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학교는 1 - 발병
주동근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형 좀비 만화다. 가공의 효산 시가 배경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가 주 무대다. 그 학교가 바로 효산 고등학교다. 평범한 학급 풍경으로 만화가 시작한다. 학생들이 농담을 하고 다투면서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일상에 금이 가는 것은 생물 선생에게 이틀간 감금되어 있던 한 여학생이 탈출하면서부터다. 그 학생의 이름은 현주다. 현주는 자신이 이틀간 감금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교장 등은 경찰을 학교로 부른다. 이병찬 선생은 그를 미워하는 경찰에게 끌려간다. 그리고 현주가 탈출했다는 소식에 놀라며 현주를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의견은 묵살된다. 효산 시의 비극은 여기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웹툰에 연재된 것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2009년에 연재를 시작했는데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아 순간 낯설었다. 연재 연도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는 이 사건이 벌어지는 연도를 사실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는다. 단지 후기에서 2017년 이전임을 암시할 뿐이다. 그리고 웹툰에 연재한 그림을 보지 못해서 정확한 비교를 할 수 없지만 책으로 옮겨지면서 단어의 크기나 밝기 등이 불분명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몇 곳이 있다. 의도적으로 어둡게 한 곳은 분위기 등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란 것을 알지만 모니터의 크기를 따라가지 못함으로 인한 단어 크기는 조금 아쉽다.

 

학교와 학생과 선생과 좀비를 다루다보니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초기에 사람들이 좀비로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줄 때 살짝 드러난 선의는 역설적이다. 다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다가간 사람이 좀비에게 물리고, 이것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도시가 좀비로 뒤덮인다. 그리고 중간에 간략하게 나온 자신의 자식을 태우러 간 부모의 비극은 학생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소녀의 자살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런 감상적인 비극보다 처참한 현실이나 자기희생적인 모습들이 이 아린 가슴에 오랫동안 빠져있게 하지 않는다.

 

좀비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학생들의 노력은 처절하고 잔혹하다. 어느 순간 공포에 사로잡인 한 여학생의 심리적 붕괴와 환상은 생존자들 속에서 또 다른 긴장감을 만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학생들이 이런 절제를 보여주는 것에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비록 선생이 같이 있다고 하여도 주변이 온통 좀비로 가득하고 살아남기 위해 분석하고 기록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낯설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생존을 위한 처참한 노력이 너무 빨리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에 대응하는 사이코패스 역의 귀남이 모습은 또 다른 긴장을 불러온다.

 

모두 다섯 권인데 단숨에 읽었다. 각 권이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대단히 속도감 있게 읽혔다. 잔혹하고 처참한 장면이 곳곳에 나와 어떤 순간은 잠시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지만 최후의 생존자는 누가 될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변종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물론 이것도 주변 상황에 차이가 있다. 전자는 친구들이 도와준다면 후자는 친구도 없고 그 자신이 사이코패스다. 이 둘의 대결이 없고, 한 무리와 변종의 대결로 간단하게 처리된 것은 뒤로 가면서 급하게 마무리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특히 마지막에 학교를 탈출하는 장면에서 너무 많이 생략되어 있다.

 

제목에서 학교를 무대로 한다고 알려줬지만 효산 시의 모습이 너무 적은 것은 사실 아쉬운 대목이다. 효산 시의 위급함을 알리는 정도에서 그친 것 같은 느낌이다. 효산 시의 위기를 대처하는 장면들을 보면 냉혹한 듯하지만 즉흥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에 깔아둔 많은 이야기들을 중반 이후로 가면서 많이 생략한 것 같다. 작가 후기에 외전 가능성을 말했지만 본편에 더 많은 이야기를 농축적으로 녹여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귀남의 비중이 높아지고 연재가 길어지면서 길을 잠시 잃은 느낌이다. 그리고 자기희생적인 장면이 너무 많다.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보여줄 행동에는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잘 만든 좀비만화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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