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이름은 자주 들었는데 책을 잘 읽지 않은 작가들이 있다. 마르탱 파주도 나에게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한번쯤은 본 작품들이 주르륵 나온다. 그런데 읽은 책은 두 권밖에 없다. 꾸준히 번역되었지만 눈에 자주 띄지만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 작가의 작품에 손이 잘 나가지 않는다. 읽으면 단숨에 읽게 되는데도 말이다. 사실 이번 작품도 표지만 봤을 때는 읽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우연히 보게 된 하나의 그림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특히. 그 그림은 <내 집 마련하기> 앞에 나오는 잠수복을 입은 남자 그림이다. 무심코 볼 때는 그냥 잠수복과 잠수 도구를 쓴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에 쓴 헬멧 속에 스노클이 들어 있다. 이 이상한 모습이 책 속으로 나를 인도했고, 그 결과는 아주 만족한다.

 

얇은 책이다. 하지만 담고 있는 단편은 여섯 편이다. 각 단편마다 비현실적인 상황이 연출되는데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중에서 첫 작품 <대벌레의 죽음>은 아주 멋있었다. 말도 되지 않는 부조리극 한 편을 보는 것 같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의도된 연출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마약을 한 후 정신을 차린 남자에게 경찰이 와서 당신이 시체라고 말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이 상황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시체에게 총을 겨누기도 하고, 사진사가 나타나 시체 사진을 찍겠다고 말한다. 분명히 살아 그들과 말을 하고 있는데도. 어느 순간에는 카프카의 소설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답답하고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열린 결말이 되다 보니 더 많은 생각을 한다.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는 갑자기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남자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와 똑같은 옷을 입고, 행동도 비슷하다. 그가 바란 것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속에서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자유를 누리는 화자가 강한 인상을 준다.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는 제목 그대로다. 혈액 검사에서 호모사피엔스 이전 인종인 호모사피엔스 인슈라리로 밝혀진다. 과학자가 이 사실을 세계에 알리면서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없게 된다. 현재 그가 유일한 호모사피엔스 인슈라리인데 그가 죽게 되면 멸종된다. 과한 보호를 받고 살지만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보호와 격리생활은 오히려 건강을 헤친다. 그러다 히피들이 나타나 그를 사람이 없는 곳에 머물게 하면서 끝난다. 혼자 외로이 섬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서 말이다.

 

<평생직장에 어울리는 후보>는 직업소개소 상담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 남자가 바라는 것은 범죄 직종에 참여하는 것이다. 상담원은 그의 부적격 사유를 계속 말하고 주인공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범죄자와 공무원을 나란히 놓고 비틀어서 풀어낸 이야기는 조금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내 집 마련하기>란 제목만 놓고 보면 흔한 재테크 책 제목 같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흔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이 내 집은 자신의 내면에 있다. 이 집의 장점을 늘어놓는데 이 비현실적인 설명이 상당히 매혹적이다. <벌레가 사라진 도시>는 작가도 책 속에서 말했듯이 벌레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먹이 사슬 위쪽으로 이 사라짐이 이어진다. 사라진 이유는 인간이 사귀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처참한 현실인가.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는 망상에서 시작한 일이 하나의 예술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조금은 자극적이다. 그리고 화자의 행동은 돈키호테와 닮은 점이 있다. 마지막 장면은 자본에 의해 박제가 된 예술과 예술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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