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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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이란 작가를 처음 인식한 작품은 <국가의 사생활>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때 쓴 리뷰를 읽으니 통일한국의 모습보다 장르소설에 대한 불만이 눈에 들어온다. 최소한 통일한국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다음으로 읽은 작품은 <밤의 첼로>였다. 역시 나의 평가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부분보다 다른 곳에 눈길이 더 가면서 생긴 차이다. 하지만 이렇게 작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쉽지 않다. 늘 읽은 작품도, 작가도 잊어먹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은 역시 신경숙의 표절 시비다. 이때 두 문장을 보고 하늘 아래 새로운 문장이 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의도적인 것이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한두 작품이 아니라면?

 

이 책 아주 두툼하다. 800쪽이 넘는다. 얇은 종이를 사용했다면 부피가 덜할 텐데 비채에서 늘 사용하는 용지다. 표지를 보면 왠 촌스러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이설집이라니. 그는 이설(異說)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나의 산문들이 그저 그럴듯한 산문이 아니라 그 누구의 무엇과도 비슷하기를 거부하는 이설(異說)이기를 바랐”다고. 그리고 “내가 작가로서 치러낸 내 청춘의 모든 백병전들에 대한 수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어떤 책들보다도 이 책을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1996년부터 2016년까지 긴 세월을 담고 있고, 그 글들 속에는 그의 삶과 철학과 문학관과 절망과 비아냥대는 일과 독설과 냉혹한 현실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책은 일곱 부로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5부 ‘토토는 생각한다’와 6부 시‘인 함성호 씨’가 없었다면 읽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7부의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는 5부와 6부를 생각하고 다가갔다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의 연장선 혹은 단서들이 나와 깜짝 놀라며 속도가 더뎌졌다. 처음에는 SNS 등에 올린 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글과 행동이 사뭇 다른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대표적인 것이 신경숙의 표절 시비를 두고 보여준 그의 인터뷰다. 날선 독설과 달리 그 사건이 불러온 파급효과가 그를 신중하게 만든 것 같다. 사건의 확대나 비약을 자제하려는 모습에서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4부 ‘참호에서의 책읽기’는 서평을 다룬다. 책은 그에게 동지이자 참호다. 많지 않은 서평이라 아쉽다. 읽었던 책에서는 다른 시각과 해설이라 재미있었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은 관심을 고조시켰다. 몇 권 더 사거나 다시 읽어야 할 책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의 <불구가 된 미국>에서 그가 말하는 몇 가지는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를 두고 다른 쪽에서 말한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 구분은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4년 동안의 미국이 과연 지난 8년 동안의 오바마 미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잘 지켜봐야 한다.

 

3부 ‘전장에서’는 눈길을 끄는 몇 편의 글이 있다. 일단 그의 작품을 둘러싼 인터뷰가 있고, 산문가 김수영에 대한 글이 있다. 인터뷰는 솔직히 말해 평범했다. 다른 작가들보다 조금 날이 선 듯한 표현이 보이지만. 김수영 전집 2권에 대한 그의 집착(?) 혹은 애정은 놀라울 정도다. 과연 나는 이런 적이 있었나, 하고 물어볼 정도다. 그의 문장에 대한 집착과 열정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 작품을 읽고 문장의 아름다움이란 것을 처음 깨달았다. 늘 다시 읽으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개인적으로 <국가의 사생활> 이탈리아판 서문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모습이라 놀랐다. 신경숙의 표절을 둘러싼 이야기도 여기에 나온다.

 

2부 ‘광장에서’의 날선 글들은 자극적이다. 그는 묻는다. 보수, 진보, 중도, 국가, 민주주의, 지식인, 김구와 이승만, 20세기, 이념, 통일 대한민국, 인간, 신문맹인 등. 이 글들을 읽다 보면 그가 정치적으로 좌와 우 양쪽을 다 비판하는 양비론자처럼 보이지만 전체를 차분하게 읽다 보면 자신의 주장처럼 중도를 걷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솔직함은 진영의 논리를 초월한다. 통섭과 융합에 대한 글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했던 그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작가도 말했듯이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유행을 쫓아 끄적였던 그 글들 말이다.

 

1부 ‘보리수 아래에서’는 1996년 10월에 쓴 스무 살 청춘에 대한 글로 시작한다. 이 긴 글의 시작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부에서는 7부의 글들과 이어지는 부분들이 많이 눈에 들어오지만 1부는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억이 희미해서 그런지, 아니면 시간적으로 더 앞서 있어서인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어려운 시간을 헤쳐나가는 과정 속의 모습은 나의 시간과 어느 부분 겹쳐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과도한 감정이입 혹은 끼워 맞추기 일수도 있다. 그리고 함성호의 발문을 읽으면서 시인이자 건축가인 그의 내공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이응준과 함성호의 시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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