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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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에서 모던 앤 클래식 시리즈로 SF소설을 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이전까지 나온 작품들이 모두 나의 기대를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이 장르가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비록 이전처럼 SF문학을 더 많이 읽지 않고 있지만 늘 관심을 두고 있는 장르이다 보니 이쪽의 신간이 나오면 늘 눈길이 간다. 다만 추리소설보다 더 협소한 시장이다 보니 나오는 책이 훨씬 적다. 그래서 아직도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의 숫자가 훨씬 적다. 그래서 이 작품집의 작가도 낯설다. 화려한 수상 이력을 생각하면 조금 의외지만 나의 얕은 지식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 작품집의 표제작 <블러드 차일드>는 정말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SF문학상 세 개를 모두 수상했다. 네뷸러상, 휴고상, 로커스상 등이다. 이 중 하나만 받아도 엄청난 홍보를 하는데 셋이나 받았다. 그런데 이런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진 작품이 겨우 단편선집 <토탈호러>에 실린 것이 전부였다. 한국의 SF 시장이 얼마나 척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당시 이 단편선집을 읽었지만 나의 관심은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에 가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장편들도 이전까지 딱 한 권 출간되었다. 이번에 읽으면서 검색한 결과다.

 

이 책은 일곱 편의 단편 소설과 두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재미난 점은 각 단편이 끝난 후 저자의 후기가 덧붙여져 있다는 것이다. 처음 단편을 잡지 등에 출간할 때는 없었던 부분인데 단편집으로 묶이면서 덧붙여진 것이다. 덕분에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되었고, 독자나 평론가들의 오독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막은 것도 사실이다. 단편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바와 작가의 후기가 다른 경우(대부분 다르다) 읽었던 이미지가 흐려지고 깨어지는 단점이 있다. 물론 새롭게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장점도 공존한다.

 

<블러드 차일드>는 읽으면서 조금 난해했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어 작가가 설명만 가지고 상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알을 먹으면서 젊음을 유지하는 부분과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의 생명체를 위한 숙주가 되는 이야기가 아주 놀랍게 펼쳐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에어리언 시리즈의 한 장면 같은 부분도 있지만 자발적이라는 것과 숙주를 살리려는 노력 등이 세밀하고 탁월한 심리 묘사와 더불어 표현되었다. 왜 이전에 이 작품의 재미를, 깊이를 알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 당시 좋아하던 SF 장르가 아니었던 탓일 것이다.

 

<저녁과 아침과 밤>은 유전적 질환을 소재로 했다. 듀리에-고드 질환(DGD)라고 불리는 이 병은 한 치료제에서 발생했고, 유전된다. 무서운 것은 엄청난 자해와 자살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부모가 죽었던 장면에 대한 묘사는 한 편의 호러 소설 일부를 읽는 것 같다. 장편으로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을 소재다. <가까운 친척>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SF 느낌이 없다. 읽다 보면 하나의 가능성이 살짝 엿보이는데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 구약성경을 예시로 삼았다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말과 소리>의 시작은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놀라운 미래의 모습이 나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에 의해 인류가 파괴된 후의 세상이다. 말도 소리도 글도 잃은 사람들 속에서 급박하게 변하는 전개는 한 편의 멋진 묵시록이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종말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다.

 

짧은 단편 <넘어감>은 놓친 부분이 많다. SF적 요소도 적다. 후기가 없었다면 기억에 남는 것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특사>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사람이 통역사로 등장한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 통역사가 높은 소득을 얻는다. 통역사를 지원한 사람들과의 대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조금씩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은 점점 규모가 커진다. 장편 속에 하나의 에피소드로 넣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작품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무수히 많은 외계 침공 영화 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마사의 책>은 신이 등장한다. 신과의 대화를 통해 인류의 구원을 이야기 한다. 작가의 유토피아 이야기라고 하는데 서구의 신이 가진 오류가 더 눈에 들어온다.

 

단편 소설의 뒤에 두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긍정적인 집착>과 <푸로르 스크리벤디>다. 전작은 그의 삶을 요약한 듯하다. 물론 그 속에는 그가 어떻게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는지가 핵심이다. 후작은 글쓰기에 대한 글이다. 많은 부분 공감한다. 길지 않고 핵심만 실려 있어 글쓰기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알려주기 좋다.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글 모두 군더더기 없는 글이라 조금 건조한 점도 있지만 작가의 삶을 조금은 엿본 듯한 즐거움을 준다. 한국에 출간된 유일한 단편집이란 부분에 관심이 가고, 더 많은 작품들이 번역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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