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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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었다.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반 정도 읽고, 나머지를 집에 와서 바로 다 읽었다. 그것이 며칠 전이다. 바로 서평을 적으려고 했는데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가독성도 좋고 어느 정도 재미도 있는데 왠지 어디에서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것이 착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의 형식이 낯설어 그런 느낌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에서 살아남은 아이가 다른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 말이다. 아니면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몇 가지 설정 등이 낯익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부터 나의 기억력은 아주 부정확해지기 시작했으니까.

 

폭우로 60명이 죽고 32명이 실종된 그날 밤 소년은 살아남았다. 그가 자라 취직을 한다. 좋은 대학이 아니다보니 쉽게 붙지 않는다. 이때 한 곳에서 면접을 보자고 한다. 그 곳이 바로 도서출판 풍문이다. <월간 풍문>을 만드는 출판사다. 이 잡지는 세상에 떠돌고 있는 온갖 해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곳곳에 비치되어 있지만 잘 모르는 잡지다. 면접도 워낙 간단하게 진행되고 그는 취직하게 되었다. 어리둥절하게 시간을 보내다 대호 선배와 목련 흉가로 가게 된다.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밤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에 실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모임 뭔가 수상하고 괴이하다.

 

다섯 개의 이야기가 다섯 편의 단편으로 바뀐다. 모두 자신이 경험했던 기이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 중 단 하나도 평범한 것이 없다. <과부들>은 불륜과 애인의 실종이 아내 고향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예상된 반전이 펼쳐진다. 빤한 장면이지만 잠들었다고 생각한 장모가 실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순간 섬뜩했다. <도플갱어>는 성형에 대한 이야기다. 과도한 성형에 대한 경고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비틀면서 사실을 미궁으로 빠트린다. <홈, 스위트 홈>은 한국인의 집에 대한 집착을 점층적으로 높여가면서 공포감을 조성한다. 광기에 사로잡혀 펼치는 살인은 빙의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집착이 만든 현상인지 살짝 의문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잔혹한 단편이 <웃는 여자>다. 사이코패스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주는 보고서 같은데 어느 순간 폭주하면서 힘이 빠졌다. 도시 괴담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려주지만 역시 예상된 결말로 이어지면서 잔혹함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눈의 여왕>은 저주와 희생자 설화를 뒤섞었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희생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씁쓸했다. 애절해야 하는 사랑이 중심에서 힘을 발휘해야 하는데 왠지 곁다리로 밀린 듯해 아쉽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나온 소년의 잊혀 있던 과거가 풀려나온다. 너무 감상적이라 오히려 감동이 사라진다.

 

화자가 이야기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소설이 아니다. 그가 들은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 하지만 시작과 끝에 그가 있다. 그의 이야기도 밤의 이야기꾼들처럼 초현실적이다. 슬프고 괴이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새로운 모험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끝낸다. 이 소설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또 다른 밤의 이야기꾼 이야기나 화자와 <월간 풍문>의 편집장 등과 함께 한 모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좋지만 역시 익숙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라 힘이 딸린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좋으니 구성을 다듬고 결말을 조금 더 건조하게 풀어낸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뭐 실제 작가가 나보다 더 고민하고 잘 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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