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간 책들 - 진중문고의 탄생
몰리 굽틸 매닝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진중문고. 한자를 같이 표기했다면 금방 그 뜻을 알았겠지만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다. 한글만으로 표기되었을 때 그 뜻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이 그렇다. 조금 불친절한 편집이다. 물론 이 책을 선택했을 때 어느 정도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사상전이었는데 책 내용은 그 부분을 강조하지 않는다. 진중문고에 어떤 책들이 포함되었고, 이 책이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바라는 것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이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어려움도 같이.

 

나치의 책 태우기부터 시작한다. 아주아주 옛날 진시황이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펼치지 않았는가. 역사 속에서 점령자들이 책을 태운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의 현대판이 1933년 5월 10일 독일 베를린 베벨 광장에서 벌어졌다. 나치의 정치적 목적에 맞지 않은 책들을 공개적으로 태운 것이다. 이런 행동은 2차 대전이 펼쳐지는 와중에 점령지에서도 펼쳐졌다. 예상하는 추정 숫자는 1억 권이 넘는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다. 그런데 2차 대전 당시 미군이 발간한 진중문고의 숫자는 이것을 넘어선다. 1억 2300만 권 정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숫자가 아니다. 이 책들이 전쟁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처음 들어가면 하는 일도 없는데 피곤하다. 주어진 일도 없으니 멍하니 시간만 보낸다. 이때의 무력감과 피곤함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 무료한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가 있는데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책을 꺼내 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터라면 어떨까? 늘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는 곳에 머물고 있다면? 다음 전투까지 그냥 무료하고 무력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다면 어떨까? 이때 그들에게 전달된 책들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을 것이다. 책을 좋아했다면 더 좋아할 것이고, 이전까지 제대로 책을 읽지 않는 군인이라면 그 시간을 즐겁고 재밌게 보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생긴 것이다.

 

이 책 이전에 단 한 번도 진중문고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바로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죽음이 보이는 곳에서 책을 읽었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다음 전투를 위해 쉴 때 가끔 책을 읽는 군인들이 있었지만 보통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2차 대전 당시는 달랐던 모양이다. 병원의 환자라면 그 무료함을 보낼 책이 좋은 선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보통의 부대라면 글쎄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 재밌고 놀라운 것은 벙크에 빠진 군인이 포탄이 날아오는 와중에 그 속에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다친 몸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하지만 놀라운 장면이다. 아마 영화 등에서 이 모습을 보았다면 아주 비현실적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진중문고 이전에는 승리도서란 것이 있었다. 각 가정에 있던 책들이 군대로 보내졌다. 하지만 하드커브 책들은 무겁고 두껍고 휴대하기 불편하다. 하지만 이 책들은 군인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지치고 무기력한 군인들을 즐겁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이 역할을 책이 맡은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처음에 보내졌던 기증도서와 달리 군에 의해 제작된 진중문고는 훨씬 가볍고 휴대하기 편하다. 군인의 상의나 하의 속에 접어서 넣을 수 있을 정도다. 언제 어디서나 주머니에서 꺼내 읽을 수 있다. 이런 모양이 책을 처음에는 단순히 이전에 나온 페이퍼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달랐다. 이 책 속에 사진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진중문고의 탄생과 운영을 보면서 한국 군대의 금서 사건이 떠올랐다. 군의 사기를 위해 전쟁 중에 좋은 책들을 선정해서 군인들에게 나눠주었는데 한국은 어떠했는가? 물론 미국에서도 진중문고의 운영을 둘러싼 잡음과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진중문고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환호 속에 사라졌다. 싸게 만들면서 생긴 문제도 있었지만 더 많은 책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들은 보는 나로 하여금 단순한 책 한 권의 의미를 넘어섰다. 수많은 진중문고 중에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위대한 개츠비>다. 다른 작품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읽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리고 이 책도 양장본이 아니다. 페이퍼백으로 더 싸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서 뒷주머니에 진중문고를 꽂고 행군하는 군인의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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