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픽션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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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을 동기로 쓴 소설이다. 이 비극적인 참사 사건만 놓고 이야기를 풀었다면 굉장히 무거운 소설이 되었을 텐데 여기에 황당한 설정을 과장되게 집어넣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과장된 설정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황 감독이란 존재에서 비롯한다. 그가 쓴 시나리오는 우디 앨런을 닮은 프로듀스와 후배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하고, 영화 출연만 오로지 기대하고 있던 동거하던 전직 배우이자 여자 친구 성숙과 헤어지기 싫어 사채업자에게 신장을 담보로 제공한다. 이때만 해도 이 사람 정말 재수가 없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이 비극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그가 담보를 제공한 사채업자는 한때 영화 엑스트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런 경험과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황 감독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 시나리오다. 사채업자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시대착오적이고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다. 이보다 더 문제는 제작비다. 2천만 원 빌린 돈에 이자까지 포함하여 2천4백만 원으로 영화를 찍어야 한다. 실제 이 돈은 이미 다 썼고 수중에는 한푼도 없다.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그에게 올 것은 장기 적출과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 대한 알고 싶지 않는 폭력이다. 영화가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고민과 고뇌와 불면의 밤을 거친 후 한 가지 대안을 찾는다. 바로 휴대폰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다.

 

촬영 장비를 마련했다고 끝이 아니다. 배우도 섭외해야 한다. 불쌍한 영화배우 지망생을 여러 명 면접보지만 그 누구 하나 마음에 더는 인물이 없다. 그러다 늘 시켜먹던 고수냉면 배달부가 놀라운 무술 실력을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삼룡이다. 이소룡, 성룡에 이어서 액션 스타가 될 것 같다고 치켜세우는 인물이다. 순진한 그는 할아버지 밑에서 무술을 익혔지만 자신을 숨긴 채 세상이 어지러우면 도울 생각만 하고 있다. 이 순진한 청년이 황 감독의 감언이설과 흉계에 의해 이전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액션 영화에 발을 담근다. 리얼 액션이라고 부르는 것을 넘어서 진짜 싸움의 현장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실제 조폭들의 싸움 현장에 투입되어 싸우는데 삼룡이는 이것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황 감독은 아주 어렵고 힘들게 얻은 영화의 무대다.

 

사채업자는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담기를 바라고, 어느 순간 사채업자의 연인이 된 성숙은 여주인공이 되고 싶다. 이때부터 영화 제작은 두 상전을 모신 아주 어려운 제작환경 아래에서 진행된다. 이 과정 속에 작가는 영화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영화 이야기를 녹여내면서 순진한 삼룡이를 타락의 현장 속으로 밀어넣는 황 감독을 좀 더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 황당한 설정 속에서 비현실적인 존재감을 뽐내면서 인간미를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삼룡이다. 그의 무술은 실전적이고 효율적이라 이전에 나온 액션 장면과 차별된다. 최고의 액션 배우가 한참 꼬인 황 감독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도 같이 꼬인 것이다. 이 꼬임을 절정은 바로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이다.

 

이야기는 용산 철거민 참사가 있은 지 5년이 지난 현재와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과거를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그리고 현재 황 감독이 운영하던 만화방도 철거의 운명 아래 놓인다. 이 두 사건은 동일하다. 하지만 사건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더 큰 생존이 걸려 있던 용산 철거민은 처절하게 투쟁하였고, 황 감독은 그냥 무력하기만 하다. 이 대비되는 모습은 절박함의 차이일까? 아니면 자본이 법의 이름으로 가하는 폭력에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일까? 작가는 이 둘을 비교하지 않고 과거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본의 편에 선 공권력이 불러온 비극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 아주 잘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들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도 같이 보여준다. 이런 현실에 순간적으로 분노하지만 곧 둔감해지는 나 자신이 너무 쉽게 보인다. 무섭다. 문제는 이것도 순간일 뿐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과거가 암울한 것은 그 비극의 결말을 알기 때문이다. 황당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웃기고 즐겁고 재미있지만 그 이면에 깔린 아픔과 비극과 고통은 조용히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현재 시점에서 삼룡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여 그때의 복수를 하지만 이것은 잠시 동안의 통쾌함 그 이상이 아니다. 세상은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니 더 열약해졌다. 이런 세상에 황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기록하는 것이다. 영화를 위해 촬영한 것들을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황당했던 액션 영화가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로 변한다. 이 부조화를 독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사라지고 자본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재미와 사회 문제를 잘 조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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