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하루 - 하나님께서 출타 중이셨던 어떤 하루의 기록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제 많은 한국 교회에 돌직구를 던졌다는 작가에 대한 소개가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한국 교회에서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알고 있던 사랑의 교회 故 옥한흠 목사의 장남이란 사실은 덤이다. 물론 지금은 서초동 사랑의 교회가 온갖 비리와 부패로 인한 소문으로 방송에 나올 정도가 되었다. 교회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그 훌륭한 목사님이 계셨던 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변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한국 교회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듣고 다른 대형 교회들이 어떤 단계를 거치면서 수많은 문제를 양산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훌륭한 신자들이 많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신자들의 반응을 보면 나의 믿음에 금이 간다.

 

시카고 한인 교회 목사 장세기의 하루를 다루고 있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감명 받은 작가가 자신이 잘 아는 교회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 제목처럼 낯선 하루다. ‘힘든 하루다. 힘들다. 정말 힘든 하루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오전 4시 50분부터 시작하여 오후 7시 5분까지 다루는데 참으로 많은 일이 벌어진다. 나쁜 일은 몰려온다는 말처럼. 그 힘든 하루의 최고점을 찍는 것은 딸 은정의 신앙 포기 선언이다. 이것만도 놀라운 일인데 그 이전에 다른 일들이 그를 최고로 힘들게 만든다. 그가 이렇게 힘든 것은 회의와 의심과 갈등을 내적으로 끝없이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대별로 나눠 이야기가 진행된다. 4시 50분은 새벽 기도를 위해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신도는 그 교회의 최정예 신도라고 한다. 회사 동료가 아내를 따라 한동안 이 예배를 힘들게 따라다녔다고 했는데 출장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이 시간은 야간형 인간인 목사를 힘들게 한다. 그의 아내가 깨워주지 않으면 늦을 뻔했다. 신도 300명의 한인교회를 운영하는 그에게 이 신도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 새벽 기도는 그에게 오래전 잊고 있던 한 신도의 기도로 혼란스럽게 변한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하는 신도 때문이다. 그의 강렬한 기도는 그 바람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최소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이것을 없애고자 노력했다. 이것이 힘들고 낯선 하루를 보내는 장 목사의 일정 시작을 알린다.

 

솔직히 교회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 주변에서 들었던 것과 책에서 읽은 것들이 전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한인 교회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고, 폐쇄적이란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간다고 절실하게 믿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 교회 최고의 기부자인 김신수의 아버지가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불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 마지막까지 개종하길 바라는 부분은 중세 유럽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철저하게 십일조를 내고 있는 그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그들에게 신앙은 직선적이고 배타적이면서 명확한 것이다. 박주명이 반복되는 최면성 말로 자신의 어머니가 임종 전에 ‘하나님’을 외친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종교가 지닌 가장 비이성적이고 편협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장세기 목사도 모태 신앙이지만 중간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한 친구가 그에게 해준 말은 아주 인상적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없다는 증거를 찾아 모으는 것이다. 세상에 하나님이 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 사고를 수없이 찾아낸다. 이 의심은 미국에서 힘든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경험한 기적에 의해 사라진다. 그는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된다. 자신에게 찾아온 신의 목소리가 그를 목회자로 인도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적은 단 한 번 뿐이었다. 이후 그의 삶은 어느 목사와 다름없는 평범한 교회 운영자다. 대형 교회를 성장시키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되지 않는다. 잘 운영되는 교회의 설교나 다른 것을 벤치마킹해서 그나마 신도수를 유지한다. 이제 교회가 비즈니스로 변했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다.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외치는 신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삶은 철저하게 인간적이다.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자신에게 찾는다.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우상을 숭배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늘 이 부분을 신자와 대화를 나누면 신앙이란 벽에 부딪히는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장 목사도 기적이란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면 그의 딸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이 목사가 아닌 아버지란 사실은 하나님의 존재와 상관없이 현실의 우리는 많은 문제와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란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한 유명 교회 목사와 그 교회의 문제를 본 후 목사직을 그만둔 한 목사가 ‘말이 되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겠다고 한 말은 한국 교회의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이성적인 목사가 현실의 교회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하루 속에 압축해서 넣었다. 이성과 욕망, 신앙과 의심 사이에서 그는 흔들린다. 이 흔들림이 나로 하여금 그의 믿음에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축복과 찬양 일색으로 흘러가는 교회의 모습은 어느 순간 이성이 마비된다. 그래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 기적을 말한다. 딸 은정이 보여준 반응에 그 어떤 이성적인 대응도 하지 못한다. 무력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것 뿐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묻고 고민하고 의심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80년대 종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느낌이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장 목사가 좀더 자신을 내려놓고 이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경험한 기적을, 하나님을 사랑을 신도들에게 나누어주길 바란다. 힘들고 정말 힘든 일이란 것을 알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