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남미 - 그 남자 그 여자의 진짜 여행기
한가옥.신종협 지음 / 지콜론북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이 조금 야릇하다. 제목만 본다면 야한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올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 검색을 하면 19금 표시가 없다. 젠장! 잠시 뭔가를 기대한 나의 잘못이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도 제목에 홀린 느낌이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을 들고 읽을 때 남들이 오해하지 않길 바랐던 일이 갑자기 생각난다. 표지에도 제목을 붉은 색으로 적어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착각하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이 두 남녀 저자의 글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19금과 확연히 다른데도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제목과 색깔이다.

 

남녀 두 명의 저자가 남미를 각자 여행한 후 그 경험을 솔직하게 적은 책이다. 남자 작가 신종협은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장기 배낭여행자로 남미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여성 작가 한가옥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3년 동안 호스텔을 운영했다. 이 둘이 남미를 여행하고 경험한 것은 정말 다르다.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 나라 사람들을 다양하게 제대로 경험한 한가옥에 비해 신종협은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해도 떠날 것을 늘 생각하는 배낭여행자다. 그래서 이 둘은 글은 다른 방식으로 적혀 있다. 어떻게 보면 한가옥의 이야기는 호스텔 경영 후기이자 실패담에 더 가깝다. 현지 생활인의 경험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야기의 첫 번째 문은 신종협이 연다. 그가 이 책에서 다룬 나라는 모두 여섯 나라다. 쿠바,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곳의 여행담은 이전까지 내가 들었던 남미 여행의 그것을 모두 능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것은 사기, 절도, 강도, 살인, 마약, 매춘, 가난, 동물보호 등이다. 치안이 잘 되어 있고, 크게 도둑들을 걱정하지 않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남미다. 우리가 흔히 카페에서 핸드폰이나 노트북 등을 올려놓고 화장실을 가는데 만약 남미라면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어떤 여행 팟캐스트나 책에서도 마약, 매춘 등과 같은 일은 잘 다루지 않는다. 이런 내용들이 19금이라는 제목을 불러온 것일까?

 

한가옥은 친구 존의 요청으로 보고타에서 호스텔을 운영하기 위해 스물일곱의 나이로 4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왔다. 모든 장기 여행자의 꿈이라는 호스텔 운영 말이다. 거의 이야기 후반까지 그녀가 만난 여행자와 콜롬비아 직원들과의 관계는 아주 좋았다. 호스텔도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잘 운영되었다. 한 번의 이사, 확장된 호스텔 등은 장밋빛 꿈을 꾸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몰랐거나 편법으로 처리한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서 큰돈을 지출하게 만든 것이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이고, 너무 믿은 탓이다. 이런 일 사이사이에 호스텔에서 생긴 에피소드와 그녀가 보고타에 살면서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일들은 들려준다. 재미있고, 문화 차이 때문에 놀랄 일들로 가득하다.

 

배낭여행자 신종협의 글은 행복함보다 현실의 어두운 면이 더 부각되어 있다. 그가 보고타를 공포에 깃든 도시라고 한 것도 이와 연관성이 있다. 길에서 칼을 든 강도를 만났거나 총소리가 들리고 감히 혼자서 밤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는 현실을 알려줄 때 그 나라의 역사 속에서 이유를 찾았다고 해도 이성과 감성은 따로 놀게 된다. 퓨마를 돌봐주는 자원봉사 현장에서 있었던 사고들은 보통의 배짱으로는 버티기 힘든 일이다. 몇 일만에 그곳을 떠난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이런 이야기는 읽으면서 남미 여행의 낭만과 모험에 대한 기대를 산산조각낸다. 현실을 보게 만든다.

 

재미난 것은 콜롬비아 보고타를 둘러싼 두 사람의 평가다. 신종협이 공포에 깃든 도시라고 했다면 한가옥은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했다. 이 차이는 머문 지역과 하는 일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늦은 밤에 홀로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강조하는 부분이다. 속된 말로 객기를 부리는 것이 얼마나 멍청하고 위험한 일인지 알려주는 에피소드도 하나씩 있다. 이런 글을 읽을 때면 남미 여행에 대한 환상과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계속 읽는 것은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계속해서 보여주는 애정 때문이다. 행복했다는 표현 때문이다. 어쩌면 아직도 마음 한 곳에 남아 있는 도전과 모험 정신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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