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시인 김기택을 잘 모른다. 그의 시를 한두 편 정도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을 테지만 이름은 조금 낯설다. 몇 명의 시인을 제외하면 사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시인의 첫 산문집을 선택한 것은 시인의 산문집이란 것과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의자고행을’이라고 사무원을 표현한 시 때문이었다. 실제 이 문장을 읽을 때 나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느꼈다. 시인이 우리의 삶을, 사물을 어떻게 보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51편의 시는 시인이 2010년 5월부터 1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임명한 문학 집배원이었던 때 즐겨 읽거나 좋아하는 시에 짤막한 감상을 붙여 보낸 것들이다. 물론 이 산문집이 나오면서 새롭게 ‘감상에다가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체험적 시론, 삶에 대한 이런저런 잡생각들을’덧붙였다. 덕분에 한 편의 시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의 경험을 떠올려주는 이야기도 있고, 나의 이해를 넘어선 시들도 가끔 보였다. 하지만 이런 시와 산문의 결합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한 카페에서 시를 올리고 여기에 짧은 감상을 덧붙였던 기획이 살짝 떠올라 그립기도 했다.

 

이전에 문학 집배원에서 온 글들을 그냥 대충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정독하는 경우도 있지만 웹으로 오게 되면 그냥 대충 보고 삭제한다. 시의 경우는 왠지 모르게 더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직 아날로그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고 51편의 시와 시인들 중에서 낯익은 시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늘 이런 시 모음집을 읽으면 낯선 시인들을 만난다. 그러다 몇 명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물론 휘발성 기억은 며칠 가지 못한다. 반면에 오래전 멋모르고 읽었던 시인들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당연히 이런 시인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많은 시집을 생각하면 조급증이 생기기도 한다.

 

나에게 시는 참 어렵다. 얼마 전에 읽은 시인의 산문집 한 권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는데 이번에 다시 그 자신감이 사라졌다. 날림으로 읽고, 대충 공부한 탓이다. 이 산문집을 사계절로 편집되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탄력의 통쾌함, 나의 세상의 중심이다, 사랑에는 기교가 필요하다, 난폭한 슬픔 길들이기 등으로 작은 제목을 정했다. 읽기 편한 것이 봄이라면 겨울의 시는 무심코 읽다가 시인의 해석을 읽고 다시 보면서 그 난폭함에 놀란다. 정제된 단어와 문장이 만들어낸 시어들은 왜 시인들이 사물을 다르게 보는지 잘 보여준다. 박주택의 <국경>, 장경린의 <퀵 서비스>, 유홍준의 <가족사진>, 정철훈의 <병사들은 왜 어머니의 심장을 쏘는가> 등이 특히 그렇다.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면 이면우의 <거미>가 떠오른다. 지독한 외로움이라고 저자는 말했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나이듦이다. 거미가 지은 집을 두로 나이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떠올랐다. 몇몇 시는 나의 오독인지 모르겠지만 시인의 해석과 달랐다. 경험의 차이 탓일까? 아니면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일까?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나의 시 세계도 조금은 넓혀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정병근의 <물방울, 송곳>은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물방울이 오랫동안 송곳 역할만 했다고 생각한 나에게 ‘자신의 고통을 떨어지기 직전의 물방울에 담았다’고 했을 때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회사원으로 일하며 시를 쓴다는 것의 어려움을 말한 에피소드 중 영수증과 돈에도 시어들을 적었다는 부분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제는 메모지를 들고 다닌다고 하지만 출퇴근길에 떠오른 시상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잘 드러났다. 물론 이것으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갈고 다듬어 한 편의 시로 만들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날에 뚝딱 시를 읊던 시인과 퇴고의 고사가 떠올랐다. 시와 산문의 결합은 왠지 모르게 산문에 더 눈길이 간다. 시를 좋아하고 쉽게 이해한다면 다르겠지만 나처럼 이해의 폭이 좁은 사람에게는 산문이 더 쉽다. 산문으로 시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저자의 감상이 나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조금 난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편집은 시를 쉽게 접하게 만든다. 시인이 쓴 산문집이라면 더욱 더 반갑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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