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죽음
리사 오도넬 지음, 김지현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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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고 가슴 아프고 훈훈한 이야기다. 섬뜩한 것은 아이들의 부모가 죽은 후 자신의 뜰에 묻는 내용 때문이고, 가슴이 아픈 것은 이 아이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훈훈한 것은 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레니의 존재 때문이다. 이 세 명이 각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서로 다른 문체로 쓰여 있다. 읽다가 잠시 누구지 하는 의문이 생기면 문장을 조금만 유심히 읽어보면 누군지 알 수 있다. 원문이 어떤지 모르지만 번역가의 노력도 한몫한 것 같다. 이야기는 겨울에서 다음 겨울까지 이어지는데 이 시간동안에 그들이 겪은 감정과 심리를 잘 포착해내었다.

 

스코틀랜드. 잘 모른다. 최근에 읽은 유럽소설에서 술에 찌든 부모에 의해 망가진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복지수당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그들에게 자식은 그냥 딸린 군식구 일뿐이다. 수당은 자신들의 술값으로 혹은 약값으로 다 사라지고 음식은 집에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 펼쳐진다. 거기에 어린 딸에게 가해지는 성폭행까지. 우리의 일반적인 의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참혹하다. 비단 이것이 과연 유럽의 몇몇 나라만의 문제일까 하고 질문을 던지면 한국도 여기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단지 복지수당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떤 순간은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그 돈을 약탈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현실이 생기기도 한다.

 

아주 열악하고 참혹한 환경이지만 마니와 넬리는 부모가 죽은 후에도 보호가정으로 가길 꺼려한다. 보호자가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복지사가 와서 이 두 아이를 각각 다른 집안으로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부모를 뜰에 묻는 것이다. 하지만 겨울을 흙바닥은 단단하다. 그들의 힘으로 깊게 파지 못한다. 겨우 한 명을 묻을 정도다. 시체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는 집에 진동한다. 표백제로 닦아내지만 쉽게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옆집에서 냄새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경찰이 온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불안감은 이 남매의 일상에 깊게 깔려 있다. 그리고 수시로 나타난다.

 

이들의 옆에는 게이 노인 레니가 살고 있다. 공원에서 한 소년에게 성매매를 하다가 경찰에 잡힌다. 이것 때문에 동네에 아주 나쁜 소문이 난다. 알고 보면 이 노인 불쌍하다. 보통 사람과 다른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을 당하고 무시당한다. 그런데 레니는 어느 순간 이 소녀의 가장 좋은 울타리가 된다. 냄새 나는 집을 떠나 잠시나마 가족의 훈기를 느끼게 만든다. 같이 식사하고, 따뜻한 마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 마니가 처음에는 자신들의 현실을 숨길 목적으로 그를 이용했다면 어느 순간 그에게 감동을 받게 된다. 불안과 의심은 여전하다. 동생 넬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따뜻하고 서로를 위해주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부모가 사라졌다. 돈이 없다. 수당을 수령할 사람이 없으니 돈이 생기지 않는다. 거기다 아빠가 마약 상인의 돈까지 떼먹었다. 월세를 낼 돈도, 음식을 살 돈도 없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면서 마약을 파는 믹에게서 알바를 뛴다. 둘이 섹스도 한다. 이 돈으로 겨우 현상을 유지하지만 월세는 어림도 없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친구들 문제가 생기고, 무시하던 남자가 어느 날 사랑으로 변해 다가온다. 갑자기 외할아버지도 나타난다. 자신이 버린 딸을 찾아서. 그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넬리에게 더 신경을 쓴다. 읽는 순간 그에게 사실을 말하고 새로운 가족을 찾아가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보면 옆에 레니가 보인다. 이 둘은 이 남매를 두고 서로 견제한다.

 

부모가 사라진 핑계는 터키 여행이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믹이 여권까지 찾아낸다. 더 이상 변명이 통하지 않는 상황인데 레니를 제외한 누구도 그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잠시 의문을 품지만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이 자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는 모습이라 조금 씁쓸하다. 호기심은 있지만 깊은 관심은 없는 사회, 어쩌면 나도 그런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읽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도 각박해지고 참혹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늙은 노인이 방을 구하기 얼마나 힘든지 알려줄 때 우리사회의 시선이 어디를 보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늘 안타깝다.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이 자매가 공부에 뛰어나다는 것이다. 넬리는 바이올린까지 잘 켠다. 인생이 잘못 흐리지 않으면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더 넓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흔든다. 마약, 섹스, 폭력, 부모의 시체 등등. 그리고 부모의 시체 일부분을 물고 나타나는 제니의 개 바비가 있다. 언제 이것이 밝혀질지 모른다. 여기에 이 자매는 서로 착각하고 오해한다. 아빠 진을 죽인 것이 서로라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그들의 하루는 계속 이어진다. 미스터리도 계속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외할아버지 집에서 벌어진 상황이 이해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잘 짜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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