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의 탄생 - 2014 제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수상작
조완선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균과 박지원. 사실 이 둘을 엮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허균은 <홍길동전> 때문에 알았고,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에서 단순히 <홍길동전>의 저자가 아닌 개혁가 허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 새로운 모습은 낯설지만 흥미로웠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로 그 명성을 떨쳤지만 <허생전>이나 <양반전> 덕분에 실제보다 조금 낮게 본 것도 있다. <열하일기>가 새롭게 해석되고 번역되면서 덩달아 연암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조선 중기 이후 최고의 문장가이자 사상가인 두 사람을 엮어 소설을 쓴 것은 아주 재미있는 시도다. 비록 그 시도가 아쉬움을 더 강하게 남겨놓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소설은 고지식할 정도로 허균과 박지원이 번갈아서 등장한다. 일대일 방식이다. 필요에 따라 이 규칙을 깰 수도 있을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이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보다 좀더 유연하게 풀어내면서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연암에서 시작하여 교산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연암으로 끝을 맺는데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약간 처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긴장감을 조성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교차 편집의 너무 빤한 방식으로 풀어내다보니 이 둘의 조합이 억지스럽게 이어지는 듯한 기분도 살짝 든다. 그리고 이 둘의 시간과 공간을 비슷하게 풀어낸 것은 좋은데 사건과 인물들 사이의 밀도감이 떨어진다.

 

연암이 <허생전>을 쓰기 전 금서인 허균의 서책에 대한 정보를 책쾌 조열에서 들으면서 시작한다.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던 그때 허균의 서책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책쾌 마종삼이 조열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그는 조열이 연암에게 교산의 책을 전할 것이란 소식을 이미 들었다. 이 당시는 금서를 소지한 것만으로 사형에 처해지던 시기다. 하지만 허균의 금서 <교산기행>은 연암의 마음을 뒤흔든 상태다. 홍길동의 흔적을 뒤쫓는 과정을 담은 <교산기행>의 행방과 조열 살인을 둘러싼 비밀을 이 두 사람은 조사하고 파헤치면서 따라간다.

 

허균은 홍길동이 문경에서 참수되었다는 문서를 이식에게 받은 후 꿈자리가 뒤숭숭해진다. 그가 꿈꾸던 호민의 원형을 홍길동과 그 무리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서의 내용에 의문이 생긴다. 큰 도적인 홍길동이 사로잡혔다면 상부에 보고하고 시체를 전시해야 하는데 그 흔적이 없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길을 떠난다. 첫 여행지는 바로 홍길동의 생가가 있던 장성이다. 이곳에서 그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희한한 소문과 모습도 본다. 아직도 홍길동의 영향과 전설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봉추거사는 앞으로 이어질 허균의 모험과 조사에 큰 역할을 한다.

 

허균이 <홍길동전>을 쓰기 전 홍길동의 역사를 발로 뒤좇아 갔다면 연암은 이 허균의 흔적을 <교산기행>의 필사본 몇 장을 통해 따라간다. 이 둘의 행적은 시대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다. 장성에서도 문경에서도 사건의 중심 언저리에 둘은 머문다. 시간적으로 현재인 연암은 살인사건이 이어지고, 과거 속 허균은 홍길동 전설을 둘러싼 기묘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둘의 모습이 너무 비슷하게 그려지면서 개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다. 허균이 위험에 빠졌을 때 보여주는 모습은 우연과 인연 그 이상이 아니다. 연암도 역시 살인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긴장감을 조성하고 호기심을 자극할 소재들이 살짝 겉도는 느낌이다.

 

작가는 허균의 호민론을 중심에 놓고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그들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 사건들이나 두 주인공이 이상하게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급박함도 긴장감도 고조되지 않다보니 몰입하기보다 밖에서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 시대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가상의 책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면 둘 중 한 명 정도는 강한 카리스마를 품어내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홍길동의 율도국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처음이다. 등장인물의 개성도, 잘 짠 구성의 정밀함도, 엄청난 미스터리도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역사의 두 인물을 교차하여 이야기를 잘 풀어내었다는 정도만 다가올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