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아시아 문학선 10
쿠쉬완트 싱 지음, 황보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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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설이다. 두 명의 주요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만 이들이 중요 주인공은 아니다.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600년 긴 역사의 무대였던 델리다. 인도의 단순한 한 도시 정도로만 생각했던 그곳이 이 소설에서는 장대한 이야기의 배경이자 수많은 인물들의 삶이 교차하는 곳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는 화자인 나와 그의 정부이자 창녀이자 어지자지인 바그마티가 들려주고, 과거의 이야기는 델리를 무대로 활약하고 생활했던 다양한 인물들이 화자로 등장하여 600년 역사 속 델리의 변천사를 알려준다. 실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이 델리의 변천사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알면 더 좋을 것 같다. 하나는 시크교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인이다. 시크교는 작가의 종교이자 이 소설 속에서 역사의 변화를 일으키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고, 인도인은 삶의 모습이 우리와 너무 다른 탓이다.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 등이 서로 엮인 채 살아가는 인도에서 이들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까지 시크교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딱 하나였다. 성이 모두 싱이라는 것이다. 검색으로 몇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인도 역사에서 이들의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델리라는 이름보다 뉴델리로 더 각인된 인도. 그중 델리의 과거를 되짚어 장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눈은 다양한 계급의 인물들을 통해 풀려나온다. 정복자에서 시작하여 불가촉천민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기록은 한 시대에 뒤섞이지 않고 각각 다른 시대를 자신들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보는 위치가 다르면서 생기는 시각 차이는 한 도시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를 달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힌두스탄 황제의 칸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술탄이 왔을 때 보여준 행동은 이것의 정점이다. 확실한 무력의 우위를 이용한 학살과 파괴와 약탈은 그 원인보다 그 현상으로 더 많이 알려진다. 역사가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현재는 바그마티란 제목으로 거의 구성되어 있는데 분량이 제각각이다. 처음 나와 바그마티의 관계를 알려주고 보여줄 때를 제외하면 이들의 비중은 점점 더 줄어든다. 이것은 이 둘의 성적 관계와 나의 활동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신문에 글을 쓰고, 여행 가이드 역할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서양여자들과의 섹스를 즐겼던 그의 삶이 노쇠화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을 때 바그마티가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때 이 둘의 묘한 관계가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이 둘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어 아쉬웠다.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델리의 현재가 인도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록 이 소설 속에 델리의 장대한 역사를 녹여내었다고 하여도.

 

최근에 인도 여행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다. 신비와 환상으로 뒤덮여 있던 그곳이 다른 곳을 여행하면서 만난 인도인들과 뉴스를 통해 들은 몇몇 사건들로 인해 그 적나라한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도 파편적인 정보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 그 정보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고,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의 외설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긴 델리의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있다. 만약 이것이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이자 연출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인도와 관련된 소설을 읽을 때면 늘 혼란스럽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모습이 보이다가도 종교 갈등이나 암살 등으로 폭력 사태가 일어난다. 나디르 샤의 암살 시도 때문에 벌어진 대학살이나 최근 인디라 간디의 암살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세포이 전쟁 당시 각각 다른 입장에 처한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그 현장을 풀어낼 때 역사는 결코 몇 줄의 설명으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델리 속 각각의 등장인물은 델리의 속살과 이면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이 책 출간 후 20년 이상이 지났는데 과연 얼마나 변했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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