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일색 김태희
김범 지음 / 네오픽션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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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이 얼마나 유치한 제목인가! 그러다 작가 이름을 봤다. 김범. 몇 년 전 <공부해서 너 가져>란 소설 한 편으로 나를 사로잡은 작가다. 어지간해서는 한 번 읽은 작가의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 작가의 작품은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간단하게 읽은 책 소개 글은 아주 반어법적이었다. 천하일색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그녀의 외모는 평범 이하였다. 이런 그녀가 연하의 성형외과 의사인 멋진 남자와 연애를 한다니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금했다. 또 어떤 반전이 펼쳐질까 하는 호기심도 자극했다.

 

36살의 성우인 김태희는 서울대 출신의 미녀 김태희와 동명이인이다. 동명이인으로 인한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재작년에 끝난 <별에서 온 그대> 이후 도민준이란 이름만 나오면 모든 사람의 시선이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유명인과 동명이인인 경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김태희도 마찬가지다. 그녀도 학창시절 미녀 김태희와 비교되었다. 다행히 공부는 잘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천하일색 김태희’라는 놀림을 받았다. 읽으면서 나쁜 놈들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 나이의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찰스 리.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다. 평소 전철을 타고 다니지 않는데 일이 생겨 탔다. 그곳에서 그는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의 여자를 발견한다. 바로 천하일색 김태희다. 변태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중이었던 그녀다. 성추행에 대해 그녀는 당당하게 말한다. 얼굴도 못생겼고, 몸매도 과체중인 그녀지만 괴롭다. 이때 도움을 준 인물이 찰스 리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가 그녀에게 빠질 줄은. 그의 이상형이 <닥터 지바고>의 라라인 것을 감안하면 도저히 얼굴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성격과 행동은 비슷한 점이 많다. 찰스는 그것을 간파한 것인지 모른다.

 

못생긴 김태희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외모지상주의를 꾸짖는다. 나도 이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강남형으로 성형한 여자들이 지나가면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간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 부자연스러움에 질리지만 윤곽이 뚜렷한 외모에는 나도 모르게 반응한다. 마눌님 말대로 속물이다. 이런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면 잠시 반성을 하지만 또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하지만 못생겼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의 그녀들을 보는 법을 배웠다. 연습과 노력을 결과다. 아니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미의식의 일부를 되찾은 것이다. 아닌가? 미의 기준이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시대에 한 개인의 모습을 존중한다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물론 아직 완전히 배운 것은 아니다.

 

찰스의 배경은 화려하다. 대학 총장인 아버지와 대기업 대표이사인 어머니에 자신도 의사다. 그것도 아주 잘생긴 연하다. 이런 그가 김태희에게 세 번만 만나자고 했을 때 그녀가 진심을 느끼기는 무리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외모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라디오 방송에서도 밀리게 한다. 그녀에게 좋은 선배였던 박진국이 잘 가공된 고공주에게 빠져 구차한 변명을 내려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격이니 실력이니 하는 것을 가볍게 밟고 지나가는 것이 가끔은 외모다. 목소리가 좋으면 되는 라디오인데도 말이다. 이때 찰스가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랑을 다룬다. 연인들의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사랑도 같이 다룬다. 이 가족들의 사랑을 작가는 약간 미화한다. 한 편으로는 극단적인 소유욕으로 표현한다.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몇 개 나오는데 그냥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글 전체가 무겁지 않다보니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전개도 빠르다. 특히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아주 멋지다. 재미의 대부분이 바로 캐릭터에서 비롯한다. 이 둘의 사이를 두고 만들어지는 소문들은 우리가 흔히 내뱉는 말들이다. 읽으면서 뜨끔했다. 경쾌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비판이 많고, 유머도 넘쳐난다. 대표적인 것이 마지막 대사다. 남자의 진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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