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화선집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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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용 화백의 이름과 그림은 낯설지만 도종환 시인의 시는 낯익다. 그 유명한 <접시꽃 당신> 때문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 예전에 같이 하숙하던 형이 시집을 샀던 것을 기억한다. 그 후 나도 샀다. 그 당시 시를 너무 이해하지 못해 어떻게 한 번 친해져 보려는 의도에서 몇 권의 시집을 샀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선택한 것이 베스트셀러였던 <접시꽃 당신>이다. 하지만 그 당시도 지금도 시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계속 읽으면서 아주 조금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이 시화선집은 개정판이다. 2007년에 먼저 출간되었다. 7년이 지난 후 개정판을 내면서 다시 서문을 썼다. 그는 “시는 이미 내 오랜 운명입니다.”라고 말한다. 시를 쓴지가 30년이 넘은 노시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화선집은 새로운 시들이 아니다. 그가 이전까지 출간한 시집에서 뽑은 시들을 다섯 꼭지로 나눠 실은 시화선집이다. 읽으면서 어느 시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소리내어 시를 읊조려본다. 어디에서는 시보다 그림에 먼저 눈길이 간다. 처음 읽는 시화선집인데 상당히 조화가 잘 된 것 같다.

 

시가 그의 운명이라고 했지만 그의 시에서 내가 발견하고 읽게 되는 것은 희망, 외로움, 쓸쓸함, 그리움, 슬픔 등의 감정들이다. 단순히 이 감정들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현실이 같이 녹아 있다. 80년 광주를 자연스레 떠올려주는 <오월 편지>에서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해직교사가 된 후 감정을 토로한 <어린이 놀이터>에서 ‘여기서 오 분만 걸어가면/ 쫓겨난 학교가 있다’고 했을 때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내가 가진 시인에 대한 좁쌀만한 정보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꽃잎>에서 ‘시작도 알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아득하여’라고 할 때 다가온 외로움은 <빈방>에서 ‘내 겉옷을 들어 잠든 나를 덮어주는/ 이름 모르는 사람 하나 곁에 있으면 좋겠다’로 이어진다. 이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의 베스트셀러에서 노래했던 사랑하는 사랑을 잃은 상실감에서 비롯했다. 그때의 감정은 그리움과 사랑으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 아픔을 견뎌내고 살아가는 힘은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같은 삶의 경험과 연륜에서 시작했다.

 

외로움, 그리움, 아픔 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희망도 있다. <담쟁이>에서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고 말하지만 <희망의 바깥은 없다>에서‘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면서 희망의 고통스럽고 처절한 현실을 노래한다. <상선암에서>에서 ‘가장 험한 곳에 목숨을 던져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있는 것이다’라고 할 때 벗의 당당한 쓰러짐을 기원하는 <풀잎이 그대에게>에서 ‘벗이여 온몸으로 쓰러져주셔요’라고 외친다. 이때의 벗들은 누구일지 궁금하다. 시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연필 깎기>에서 지조, 신념, 정직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질타하지만 ‘아주 고요해진 한순간을 만나고자’ 연필을 깎는다. 하지만 시인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꽃씨를 거두며> 아는 것이다. 이 수많은 감정들을 감싸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인 것이다. 그리고 삶이다.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간다/ 가장 더러운 것들을 싸안고 우리는 간다’<강>고 할 때 아름다운 사랑이 가슴 한 곳으로 살며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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