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생각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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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이이화 선생의 책을 읽었다. 개인적 취향에 더 맞는 역사가가 이덕일이라면 이이화는 개인적인 몇 가지 때문에 혹은 전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에 왠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이덕일의 책이라고 무조건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하나의 논쟁이나 인물을 집중적으로 풀어낸 역사를 좋아한다. 물론 이덕일의 역사 서술 중 몇 가지는 호불호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역사 서적도 미스터리 소설처럼 재미있게 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역사가이기에 그 이름을 가슴 한 곳에 새겨두었다.

 

왜 이덕일을 앞에서 꺼냈느냐 하면 이이화가 한 인물, 허균을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서 이덕일이라면 훨씬 자극적이고 흥미롭게 썼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이 전두환의 신군부가 득세하던 1980년임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 글쓰기와 지금은 다를 것이고, 시대의 분위기도 완전히 다르다. 비록 허균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글들이 추가되면서 더 풍성해졌다고 해도 구성에서 큰 변화가 없고, 사료 우선에 진중한 글을 쓰는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면 쉽게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글 속에서 이전 연구자들의 글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허균의 모습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그것은 바로 요즘 허균에 대한 생각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많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장은 허균이 살던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풍경을 보여주고, 2장은 천재 이단아였던 허균의 생애를 요약한다. 다음 장들은 각각 허균이 생각하는 정치, 학문, 문학에 대해 그의 글들을 분석하고 재해석한다. 이때 만나게 되는 그의 행동과 사상은 끊임없이 민중을 생각하는 모습이다. 저자는 허균이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 사이의 괴리와 모순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는 선구적인 사상가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허균을 영웅으로 그려내기보다 ‘역사 속에서 부침한 양식 있는 한 인물’로 서술하면서 오늘날의 우리가 돌아보고 비춰보기를 원한다.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허균은 분명히 시대적 한계가 있다. 근대 민주주의가 바탕이 되는 상향식 민주주의를 아직 그는 몰랐다. 그것은 다른 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성을 위한다는 점에서 그의 민본주의는 뜻이 깊다. 어리고 잘 모를 때 이 한계를 용납하지 못한 적이 있다. 역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고, 발전해가는 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홍길동전>을 두고 수많은 해석이 나오고 한계성을 지적하는 글이 나오는 것도 단순히 해석상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자료에 집착하다보니 그런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 한 인물이 얼마나 새롭게 해석되는지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책의 대상인 허균도 바로 그런 인물이다. 동시에 광해군도.

 

저자는 각 장에서 허균의 생각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풀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글 전문을 번역해서 실었다. 앞에서 인용했던 글들이 저자의 해석으로 한 번 인식되고, 전문 속에서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되면서 저자의 해석이 하나씩 각인된다. 이 두 번의 강조는 허균에 대해 알고자 하는 바를 적절하게 인식시켜준다. 그리고 조선에 처음 서학을 가져왔고, 자신이 불교도임을 알려주는 글을 읽을 때면 약간 낯설지만 오히려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책 속에 나온 허균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의 모습을 산산조각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와 그 시대에 대해 더 많는 연구가 더 깊이 있게 진행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최근 광해군 열풍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가 정치에서 시대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하지만 문학에서 보여준 문장에 대한 글은 아주 현대적이었다. 화려한 수사보다 뜻을 쉽게 알 수 있게 일상 언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뜻이 우선이란 말이다. 요즘 글들을 보면 화려한 수사나 어려운 단어를 끌어다가 치장하는 문장들이 많은데 이 부분은 한 번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 자신도 가능한 간결하고 분명하게 문장을 만들려고 하는데 아직 내공이 부족하여 길어지거나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가끔 그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허균은 정치적으로는 민본주의자요, 학문적으로는 대단히 포용적이며 문학적으로는 분명히 그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당대의 권위에 대한 도전자고, 새로운 시대를 읽는 눈이 누구보다 탁월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한계를 절실히 깨달았지만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생겼다. 앞으로 배우고 익혀야 할 수많은 것들이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구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 내용은 충분히 그것을 지울 정도다. 앞으로 허균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점점 더 조선시대 학자들에 대한 공부할 거리가 늘어난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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