀어놓으면서 오히려 현실성을 떨어트린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기타와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모험은 이 소설이 미스터리란 느낌을 지워준다. 15년 전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이 청춘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열정적이고 충동적이다. 아마 경찰들의 심문이나 사건 수사를 지우고, 몇 가지 장면만 손본다면 아주 멋진 청춘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을 알려주는 방식만 바꾼다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곳곳에 심어놓았다. 청춘의 열정과 충동은 어른들이 보여주는 추악함에 짓눌린다.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들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반전의 연속, 사랑, 열정, 인간관계와 과거로부터의 해방 등은 또 다른 확실한 재미다. 한동안 잊고 있던 거장 요코야마 히데오의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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