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혼자가 되다
이자벨 오티시에르 지음, 서준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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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이 생각보다 좋다. 제목과 책 소개를 통해 예상한 장면들보다 조금 약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유명한 윌리엄 디포의 <로빈슨 크루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치는 후반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혼자가 된 후 일어난 일들이 다시 인간사회로 왔을 때 벌어진 일들과 겹쳐지고 다시 돌이켜보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야기 속에서 전반부는 관찰자였고, 후반부는 저절로 감정이입이 조금씩 되었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편과 이곳이다. ‘저편에서’는 루이스와 뤼도비크가 남미 대륙의 끝인 파타고니아와 혼 곶 사이의 무인도에 갇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곳에서’는 루이스가 구조된 후 그녀를 둘러싼 기자의 시선과 살아남은 그녀의 고뇌와 혼돈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살아남은 후의 이야기다. 예전 같으면 살아남기 위한 과정에 더 집중했을지 모르지만 이미 많은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와 비슷한 설정을 보았기에 갑자기 혼자가 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에 더 관심이 갔다. 실제 이야기의 분량만 놓고 본다면 ‘저편에서’가 훨씬 많다.

 

‘저편에서’의 장을 보면 이 커플은 모험심 강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모험과 경험을 남들에게 자랑할 정도의 목적으로 이 섬에 왔다. 기후 상황 등을 봤을 때 몇 번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뤼도비크의 고집과 원시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이 이 섬에 상륙한 것도 사실은 불법이다. 불법과 안이한 몇 가지 상황 때문에 갑자기 몰아친 폭풍에 그들이 타고 온 배가 사라진 것이다. 가까운 섬이라도 있다면 유일한 동력선인 모터보트를 타고 갔겠지만 사방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재미난 점은 그들이 고립된 섬이 이전에는 활발한 경제활동이 있었던 섬이란 것이다. 고래, 강치 등을 잡아 기름을 짜고, 가죽을 만드는 등의 호황 속에서 발전했던 섬이다. 그 흔적이 섬 곳곳에 남아 있다. 그들이 머문 집도 그 당시에 지어진 집이다. 물론 방치된 세월만큼 많이 파손되었지만 비바람을 피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먹는 문제가 남는다. 물은 섬에서 구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니 다른 음식이 전혀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펭귄을 잡아먹는 것이다. 상당한 양의 펭귄을 잡지만 보관 실패, 요리 기술 부족 등으로 음식이 부족하다. 강치를 잡기 위한 장면을 보면 평범한 성인 남녀가 이런 사냥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서툰지,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이 두 남녀가 펼치는 행동은 아주 원시적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전에 섬에 살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도구가 있다. 불을 피우는 라이터도 있다. 이런 도구는 고립된 곳에 사람이 떨어져나갔을 때 아주 유익한 도구가 된다. 그렇다고 해도 문명 속에서 안락한 삶을 누린 사람들에게 사냥과 재료 손질과 음식 보관 등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극지탐험가들이 쓴 수기에 나오는 간단한 문장 하나 뒤에 숨겨진 힘겨움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둘의 갈등은 생각과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해 점점 자란다. 그래도 이 연인은 혼자 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둘은 협력한다.

 

‘이곳에서’는 극지에서 생존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는 이미지로 루이스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녀를 심층취재하려는 기자가 있고, 그녀를 매니저하는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루이스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에 혼란을 겪고 있다. 엄청난 죄책감이 시달리는 낌새도 크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녀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은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지 모르지만 한 개인의 생존을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극한 생존 경험이 주는 정신과 의지의 공백은 때로는 일상의 평범함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오히려 더 힘겹다. 연인의 부모에게 전화하는 것도 몇 번이나 망설이다 하게 되고, 갑자기 찾아온 죄책감에 휩싸인다. 삶의 의지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을 떠난 그녀가 일상을 벗어나면서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한다. 개인적으로 이 과정이 시선을 끈다. 조금씩 감정이입하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길 바라면서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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