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집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란 이상한 제목으로 먼저 나에게 다가왔던 작가의 최근 소설이다. 열다섯 자폐증 소년을 주인공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와 심리 묘사로 나를 사로잡은 적이 있는 작가다. 그런데 이번 소설 제목이 <빨간 집>이다. 제목만 보면 뭔가 섬뜩한 느낌도, 야한 느낌도 든다. 표지를 보면 다르지만. 마크 해던이란 작가 이름을 보면 전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감정이 충돌하면서 소개글을 읽으니 가족이란 단어가 불쑥 떠오른다. 많은 소설에서 중요 소재로 등장하여 다양한 갈래로 갈라졌던 그 가족 말이다. 그리고 수많은 호평들이 이 가족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왔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두 가족이 함께 집을 빌려 일주일 동안 함께 산다. 누나인 안젤라 가족과 동생 리처드 가족, 이렇게 8명이 웨일스 국경 근처 헤이온와이 마을 옆 별장으로 떠난다. 안젤라 가족은 남편 도미니크와 큰 아들 알렉스, 딸 데이지, 막내아들 벤지 이렇게 5명. 리처드 가족은 아내 루이자와 의붓딸 멜리사 3명이다. 같은 동네에 살지 않는 이 두 가족은 각각 다른 교통수단으로 별장으로 향한다. 리처드 가족은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고 가고, 안젤라 가족은 기차를 타고 움직인다. 이 별장을 빌린 것은 동생 리처드다. 서로 왕래도 많지 않고 가족 내부의 문제도 있는 이들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행에서 자신들 속에 잠재되어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밖으로 쏟아낸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가족이란 화목해야하고 서로 감싸주고 도와주는 것이란 이미지에 중독되어 있다. 서로 갈등하고 싸우다가도 끝은 훈훈하게 가족애로 마무리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런 가족의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우리를 알게 모르게 세뇌시켜왔다. 그래서 이런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들을 비난하기 바쁘다. 그들이 가진 문제나 어려움은 제대로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말이다. 이때 가족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그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굳건하게 믿고 있던 가족 이데올로기가 산산조각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방식의 가족 이야기에서 벗어나 있다.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된 안젤라 부부나 재혼한 리처드 부부 모두 문제를 안고 있다. 각각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 자란 두 사람이 사는데 갈등이 없다면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안젤라는 사산된 아기에 대한 환영에 사로잡혀 있고,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는 남편 도미니크는 불륜을 저지른다. 반면에 부유한 리처드와 재혼한 루이자의 재혼 전 삶은 굉장히 자기파괴적이었다. 리처드는 의료 사고 문제로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안젤라와 리처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병수발 등으로 오해와 갈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어른들의 문제들이 하나의 축으로 흘러간다면 네 명의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문제를 안고 있다. 알렉스는 운동 중독 증상이 있으면서 섹시한 멜리사에게 끌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변한 데이지는 종교로 가족들과 갈등을 빚고 친구 문제도 가지고 있다. 벤지는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홀로 재밌게 놀 뿐인 아이다. 멜리사는 제멋대로 살아가면서 다른 아이들을 상처 입히는 것을 즐긴다. 이렇게 적고 보면 그냥 평범하거나 조금 나쁜 학생들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불안하고 불안정하고 걱정 많은 청소년들이다. 이 여행은 바로 이것을 밖으로 표출하여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바로 화려한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과 전개다.

 

집을 떠났다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지 않는다. 이 여행은 그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여행은 서로 잘 몰랐던 가족 사이의 유대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안젤라 남매 사이에 오해는 이해로 가는 과정 속에 놓여 있고, 딸 데이지와 엄마 사이는 소통 부재가 여전히 존재한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 애정이 사라진지 오래되었지만 서로를 탓할 뿐이다. 이것이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낯설다. 10대들의 노골적인 성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조금 다른 문화 차이를 느낀다. 그리고 영국 등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SNS의 문제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가족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어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열린 결말은 현실의 충실한 반영이다. 작가의 의지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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