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끝 바다
닐 게이먼 지음, 송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화려한 수상 경력은 언제나 시선을 끈다. 닐 게이먼의 수상 경력이 바로 그렇다. 그 덕분에 이 작품 이전에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권은 그냥 사놓기만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샌드맨>이었다. 읽은 것은 1권뿐이지만 2권을 사놓고 약간 주저하고 있다. 이유는 물론 금전적인 문제다. 영어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몇 권은 늘 똑같은 이유인 사놓았기 때문이다. 사기 전에는 엄청난 욕망에 시달리지만 사놓은 후는 그냥 책장으로 간다. 사놓은 책이 많아지면서 생긴 부작용 중 하나다.

 

몇 권 읽지 않은 닐 게이먼의 소설들은 간결했다. 복잡한 구성도, 확장된 이야기도 없었다. 그러니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단순히 빠르게 읽히는 책이라면 기억 속에서 작가의 이름이 사라졌겠지만 이성을 살짝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나오면서 나를 매혹시킨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오랫동안 이어질 정도로 나의 기억력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읽는 동안 혹은 읽은 후는 다르다. 이 소설도 해설에서 말한 것 같은 몇 가지가 시선을 끌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이전에 읽거나 본 책과 영화의 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한 중년이 장례식을 마친 후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오솔길 끝까지 걸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자락을 만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잊고 있던 기억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 점점 선명해질수록 현실의 벽은 무너지고 놀라운 판타지 세계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기존의 판타지와 다르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다. 그리고 몇몇 설정은 은유와 파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가 한 아이의 악몽 같은 현실로 바뀌고, 거대한 규모의 이야기로 이어질 때 나도 모르게 점점 몰입하게 되었다.

 

일곱 살 소년과 열한 살 소녀 레티 헴스톡. 이 둘은 예상하지 못한 일에 부딪친다. 그 시작은 한 오팔 광부의 자살이다. 가세가 기울면서 부모님은 남는 방을 세 줄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한 명인 오팔 광부는 등장부터 소년이 사랑한 고양이를 죽인다. 그가 자살한 이유는 도박으로 친구의 돈을 탕진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이 한 소년의 입속에 동전이 들어오게 만든다. 소년이 직접 넣은 것이 아니다.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정의 장난도 아니다. 이 동전 때문에 죽을 뻔한다. 이 괴상한 사건을 가지고 소년이 간 곳은 헴스톡 집안이다. 이 사건을 키운 것은 레티의 조금은 안일한 생각이다.

 

헴스톡 집안의 삼대 세 여인은 특별하다. 이 특별함이 드러날 때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오만하다. 이 오만함이 레티로 하여금 소년을 데리고 짧은 여행을 하게 만든다. 레티가 바란 것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손을 놓지 마라는 것이다. 의식이 있을 때 이것은 쉬운 일이지만 반사적인 경우는 다르다. 잠시 손을 놓았는데 이것이 소년의 몸에 이상한 일을 만든다. 그때 이 일을 알았다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온 후 자신의 발에서 이상한 벌레를 발견한다. 이 웜홀이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고, 소년의 세계는 불안과 공포로 휩싸인다.

 

몸이 다른 차원의 통로가 되는 설정에서, 연못을 대양이라 부르는 레티의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우혁의 소설 중 한 설정이다. 영화 <맨인블랙> 속 우주다. 가장 작은 것에서 우리가 아는 가장 큰 세계가 존재하고.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 속에 들어있다. 그리고 소년이 요정의 원 속에서 굶주림새들의 유혹을 물리치는 장면은 싯다르타의 수행 속 한 장면 같았다. 어린 아이가 과연 이런 유혹과 공포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소년이 레티가 가져온 연못을 통해 대양을 경험할 때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의 한 장면이 겹쳐졌다.

 

어린 시절 기억은 성인이 되면서 점점 희미해진다. 그것은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모두 똑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기억들이 현실을 뒤덮는 순간이 생긴다. 과거가 현재를 잡아먹는 경우다. 물론 이런 일은 자주 생기지 않는다. 자주 생기면 병이 된다. 소년이 어른이 되면서 이 기억을 점점 잊고 산 것은 모든 주술이 풀린 후 가족이 사라진 어슐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헴스톡 부인이 시간을 라 기운 것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등장인물이 없지만 환상적인 설정과 전개는 몰입도를 놓이고 이야기의 가지를 나 자신도 모르게 넓고 다양하게 펼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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