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작년에 본 영화 중 한 편이 이 작가의 원작이다. 제목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고 원작에도 관심이 갔지만 늘 그렇듯이 영화 이미지가 원작을 침범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러다 이 책 소개를 보았다. 한 소년이 친구를 죽이고 자살하거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더 눈길은 끈 것이 있다. 작가 이력에 나온 책 제목이다. 이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실제 책을 받았을 때 약간 걱정이 되었다. 영화와 소설의 괴리가 심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걱정은 읽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사라졌다.

 

레너드 피콕.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는 오늘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생일을 모른다. 그리고 그는 큰 결심을 했다. 그것은 한때 베프였던 애셔 빌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것이다. 총은 그의 할아버지가 나치를 죽이고 빼앗은 독일 제식 권총 P-38이다. 이전에 언론에 나왔던 학생들처럼 그도 애셔를 죽이고 학교에서 자살하면 되지만 이 괴짜 소년은 몇몇의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준 후 거사를 진행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이 선물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레너드가 준비한 선물은 모두 네 개다. 즉 네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열여덟 소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당사자들은 잘 모르지만. 그 첫 번째 인물이 옆집 보가트 팬인 할아버지 월트다. 그는 학교에서 외톨이인 레너드와 보가트 영화를 보면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소년이 전해준 선물은 보가트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모자다. 싼 모자지만 함께 영화를 보면서 대사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월트는 부모가 같이 살지 않는 그에게 집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다음은 이란 소년 바백이다. 그는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자다. 애셔 패거리에게 왕따를 당하던 그를 도와주었고, 돈을 내면서까지 바백의 연주를 들었다. 외톨이에 학교 어디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던 레너드에게 바백의 연주를 듣는 시간만은 휴식이었다. 그가 바백에게 전하려고 한 것은 할아버지가 그의 대학 학자금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이 수표를 바백에게 전하는데 그는 이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생각한다. 오늘 밤 자살하기 전 자신의 유산을 이란민주주의를 위해 사용해달라는 마음에서 전달한 것인데 오해한 것이다.

 

세 번째는 로렌 바콜을 닮은 로렌이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학교보다 부모에게 홈스쿨링을 받는다. 성경을 그대로 믿고 이 시대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소녀다. 길거리 선교 중 그녀가 레너드의 눈에 들어왔고, 그는 그녀와 첫 키스를 하고 싶어한다. 로렌과 첫 키스를 하고 싶은 레너드의 악의와 한 사람이라도 지옥불에서 구출하려는 로넨의 착한 의지가 충돌한다. 솔직히 로넨의 이야기가 답답하지만 이 둘 사이에 묻어나는 순수함은 좋았다. 선물은 은 십자가다. 그리고 로넨의 만나기 전에 그가 한 행동 중 하나는 우리의 삶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출근길 직장인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을 뒤따르는 레너드의 행동에서 잘 나타난다. 그들 중 한 명이 내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순간 뜨끔했다.

 

마지막은 학교 실버맨 선생님이다. 그가 가르치는 것은 홀로코스트 등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고 다른 시각에서 사물이나 현상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진실을 바로 보는 것을 불편해하고 거부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실제 우리 삶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정치 이야기로 들어가면 웃어른들과 싸우게 되는데 대개가 이런 불편한 진실을 둘러싼 공방이다. 제너드가 준 선물은 할아버지의 훈장이다. 그런데 실버맨 선생님은 이 행동에서 불길함을 느낀다. 학교에서 금지하는 자신의 연락처를 준다. 이 전화번호가 한 소년의 삶을 크게 바꾼다.

 

소설 중간중간에 미래로부터 온 편지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뭐지? 진짜 미래에서 온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실버맨 선생님이 제너드에게 쓰라고 시킨 숙제다. 이 편지를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왜 이런 편지를 쓰게 했는지 듣게 되는 순간 그냥 가볍게 읽었던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소년의 삶이 어떤 어려움과 괴로움과 고통 속에 놓여 있고, 그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그가 가슴에 품고 있는 슬픈 생각들이 글로 표출될 때 삶의 의지가 조금씩 살아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자살하려는 레너드를 찾아오는 실버맨 선생님이다. 그는 결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진짜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업시간에 학생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하는 기행을 펼치는 것도 놀랍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불편하고 힘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자세와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행동들이 슬픈 생각에 잠식된 레너드를 현실 속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피콕이 왜 얘셔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고 했는지 후반부에 나오는데 사실 이 부분은 이 소설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지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레너드의 삶 속에 자리잡은 슬픈 생각을 하나씩 파악하고 그 슬픔을 견디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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