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중력가속도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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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배명훈의 단편집이 나왔다. 그는 한국 문단에서 흔하지 않은 sf작가 중 한 명이다. 처음 그의 단편을 읽었을 때 기대했던 모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광대한 우주를 누빌 것 같았는데 장편으로 나온 소설은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누군가를 만났어>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은 탓이다. 물론 이 단편집에는 배명훈의 작품만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나의 기억에 혼선을 불러왔고, 이 혼선이 배명훈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은 왜곡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는 계속 같은 작업을 했는데 나의 기억이 멋대로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모두 열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각 다른 이야기인데 같은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은경이다. 별 뜻 없이 지은 것이라고 소설 속에도, 후기에도 말한다. 하지만 이 작업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혹은 그의 사랑과 관계된 이름이 아닐까 하고. 이런 추측과 동시에 이 단편들이 혹시 하나의 연작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같은 이름과 고래의 노래 등이 등장하면서 괜한 상상을 해본 것이다. 물론 이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만의 단편집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안녕, 인공존재!> 이후 처음이다. 앤솔로지 형식으로 참여한 단편집은 검색하니 몇 권 보인다. 몇 권은 가지고 있고, 몇 권은 그렇게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은 첫 단편집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이런 상태니 위에서 말한 혼선이 생길 수밖에. 단편집을 읽을 때면 늘 호불호가 생긴다. 그런데 이번 작품집에서는 불호는 없다. 다만 조금 더 흥미로운 작품만 있을 뿐이다. <유물위성>, <티켓팅 & 타켓팅>, <예술과 중력가속도>, <예비군 로봇>, <초원의 시간> 등이 그 작품들이다.

 

<유물위성>은 이야기 구조가 낯익다. 한참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마지막에 큰 반전을 만든다. 혹시 했던 것이 사실로 이어질 때 반갑다. 그런데 이 작품은 또 그 다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표제작인 <예술과 중력가속도>는 읽으면서 <무한도전>의 우주특집 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비행 고도로 무중력을 만들었던 것이 이 소설에서는 더 확장된다. 이야기 서두에 식사 중 금지라고 한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 미모의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보여준다. 허약한 의지의 남자들이란. 하지만 마지막으로 가면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예비군 로봇>은 황당하지만 재밌다. 기계지성체의 공격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은경의 노력이 한편의 코미디다. 약관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에 예비군에 편입되는 것과 전자인식매체로 인한 착각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기계지성체의 놀라운 연산 능력이 해탈에 도달하는 것 같은 장면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티켓팅 & 타켓팅>은 <예언자의 겨울>과 고래의 노래를 공유한다. <예언자의 겨울>이 핵전쟁 이후 고래들과 핵잠수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티켓팅 & 타켓팅>은 그 어렵다는 인터넷 예매를 소재로 유쾌하면서도 코믹하게 다루었다. 인터넷 예매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예매 성공에 대한 비법은 꽁꽁 숨겨두고 있다.

 

<초원의 시간>은 타임머신 이야기다. 물론 직접적으로 타임머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초원에서 벌어진 전쟁 속에서 한 천재 소녀를 구하기 위한 작전과 현실 문제가 엮인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늘 미래의 도움이 일어난다. 초원이란 지역을 공유하는 <양떼자리>는 추억과 그리움과 환상 등이 섞여 아름다운 마무리로 이어진다. 초원 사람들의 너무나도 뛰어난 시각과 양산으로 가린 여자의 모습은 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조개를 읽어요>가 <양떼자리>의 상상력과 이어진다. 누나와 읽는다는 것과 우주라는 공통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스마트 D>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문자에 대한 이야기다. 알파벳 D, 한글로는 ㄷ에 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우리의 일상에서 한 글자를 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얼마 전 영화로 개봉되었던 <픽셀>이 떠올랐다. <홈스테이>는 눈수술을 받으려고 지상에 내려온 화자가 귀로 금지된 로봇을 발견한다는 설정인데 전기자동차의 무소음 문제가 떠올랐다. 차에 소음을 넣어 사람들이 차가 온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려는 작업 말이다. 이렇게 이 열편의 작품들은 밀도 있는 문장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나의 머리를 자극한다. 먼 훗날 다시 읽으면 또 어떤 것들이 떠오를지 괜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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