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우에무라 나오미 지음, 김윤희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만 가지고 내용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작가 우에무라 나오미란 이름도 낯설다. ‘도전 앞에 머뭇거리는 당신을 위한 책’이란 문구에서 왠지 모르게 자기계발서 분위기가 난다. 해제를 쓴 고도원이란 이름이 보이고, 작가에 대한 이력을 보면서 관심이 생겼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력이다. 12년만에 복간되었다는 소식과 북극권 12,000Km를 1년 2개월간 개썰매로 홀로 횡단하면서 남긴 일기라는 말에 그냥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내의 고독하고 힘든 기록에 빠져들었다.

제목에 나오는 안나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나오미가 이누이트 사람들에게 구입한 암캐다. 그 긴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였고, 무엇보다 선두에서 달린 암컷이다. 안나는 이누이트 말로 여자를 의미한다. 이 이름을 붙였을 때만 해도 안나는 작가에게 그렇게 큰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길고 얼어붙고 녹아내리고 아무도 없는 곳을 달릴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존재가 바로 안나다. 오죽했으면 마지막 목적지 코츠뷰가 보였을 때 그런 말을 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에 안나와 함께 찍은 사진은 따뜻하고 신뢰 가득한 미소로 그것을 직접 보여준다. 띠지에 나온 바로 그 사진이다.

1974년 12월 20일 야콥스하운에서 시작한 일정은 1976년 5월 8일 코츠뷰에 도착하면서 끝난다. 무려 12,000Km다. 그냥 평범한 날씨에 평지를 다녀도 쉽지 않은 거리다. 그런데 북극의 추위와 눈과 고독과 싸우면서 가야 한다. 그것도 현대의 탈 것이 아닌 개썰매를 끌고 말이다. 그 시대는 지금처럼 GPS도 없었다. 지도와 나침반으로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개가 끌다보니 그들이 지치거나 도망을 가면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사냥을 해야 하거나 운 좋게 혹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곳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만약 도착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힘겨운 여정을 그는 시작했다. 

1년 2개월의 긴 여정이다. 그 사이에 그의 생일이 두 번이나 지나갔다. 혼자와 개썰매를 이용했다는 것이 최초인데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그의 곁에는 개들이 있었고, 그가 지나온 곳에서는 친절한 이누이트 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실이 그의 단독 횡단을 폄하할 수는 없다. 읽는 내내 그가 느낀 불안과 공포와 행복과 열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정도의 위기도 몇 번이나 지났다. 홀로 울기도 하고, 되돌아갈까 고민도 쉴 새 없이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과 불안과 두려움은 아침과 함께 사라졌다. 몇 번이나 위기가 있었지만 그는 앞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이전에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었다. 비록 그 이후 다른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던 중 실종되었지만 말이다.

문장은 사실 소박하다. 사실의 나열로 이루어졌다. 일기와 날씨와 그날 한 행동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힌다. 전혀 화려한 수식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솔직한 마음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간결한 문장으로 그것을 사실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빠졌을 때, 홀로 울 때, 돌아가고 싶을 때, 불안해 할 때, 공포를 느꼈을 때, 이누이트 족 등에게서 고마움을 느꼈을 때, 약간 긴장이 사라졌을 때, 개들을 심하게 다룰 때, 차마 생각한 대로 행동하지 못할 때, 자신이 느끼기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개를 혹사했다고 느낄 때를 그는 그대로 표현했다. 이런 감정들이 단순함을 넘어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그가 북극권을 횡단하면서 만난 사람은 적지 않다. 사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의지와 용기와 열정과 도전 정신이다. 이누이트 족들마저 고개를 가로 흔드는 일을 그가 해낸 것이다. 아무도 없고 죽음의 공포가 끝없이 다가오는 일정을 보낸 그가 따뜻하고 편안한 곳의 유혹을 견뎌낸 것도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쓰러져도 자신을 끝없이 일어세우는 그를 보면서 머릿속에서는 북극의 풍경을 계속 재생해본다. 힘겨워 쓰러지려고 할 때 그와 개들에게 힘을 준 불빛도 스쳐지나간다. 몇몇 장면에서 현대와 현실 속에 안주하고 있는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결코 중요하지 않다. 평생 내가 도전하지 못할 일이지만 가슴 한 곳은 읽는 내내 그와 함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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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7-1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러운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