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진수 - 맛의 사계를 요리하다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집착하는 것들 중 하나가 음식이다. 맛집에 집착한 것도 몇 년 전부터다. 그 이전에도 맛있는 집을 가끔 찾아다녔지만 최근처럼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맛집을 가기 위해 몇 시간 운전도 한다. 이런 나의 집착을 아내가 탓하는 경우가 흔하다. 예전에는 그냥 동네에 있는 식당이라 들어갔다가 입에 맞아 자주 갔는데 나중에 방송을 타면서 너무 유명해진 경우도 자주 봤다. 이런 집은 왠지 쉽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줄서기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여행지에 가면 이런 줄서기를 한다. 이렇게 변하다보니 맛집이나 음식에 대한 책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다.

 

단 가즈오. 잘 모른다.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해도 이 책을 제외하면 다른 책은 한 권도 보이지 않는다. 나오키 상을 수상한 이력을 생각하면 의외다. 하지만 이 작가가 활약했던 시대를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생몰연도가 1912~1976년이다. 요즘의 유명한 작가이거나 근대 작가 중 아주 유명한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번역이 되지 않는 출판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하다. 이 책도 2006년도에 단 가즈오의 아들이 재간하지 않았고, 요즘처럼 음식 방송이 인기를 얻지 못했다면 번역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박찬일 요리사가 한국의 사계절 음식 재료들을 스님들과 함께 돌면서 조사한 것을 묶은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를 읽었다. 사계절 24가지 음식 재료를 다루었는데 아주 현대적이었다. 나의 추억과 기억을 살살 부채질하면서 새롭게 다가왔었다. 그런데 이 책은 또 다른 기억을 불어왔다. 왜 이렇게도 우리가 먹은 음식이랑 비슷한 것이 많을까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탓일까? 아니면 두 지역이 비슷한 기온과 식재료를 가지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것일까? 아마도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그런 것들만 내가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 가즈오란 인물의 전 세계 유랑기이기도 하다.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고, 유럽, 아메리카, 호주 등도 여행했다. 그가 살던 시대를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이야 너무 쉽게 해외로 여행을 갈 수 있지만 5~60년대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던가. 물론 이 시대에도 전 세계를 열심히 돌아다닌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많은 지역들이 눈길을 끄는 와중에 중공시절의 북경을 방문한 이야기는 약간 의외였다. 그때는 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는가 하고. 다른 일본인이 중국 음식에 대해 쓴 책을 보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기에 더욱 그렇다. 뭐 시간적으로 차이는 꽤 있다.

 

2차 대전 당시 그는 보도원이었다. 이 경험이 이 책 속에 가끔 나온다. 직접 총을 들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징발을 통해 먹을 것을 조달한 장면도 보인다.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조금 불편한 부분이다. 그리고 조리법이나 음식 등에 대한 전래 부분을 거의 모두 중국으로 기술한 것도 조금 눈길을 끈다. 문외한이라 반박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유래한 것도 꽤 있을 것 같기에 그렇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계속해서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단 가즈오가 직접 요리하는 장면이다. 그 자신이 아주 멋진 요리사 같다. 실제 그의 집에서 연회가 벌어지고, 해외에서 자신이 직접 재료를 손질해서 요리하는 것을 보면 전문 요리사다. 다만 식당을 정식으로 차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랄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그 중 하나가 비프스테이크다. 미국에서 먹은 비프스테이크가 맛없었다는 동료의 글 때문에 맛있는 비프스테이크를 미국에서 공짜로 실컷 먹었다는 이야기는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 정도다. 그리고 아귀 토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한국의 아귀찜이나 아귀탕 외에 다른 요리법을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은 아쉬웠다. 아귀에 대한 한국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 에피소드가 낯설게 다가온다. 아귀를 걸어놓고 손질한다는 것도 낯설다. 이런 낯섦이 하나의 재미인 것은 분명하다. 또 책 속에 나온 몇 가지 용어나 재료 등에 이야기는 한국에서 혼용하여 사용하는 단어 등에 대한 해답이다. 이것은 복어의 한자 표기 오류 같은 일본의 예와 비슷하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산과 들과 바다 등이 점점 오염된다. 개발이 되면서 사라지는 공간도 적지 않다. 이런 곳들에서 자라던 수많은 동식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이 책을 처음 쓴 시절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시대의 차이는 한국의 동식물에서도 자주 본다. 예전에는 흔했던 생선이 이제는 아주 귀해진 것과 같다. 이런 많은 것들을 읽으면서 느낀다. 그리고 한국의 식재료와 비슷한 것이 대부분이라 많은 것을 배운다. 음식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절로 눈길이 갈 것이다. 나의 음식 내공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진 후에 다시 읽게 된다면 이 책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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