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무지개
최인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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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묵직한 우리 소설 한 권을 읽었다. 22세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은 바로 현실의 문제들이다. 단지 그 문제를 조금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뿐이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많은 부분에서 이런 미래가 펼쳐질 것이란 예상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암울한 미래를 다룬 디스토피아 sf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sf적인 상상력은 기존 장르 소설의 그것을 결코 넘지 못한다. 지금보다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기술 발전이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SS 울트라마트 계산직원 지니, 지연의 일상을 단단하면서 견고한 문체로 보여준다. 기계적인 삶을 문장의 리듬에 맞춰 보여주는 도입부는 이 소설 최고의 대목이다. 반복되는 용어와 이어지는 작업들을 이렇게 멋지게 풀어낸 글을 오랜만에 만났다. 덕분에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조금은 더 분명하게 보였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의 불안정한 삶이 소모적인 일회성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 시작은 같은 회사의 상사인 브라운이다. 그가 보여준 카드의 위력은 그녀를 사로잡고, 하나의 반복적인 규칙이 된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난다. 제임스, 재선이다. 그도 역시 계약직 택배기사다.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 하남 출장소 소장 백스터가 등장하여 재선이 일하는 곳의 풍경을 보여준다. 회사 작업카드를 불법 사용한 외국 노동자를 쫓아내는 장면에서 이 세계의 단면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들이다. 계약직 중에서는 일회성 계약직도 있다. 멜라니, 안영희가 바로 그렇다. 이 둘이 함께 낡은 트럭을 타고 러시아까지 물건을 배송해야 한다. 그들은 떠났고, 회사의 말단 관리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나쁜 기억이 있다, 그것은 멕시코에서 있었던 일이다. 회장 한창수의 짐꾼으로 갔다가 생긴 일이다.

 

유기홍 박사와 한창수 회장의 만남이 나온다. 이 둘은 한 회장의 간 이식 때문에 하나로 묶였다. 그런데 이 간 이식이 불법으로 멕시코 소년 아담의 간을 옮긴 것이다. 몇 년 동안 문제없이 잘 살았는데 갑자기 이상이 생겼다. 건강검진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술집에 멕시코에 함께 간 사람들이 모인다. 이 일을 주선한 인물은 강태기 사장이다. 백스터와 더스틴은 단순한 짐꾼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아이리스다. 그녀의 실종은 이 소설의 구성을 미스터리 물로 만드는 큰 역할을 한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남자 친구의 존재가 이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멜라니, 안영희, 마릴린, 프랭크, 나오미는 모두 같은 인물이다. 안영희로 태어나서 마릴린, 나오미, 프랭크, 멜라니 등의 삶을 살아왔다. 이 이름들은 한때 그녀의 삶을 대변한다. 배고프고 굶던 시절 도움인 줄 알고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사람들이다. 제리도, 에스더도. 제리는 열한 살 그녀를 매춘으로 몰았고, 에스더는 근본주의 기독교 선교단체의 군인으로 자라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에스더가 아이리스다. 그녀는 나오미와 한때 연인처럼 보낸 적이 있다. 에스더는 다른 이유로 단체에서 쫓겨났고, 먼 훗날 다른 이름은 둘은 다시 만난다. 이 둘은 강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아이리스가 죽었을 때 프랭크는 그것을 느낀다.

 

각 등장인물이 엮이고 섞이면서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든다. 지연과 재선은 통제된 세상을 벗어나서 살고자 했지만 중일전쟁으로 자신들만의 터전에 쫓겨났고, 지연은 달아나 에너지돔이란 곳에서 산다. 재선은 그녀를 늘 찾고 있고, 지금은 멜라니와 함께 배송을 한다. 하루살이 같은 삶을 유지하는 노동자의 일상을 그가 보여준다. 한창수 회장과 함께 간 그의 부하 직원들이 멕시코에서 겪은 경험들은 솔직히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중요한 사건에 연결된 부분을 제외하면 불필요하게 분량이 많다. 이렇게 각자의 삶이 뒤섞인다. 시간도 뒤섞인다. 이 장치가 아이리스의 실종과 그녀의 애인이 누굴까 하는 의문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이 거대한 디스토피아 미래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이자 장치일 뿐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읽기는 조금 무겁다. 보통의 sf소설을 생각하고 읽으면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마주한다. 노작가가 바라본 한국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이 설정이 하나의 가정이라고 해도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과 미래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 암울한 미래 속에서도 사랑은 존재한다. 이 사랑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결과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죽이고, 누군가는 엄청난 일로 발전한다. 발전과 변화의 가능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어쩌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재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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