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미스터 찹
전아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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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살 생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열흘의 시간이 흐른 후. 한 마리의 까만 강아지를 샀다. 이날은 5월 30일이다. 다음 날 새벽, 그러니까 5월31일 그와 난쟁이 찹이 처음으로 만난다. 어머니가 죽은 후 가끔 찾아오던 외삼촌마저 외국 여행을 떠나 한적한 집에 새로운 동거자가 둘 생겼다. 이때 드는 생각 중 하나. 아버지는 어디에? 그는 아버지 없이 자랐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어떤 어려움도 아쉬움도 슬픔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소설의 중반에 아버지가 그의 삶에 살짝 끼어들기 시작한다. 아직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에게 기억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긴 것이다.

 

5월 30일부터 12월 17일까지 일기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난쟁이 찹의 등장부터 사라짐까지의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찹이 어떤 직접적인 행동으로 그를 위로해주고 삶을 도와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을 제외하면 외롭고 슬프게 시간을 보내야 할 그에게 최고의 동반자가 된다. 물론 강아지도. 이 두 콤비가 집안에서 일으키는 수많은 사건과 행동들은 어떨 때는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찹이 담배를 꼬나물고 음식을 하다가 담뱃재를 떨어트렸을 때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목만 보면 이 난쟁이 찹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찹은 단지 관찰자와 동행자로 옆에 머물 뿐이다. 그리고 그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흔한 말로 요정이라면 뭔가 마술같은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처음에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멀리서도 보여 찹을 베란다 밖으로 던지려고 했을 때 경비실에서 아기를 던지려고 한다는 신고가 들어올 정도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갑작스럽다. 나타난 것도 사라진 것도. 그를 발견한 사람들이 너무 쉽게 납득하는 것도. 찹이 떠난 후 고마움을 느끼고 자신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갔을 것이라고 말할 때 그의 삶이 정상 궤도에 올라왔음을 알려준다.

 

스무 살 대학생이 주인공이다보니 그 또래의 생활이 중심에 있다. 하지만 단지 그들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죽집 사장과 그가 연모하는 강씨 아줌마, 게이 외삼촌과 연인 달배 씨,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 등이 있다. 여기에 연상의 유부녀를 사랑하는 친구 윤식이, 노출광이란 별명을 가졌고 잠시 사귄 유리, 그의 여자 친구인 지예 등이 있다. 이들의 관계는 엮이고 섞이면서 진행되는데 읽다보면 참 화목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각각 다른 사랑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삶의 다양한 모습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 사이사이에 살짝 내놓은 감정들의 파편은 내 추억 속 한 장면을 꺼내어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웃긴 장면도 많았고, 유쾌한 유머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에도 가슴 한 곳을 아리게 하는 감정이 있다. 슬픔과 외로움과 상실이다. 웃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왠지 짠한 감정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라진 순간이 있다. 바로 찹이 떠난 후다.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고, 오버일 수도 있지만 문장과 표현 방식이 바뀐 것 같다. 아버지에게 납치되어 어머니의 납골당을 다녀온 후에 일어난 변화다. 이것은 그가 지예와 연애를 할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각각 다른 분량의 일기를 적었다. 긴 날도 있지만 한 줄도 끝나는 날도 많다. 이 자유로움이 가독성을 높여준다. 몰입해서 읽다가 잠시 쉴 틈도 발견한다. 화려한 수식으로 꾸미기보다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심리를 표현한다.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문장도 곳곳에 등장한다. 이 순간은 이 작가에 대한 호평을 이해하게 한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을 수 있지만 다양한 감정을 겪어볼 수 있다. 이십 대의 감정을 경쾌한 문장으로 잘 표현하면서 시종일관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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