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처럼 서러워서 작은숲 에세이 4
김성동 지음 / 작은숲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순히 제목만 보면 불교에 관련된 에세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사 에세이란 작은 글이 보인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에 대한 글이란 설명이 책 뒤에 나온다. 그렇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의 역사를 기존 역사 학회의 시선과 다른 관점으로 풀어낸 역사 이야기다. 현재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는 수많은 역사를 새롭게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맛보게 한다. 물론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좀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도 많이 있지만 너무 일부 학설을 과하게 표현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역사의 이면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부분은 아주 흥미로웠다.

 

내용은 분명히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가 순우리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서 나의 부족한 우리말 실력이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몇몇 단어들은 충분히 알거나 짐작할 수 있지만 어떤 단어는 너무 낯설어서 사전 검색을 해야 했다. 저자의 의도적인 표현이 나처럼 일반 독자에게 오히려 힘든 책읽기로 이어진 것이다. 어쩌면 자신만의 고집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장에서 충분히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늘어지면서 우리글의 매력을 갉아먹는 부분도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무지한 순우리말에 대한 열등감을 내가 이전에 얕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조금 트집 잡는 것일 수도 있다.

 

첫 이야기로 선택한 것은 해방 후 한국의 가장 중요하고 큰 문제를 그대로 나타내준다. 독립운동자의 후손들이 배곯고 힘든 생활로 삶을 겨우 유지하는 반면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들의 엄청난 부를 현재까지도 그대로 누리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순간 잘못된 역사의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우리 후손들에게 혹은 우리 자신들에게 나라를 위해 어떤 희생도 좋은 선택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친일파의 후손들이 정권을 잡고, 떵떵거리며 살면서 국가를 위한 희생을 민초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 모순된 상황을 언론을 통해 왜곡하고, 사실을 숨기면서 호도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글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목차를 읽으면 기존에 알고 있던 많이 나온다. 대부분 역사시간에 결코 좋은 평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다. 묘청 정도가 신채호 선생에 의해 다른 평가를 얻었을 뿐이다. 신돈에 대한 평가가 최근에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출간도서의 이름을 통해 본 적이 있지만 미륵 사상과 연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신라 말기와 고려 중후기의 엄청난 부패와 부의 불균형에 대한 설명은 왜 그 시대에 궁예와 신돈이라는 인물이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도 그렇지만 이들만으로 세상이 바뀌기는 무리다.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고, 힘을 합쳐야 하는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민중들이 오히려 왜곡된 정보와 편가르기에 당해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 당시는 이들을 뒤엎을 무력이 부족했다.

 

전봉준에 가려진 김개남 이야기는 동학운동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고, 만약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동학 운동이 실패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김백선 장군처럼 항일투쟁운동을 펼쳤지만 계급의식에 매몰된 무리에 의해 잊혀지고 왜곡된 인물도 등장한다. 저자가 이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기위해 인용한 글들을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할 때 기록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지배계급의 변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의 기원을 항일투쟁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이 연속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재해석에 많은 동의를 하는 반면 고대사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그 시대의 국경과 지역을 둘러싼 주장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백제의 후손을 화교와 연결하는 부분이나 <환단고기>를 그대로 믿는 것은 무리가 있거나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 가지 용어나 표현이나 상황만 가지고 확대해석하기에는 아직 자료가 부족하다. 물론 왜곡된 역사나 친일실증사학의 현재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좀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고증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들을 가끔 읽으면 기분은 좋지만 너무 허술한 이론과 허황된 주장이 많아 그 사실을 그대로 믿기 힘들다. 또 하나 더 불만을 말하면 한자를 진서라고 표현한 것이다. 주자학자들이 한글을 낮춰보기 위해 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순우리글을 이렇게 많이 쓴 에세이에 쓸 단어가 아닌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