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 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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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유쾌하다. 73살 노인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말들이 읽으면서 잔잔히 웃게 만든다. 노인 콤비로는 최강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멋진 호흡을 보여준다. 티격태격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우정이 쌓여 있다. 이들이 보여준 우정의 연원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평범한 구성이지만 이들의 과거가 사이사이에 흘러나와 진한 감동을 준다. 작가의 간결한 문장은 가독성을 높이고,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많지 않지만 재미난 이야기들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작가의 말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마사의 본명은 구니마사다. 겐의 본명은 겐지로다. 이 둘의 이름을 줄여서 마사&겐이다. 이들은 칠십 년 동안 친구였다. 도쿄 스미다 구에 위치한 가상의 마을 Y를 배경으로 은행원이었다가 정년퇴직한 마사와 전통비녀 직인인 겐은 각각의 이유로 혼자 살고 있다. 마사의 아내는 그의 나이 칠십에 나가 큰딸의 집에서 살고, 겐의 아내는 죽었다. 마사는 딸 둘이 있지만 겐은 없다. 결혼은 겐이 먼저 했는데 그 과정이 평범하지 않다. 마사의 경우는 선을 보고 바로 결혼했다. 마사가 본 것은 아내 기요코가 줄 안정감이었다. 겐이 선택한 것이 사랑이었던 것에 비하면 밋밋하지만 그 시절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이다. 이것은 이 둘의 성격과 관계있다.

 

마사가 은행원으로 돈을 벌면서 가정에 소홀했다면 겐은 아내가 죽기 전까지 충실했다. 둘이 홀로 사는 현재 마사는 요통으로 고생하면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겐은 자신의 일을 하면서 제자까지 두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 건실한 은행원의 노후 생활을 그리면서 마사를 본다면 대충 맞을 것이고, 늙은 바람둥이를 예상하면 겐에게 더 어울린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겐일 것 같지만 실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마사다. 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가 마주한 몇 가지 상황들이 할배 콤비의 활약으로 해결된다. 그 상황들 대부분은 마사와 겐의 제자 뎃페 때문에 일어난다.

 

이 둘의 관계를 가장 함축적이면서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공습으로 도쿄가 불타고 겐의 어머니와 동생이 죽은 후에 마사가 나타났을 때다. 그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줬고, 달려와 손을 맞잡았고, 얼굴 가득 빛나는 웃음이 번졌던 그 장면이다. 그 웃음을 마사는 평생 잊지 못한다. 그래서 겐이 아내 하나에와의 결혼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무리한 연극을 하기까지 했다. 이후 이들의 결혼 생활은 잔싸움이 많았다. 반면 마사의 결혼은 조용했다. 산업발전기에 일에 지친 아버지가 흔히 보여주었던 그 모습을 그대로 했었다. 아내와 딸들의 마음이나 행동에는 관심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고. 어떻게 보면 행복하지 않은 노후 같지만 이 둘은 아주 행복해 보인다. 아니 점점 행복해진다. 마사는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을 조금씩 바꾸고, 겐은 멋진 제자와 친구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70이 넘은 노인이다 보니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대화 중 나온 겐지로가 한 사후에 대한 표현은 최근에 본 가장 멋진 문장이다.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은 사후 세계 같은 데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기억 속이 아닐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들도 사부도 집사람도, 다들 내 안에 들어왔어.” 이 보다 더 멋진 죽은 자를 기리는 말이 있을까. 진한 여운을 남기고 나의 기속으로 들어온 많은 사람들을 잠시 떠올려본다. 소설은 이 기억의 일부를 풀어놓고, 현실의 문제와 부딪히게 하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열렬하게 사랑하는 커플인 뎃페와 마미를 보여주면서 삶의 한 장면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한때 미친 듯이 붙어 다녔던 친구와 결혼 등으로 멀어져 가끔 연락만 하는 사이가 된 현재를 보면서 나의 노후도 이들처럼 멋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부러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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