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공지영의 소설을 읽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 처음이다. 집에 보면 <도가니>, <별들의 들판> 같은 소설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같은 에세이도 있는데 왠지 쉽게 손이 나가질 않았다. 한국 여성 작가 중에서 베스트셀러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작가인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리면서 괜히 멀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도가니>의 경우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더 손이 나가지 않았다. 나의 분노와 슬픔이 나를 잠식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은 정보를 들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요즘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이 대부분이다. <별들의 들판>이 출간된 연도를 확인하니 2004년이다. 13년만의 단편소설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발표연도를 보면 2편을 제외하면 모두 2004년 이전이다. 정확하게 정보를 취합하지 않았지만 2004년 이후 발표된 단편이 겨우 2편이란 것인지 살짝 의문이 든다. 그녀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정말 의외다. 아니면 활발한 사회활동 덕분에 충분한 소설 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까? 장편이 몇 년에 한 편씩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과작이다. 그리고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나의 기억이 왜곡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냐면 내가 알고 있던 공지영의 소설과 다른 듯하기 때문이다.

 

<월장 춘구>는 2006년 발표작이다. 개인의 경험이 소설 속에 잘 녹아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미래가 엮여 시간의 뫼비우스 띠를 만든다. 소설 첫머리가 뒤에 나오는 이야기 속에서 다시 처음인 것처럼 나온다. 이런 구성이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녀의 삶과 글쓰기의 어려움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라는 위치와 작가라는 위치를 모두 완전히 해내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막내의 아픔으로 사라지고, 이것이 소설로 변하는 모습은 어쩌면 작가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한편의 공포물을 보는 것 같다. 여고생이 화자로 등장하여 죽지 않는 할머니 이야기를 하는데 기이하고 공포스럽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 할머니가 활력을 찾을 때마다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죽는다. 가족에서 시작하여 동물로까지 이어지는 이 과정은 반복으로 인해 가족 누구나 두려움을 떨게 만든다. 하지만 할머니가 이룬 부 때문에 쉽게 달아나지 못한다. 삶에 대한 욕망과 부에 대한 욕망이 뒤섞이면서 만들어낸 공간이자 현상이다. 발표 연도가 2001년인데 이메일 주소에 헬조선이 들어간 것은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바뀐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 설정을 비유로 받아들이면 정말 현재 한국 현실과 닮아 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2000년도 발표작이다. 이 작품은 그녀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깔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다루고 있다. 가족과 닮지 않은 자신을 닮은 누군가가 잃어버린 동생이란 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불안과 의심으로 이어진다. 개인사와 시대의 아픔이 삽입되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바뀌고, 과학의 힘으로 의심은 사라진다. <부할 무렵>은 개인사를 다루지 않는다. 한 파출부의 어려운 삶을 질박하게 들려준다. 여동생의 도둑질과 허영에 의한 과소비와 종교의 허례 등이 혼합되어 있다. 십일조 낼 돈이 있냐는 물음보다 그 돈을 내어서라도 삶이 더 좋아지길 바라는 동생의 바람은 이미 그들이 사는 곳이 지옥임을 알려준다. 순례가 자존감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얻는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골목’의 오타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201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데 앞의 작품처럼 개인사가 깊숙하게 드러나 있다. 이 개인사는 자신의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H와의 관계로 시작한다. H는 북한에 납치되어 24년 동안 머물렀다. 이 인권 침해에 대해 일본인들은 한국인에게 질문한다. 이 질문에 대한 반론으로 종군위안부를 말할 때 그들의 입은 닫힌다. 이 모순 혹은 이중성은 우리 속에도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는 운명을 말한다. 쉬운 질문이 아니다. 아우슈비츠가 나오고, 이곳에서 살아남은 작가들을 말할 때 더욱 더. 그가 고통과 아픔을 쌓지도 내뱉지도 않고 그냥 놓아둔다고 했을 때 크게 공감했다. 하지만 또 언제 이 고통과 아픔이 생살을 찢고 나올지 모른다. 그때는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라면 아직 그것을 제대로 놓아두지 못한 탓이다. 인간이 성장해가는 것이 운명이라는 말에 의문과 함께 생각에 잠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