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이름은 많이 봤지만 처음 읽는 작가다. 워낙 인기가 있어 몇 권 사놓기도 했다. 얼마 전 읽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 가끔 헷갈린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고, 제대로 읽지 않고 제목만 보다보니 둘을 순간적으로 혼동했다. 하지만 그 작가의 책을 읽은 후 최소한 작가에 대한 착각은 하지 않는다. 많은 권수를 읽지 않은 두 작가의 선호도는 현재까지는 샤를로테 링크가 더 높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니 예상하지 못한 작품도 보인다. 샀지만 읽지 않아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반가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른 작품도 기대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분명 독일작가인데 영국이 무대인 것이다. 뭐 이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국적과 상관없이 한 지역을 무대로 연작을 쓴다. 꼭 자기 나라만 무대로 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작가 이력을 읽다가 대부분의 작품 배경이 영국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영국을 무대로 글을 쓸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이 엄청나게 많이 팔린 것에 놀랐다. 이 정도까지 팔린 작가가 한국에 이렇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란다.

 

이야기는 속도감 있다.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지도 않고, 범인을 분명하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형사 측과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을 나누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얼마 읽지 않아 이들이 모두 한 사건과 관계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는 이 차이를 독자에게 알려주지만 현장의 경찰이 이것을 금방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은퇴한 형사 리처드 살인이 하나의 축으로 진행된다면 그 곁에서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진다. 연쇄살인사건이다. 이 사건만 따라가도 부족할 텐데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 조나스 가족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이 가족을 둘러싸고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은퇴한 형사 리처드는 자택에서 살해당한다. 누군지도, 왜 자신을 죽이는지도 모른 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죽는 순간 알게 된다. 그의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실수를. 그는 스카보르 경찰서의 전설이었다. 하지만 은퇴한 후 자신의 집에 침입한 살인자에게 너무 무력하게 무너진다. 자신이 늘 피해자 등에게 주의시켰던 것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리고 이 사건은 케일럽 반장이 담당한다. 그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방금 돌아온 상태다. 여기에 리처드의 딸이자 런던경찰청 형사인 케이트 형사가 휴가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세상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성격이다. 삶의 많은 부분을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고향집으로 온 것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나스는 심리적 압박감에 휩싸인 채 살고 있다. 의사는 통신매체와 떨어진 곳에서 홀로 휴가를 보내라고 조언한다. 벌어놓은 돈도 없고, 여덟 차례의 인공수정으로 빚만 늘었다. 정규직도 아닌 프리렌스 시나리오 작가다. 재능이 있어 현재까지 찾는 곳이 많지만 언제까지 이 능력이 빛을 발할지는 모른다. 불안하다. 아내 스텔라가 인공수정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은 입양이다. 새미를 입양한다. 하지만 이 입양은 문제가 있다. 실제 엄마인 테리가 한 번 찾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열여섯 소녀가 홀로 키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밀입양이 입양가족의 정보노출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테리가 새미의 다섯 번째 생일에 남자 친구 닐과 함께 나타난다.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남자다.

 

리처드 살인은 자연스레 리처드가 담당했던 과거 사건들에 집중한다. 그러다 한 범죄자를 발견한다. 리처드에게 잡힌 후 복수하겠다고 말한 남자다. 데니스 쇼브가 용의자로 떠오른다. 현재 위치도 파악되지 않는다. 경찰의 시선은 데니스 쪽으로 옮겨간다. 그러다 케이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아빠의 비밀 연인이었던 멜리사다. 리처드의 죽음을 보고 그 딸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 약속 시간을 잡고 집으로 갔지만 만나지 못한다. 학교로 간다. 그곳에서 그녀의 죽음을 발견한다. 두 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연쇄살인이다. 형사는 아직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다. 다만 멜리사의 아들을 통해 리처드와 그녀가 연인이었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의존이 심했던 케이트에게는 큰 충격이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이것을 하나씩 풀어내는 것이다.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고, 차량 탈취와 총격이 벌어진다. 동떨어진 두 사건이 흘러가는 와중에 이에 휘말린 사람들의 현재와 복잡한 심리 상태가 아주 잘 표현된다. 중심적인 인물들 모두는 평범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이거나 아버지 의존적이거나 강한 심리적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 모두 단숨에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가장 이성적이면서 현실에 잘 적응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형사 제인과 조나스의 부인 스텔라가 대표적이다. 끈기와 인내가 없었다면 결코 해결할 수 없었다.

 

작가는 독자에게 사실 하나를 숨긴 채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간다. 리처드와 멜리사의 비밀 말이다. 이 살인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너무나도 쉽게 케일럽 반장에게 드러난다. 이야기의 흐름 상 전혀 무리가 없는 범위 안에서 진행되지만 잠시만 진정하고 돌아보면 부자연스러운 구성이다. 어쩌면 괜한 트집일 수도 있다. 비록 케일럽이 알기 전에 너무 쉽게 알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강한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다른 장면이 나와 놀랐다. 이런 구성과 전개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내면을 잘 그려낸 것이다. 앞에서 말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마음을.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이 한 번의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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